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 시장에는 찬바람이 여전하다. 지난해 뚝 끊긴 매기가 아직 살아나지 않고 있다. 모기지 이자율이 소폭 하락하면서 깜짝 수요가 나타났지만 지난해에 비교할 정도는 못 된다. 일부 바이어들은 주택 시장에 침체가 찾아올 것을 우려하며 주택 구입을 미루고 있다. 수요 위축과 거래 감소로 주택 가격 상승 폭이 둔화하면서 리스팅 가격보다 낮게 집을 파는 셀러도 크게 늘고 있다. 최근 주택 시장에서 나타나고 있는 동향을 살펴본다.
‘페이먼트 급등·집값 둔화
구입 대 임대 비용 역전’
시장에 여러 변화 불러와
◇ 3명 중 2명 ‘3년 내 주택 시장 폭락한다’ 믿어
주택 경기가 한풀 꺾였지만 주택 가격 내림세는 여전히 더딘 편이다. 그렇지만 소비자들은 주택 시장이 이미 하강 곡선을 그리고 있고 수년 내에 폭락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온라인 재정 정보 업체 너드월렛이 지난해 12월 미국 성인 2,000여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홈 바이어’ 설문 조사에 따르면 미국인의 67%가 3년 이내에 주택 시장 폭락이 찾아올 것으로 믿는다는 반응을 나타냈다.
좀처럼 개선되지 않는 내 집 마련 여건에 대한 불만과 주택 가격 하락에 대한 기대감이 반영된 반응일 수 있지만 부동산 업계의 전망과는 사뭇 다르다. 너드월렛의 홀든 루이스 주택 및 모기지 부문 전문가는 “일부 도시에서 이미 주택 가격 하락세가 나타나고 있기 때문에 시장 침체에 대한 우려가 나오는 것도 당연하다”라며 “하지만 주택 가격 하락이 반드시 주택 시장 폭락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라고 못 박았다.
◇ 대부분 지역 집값 소폭 오름세
부동산 업체 레드핀이 내놓은 최근 보고서를 보면 주택 가격은 아직 오름세임을 알 수 있다. 1월 15일 기준 직전 4주간 주택 중간 가격은 35만 250달러로 1년 전 같은 기간보다 약 0.9% 오른 것으로 집계됐다. 전국 50대 도시 중에서도 1년 전과 비교해 주택 가격이 떨어진 도시는 18곳에 불과하다.
샌프란시스코의 하락 폭이 10.1%로 전국에서 가장 크고 샌호제(-6.7%), 오스틴(-5.5%), 디트로이트(-4.3%) 등의 대도시에서도 주택 가격 하락세가 뚜렷이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현재 주택 가격 하락이 진행 중인 대도시의 경우 최근 수년간 집값이 매년 두 자릿수 비율로 폭등한 지역으로 체감 주택 가격은 여전히 상당히 높은 편이다.
◇ 내 집 마련에 대한 열망은 여전
주택 시장 폭락에 대한 우려에는 내 집 마련에 대한 열망이 숨겨져 있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여전히 대다수 미국인은 아메리칸드림으로 대변되는 내 집 마련을 중요하게 여기고 있기 때문이다. 너드월렛의 조사에서 미국인 중 87%가 주택 구입이 ‘우선순위’라는 반응을 보였다. 이중 약 11%는 주택 구입 여건이 당장 개선되기 힘들 것이라는 전망에도 불구하고 향후 12개월 안에 주택을 구입하겠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많은 미국인이 내 집 마련에 대한 희망을 품고 있지만 주택 구입 여건은 녹록지 않다. 모기지 이자율은 작년에 비해 2배나 올라 주택 구입 부담이 여전히 상당히 높은 편이다. 이 같은 현실로 인해 바이어의 주택 구입에 대한 자신감도 낮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인 3명 중 1명은 올해 자신들의 주택 구입 능력이 작년에 비해 떨어진 것으로 보고 있다.
