트럼프 시절 코로나19 예방 빌미로 도입…3년간 280만명 추방
하루 1만명씩 무단입국…국경 도시 시장은 '국가 비상사태 선포' 촉구
미국 내 불법 입국자를 즉시 국경 밖으로 추방할 수 있도록 한 정책이 12일 종료됐다.
일단 미국 국경만 넘으면 체류가 이전보다 쉬워질 것이라 막연히 기대하는 사람들이 미국과 멕시코 접경지대에 몰려들면서 일대에 혼란이 가중되는 모습이다.
AP 통신 등 외신 보도에 따르면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명분으로 2020년 3월 도입한 불법 입국 망명 신청자 즉각 추방정책(42호 정책)이 이날 0시를 기해 효력을 잃었다.
42호 정책은 육로 국경을 넘은 불법 입국자를 적발 즉시 추방하고, 망명할 기회를 주지 않도록 하는 내용이다.
트럼프 행정부 당시 미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밀집도가 높은 국경 수용시설에서 코로나19 확산을 억제해야 한다며 이 정책을 시행했다.
42호 정책 시행 기간인 2020년 3월 이후 최근까지 불법 입국으로 적발돼 멕시코로 쫓겨난 이민자는 280만명에 달한다.
이미 미국과 멕시코 접경지역에는 망명 혹은 인도주의적 입국을 신청할 것이란 희망을 품고 국경을 넘으려는 중남미 이민자들이 몰려들고 있다.
미국 세관국경보호국(CBP)이 현재 구금하고 있는 불법 이민자는 2만7천명이 넘으며, 국경순찰대는 9일 하루에만 1만명가량의 불법 월경을 막았다. 이는 3월 대비 두 배로 늘어난 수준이라고 AP 통신은 현지 당국 관계자를 인용해 보도했다.
멕시코의 마타모로스, 시우다드후아레스, 티후아나, 레이노사, 누에보라레도 등 접경 도시에도 수만 명이 미국에 입국하려 대기 중이라고 외신들은 전했다.
미국은 불법 입국자 증가에 대비해 남부 국경 지역에 2만4천명의 법 집행 인력과 함께 1만1천명의 국경순찰대 코디네이터를 새로 배치했다. 멕시코 역시 북부 국경 주변에 이민청과 국가 방위대 인력을 증편해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 국경 도시들은 물밀듯이 밀려드는 이민자 행렬에 이미 허덕이는 상황이라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짚었다.
더글러스 니콜스 애리조나 유마시 시장(공화당)은 이날 국경 지역의 전례 없는 위기 상황에 대응할 자원을 확보해야 한다며 조 바이든 대통령에게 국가 비상사태 선포를 촉구했다.
그는 지난 한 달 사이 멕시코에서 국경을 넘어 유마시에 유입되는 이민자의 수가 하루 300명 안팎에서 1천명 이상으로 급증했다면서, 연방 차원의 자금 지원이 없는 현 상황은 법 집행 당국과 지원 단체, 의료기관 모두에 과도한 부담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은 42호 정책이 폐지됨에 따라 기존처럼 이른바 '8호 정책'을 시행할 계획이다.
이에 따라 미국으로 망명하려면 하루 최대 1천명으로 제한된 온라인 입국 신청과 후원자 확보 등 신원 확인 절차를 거쳐야 한다.
미국 정부는 절차를 제대로 밟지 않았거나 무단으로 미국 국경을 넘어왔다가 적발되면 곧바로 본국으로 추방 조처한다는 방침이다.
예외적으로 미국 정부는 중남미 국가 중 쿠바, 아이티, 니카라과, 베네수엘라의 경우 극도로 혼란한 자국 정치·경제 상황을 고려해, 한 달에 최대 3만명의 인도주의적 입국 요청을 받기로 한 상황이다.
다만 해당 국가 국민도 미국 내 재정적 후원자 등에 관한 서류를 갖춰 제출해야 한다.
한편 진보성향 시민단체인 미국시민자유연맹(ACLU)은 42호 정책 종료에 따라 시행된 미국의 새 이민 정책이 망명 가능성을 심각하게 제한한다며 전날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고 로이터 통신이 보도했다.
진보 진영 일각에선 바이든 행정부의 새 이민정책이 트럼프 행정부 시절 때보다 오히려 더 엄격해지는 것 아닌지 우려하고 있다고 통신은 덧붙였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