올해 주택 구입에 대한 자신감을 잃은 이유로는 경기 침체로 인한 고용 시장 불안, 높은 모기지 이자율, 높은 주택 가격 등이 지목됐다. 지난해 주택 구입에 나섰지만 실패한 바이어 중 약 26%는 주택 구입 능력이 떨어져 구입을 포기했거나 연기한 상태다.
◇ 주택 구입보다 유리해진 임대
모기지 이자율 급등 여파로 전국 대부분 지역에서 주택 임대가 구입보다 비용 부담이 덜한 것으로 조사됐다. 부동산 정보 업체 ‘애톰’(ATTOM)이 전국 222개 카운티를 대상으로 시행한 조사에 따르면 95%에 해당하는 210개 카운티에서 침실 3개짜리 주택을 임대하는 비용이 같은 크기의 단독 주택을 구입하는 비용보다 낮았다.
그동안 주택 임대료와 주택 가격이 고공행진을 거듭하며 대다수 가구에 큰 부담으로 작용해왔다. 임대료는 여전히 빠른 속도로 상승 중이지만 지난해 모기지 이자율이 가파르게 오르면서 주택 구입 비용 부담이 훨씬 높아진 것이다.
릭 샤가 애톰 수석 부대표는 “지난해 조사에서는 주택 구입이 유리한 지역이 전체 카운티 중 60%로 절반을 넘었다”라며 “그러나 지난해 모기지 이자율이 2배나 오르면서 불과 1년 만에 임대 비용과 구입 비용이 역전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 모기지 페이먼트 부담 1년 사이 60%↑
주택 가격 상승세가 한풀 꺾였지만 모기지 이자율 상승으로 모기지 페이먼트 부담이 껑충 뛰었다. 부동산 정보업체 질로우닷컴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평균 주택 가격은 35만 6,819달러로 전달 대비 0.2% 오르는 데 그쳤다. 전달인 11월에도 주택 가격 상승 폭은 전달 대비 0.2%로 큰 변동이 없었다.
이처럼 주택 가격 상승이 멈췄음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연초 대비 2배나 치솟은 모기지 이자율의 영향으로 주택 구입비 부담은 1년 사이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지난해 12월 평균 가격대의 주택을 20%다운페이먼트를 지불하고 30년 고정 이자율을 적용받아 구입할 때 발생하는 월 모기지 페이먼트는 약 1,795달러로 1년 전과 비교할 때 62%나 상승한 것으로 조사됐다.
주택 구입비 급등으로 주택 구매 심리가 위축되자 리스팅 가격보다 낮은 가격으로 계약을 체결하는 셀러도 늘고 있다. 가장 최근 자료인 지난해 11월 매매된 전체 주택 중 약 53%가 리스팅 가격보다 낮은 가격에 팔렸다. 리스팅 가격보다 낮게 팔린 주택이 절반을 넘은 것은 코로나 팬데믹 여파로 주택 거래가 중단됐던 2020년 7월 이후 처음이다. 지난해 11월 리스팅 가격보다 높게 팔린 주택은 전체 주택 중 28%로 1년 전(45%)보다 크게 줄었다.
◇ 타 도시 이사 수요 늘어
주택 구입 비용 부담이 낮은 도시로 이사하려는 바이어가 크게 늘었다. 부동산 업체 레드핀이 자체 웹사이트 매물 검색 동향을 분석한 바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현재 거주 도시가 아닌) 다른 도시 매물을 검색한 사용자 비율이 24.6%로 조사를 시작한 2017년 이후 가장 높았다. 모기지 이자율 상승으로 인한 영향과 함께 재택근무가 가능해지면서 집값이 저렴한 지역으로 이사하려는 수요가 늘고 있음을 보여주는 추세다.
레드핀 사용자가 이사를 원하는 지역으로 가장 많이 검색한 도시는 새크라멘토, 라스베거스, 마이애미, 탬파, 피닉스, 댈러스 등이었다. 반대로 떠나고 싶은 상위 도시로는 샌프란시스코, LA, 뉴욕, 시카고 등 주택 가격이 전국에서 가장 높은 대도시가 포함됐다.
<준 최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