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찰폭력 흑인사망 파장
‘무차별 구타’ 모두 녹화
“목 골절·온몸 피투성이”
LA 등 곳곳 폭력 항의시위
교통 단속 중이던 흑인 경찰관들이 20대 흑인 남성 운전자를 집단 구타해 숨지게 한 상황을 고스란히 담은 상세한 영상이 지난 27일 공개되며 미국 사회가 발칵 뒤집어졌다. 5명의 경찰은 수갑이 채워진 채 널브러진 피해자를 길바닥에 수십분간 방치한 채 천하태평 모습을 보이는 등 비인간적인 면모를 드러내 미국인들의 분노를 부채질했다. 조 바이든 대통령까지 분노를 표출하며 체포 과정의 철저한 진상 조사를 지시했다. 2020년 5월 미네소타주에서 비무장 상태였던 조지 플로이드가 경찰의 과잉 진압으로 사망했을 당시와 마찬가지로 전국적인 항의 시위를 불러올까 우려하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27일 테네시주 멤피스 경찰이 공개한 67분 분량의 ‘보디캠’ 영상을 토대로 잔혹했던 당시 현장을 재연해 본다.
지난 7일 오후 8시 24분. 귀가 중이던 흑인 청년 타이어 니컬스(29)를 난폭 운전 혐의로 불러세운 경관들은 처음부터 거친 욕설을 내뱉는 등 시종 위압적인 태도로 일관했다. 이들은 영어 약자로 ‘우리 이웃의 평화 회복을 위한 거리 범죄 소탕작전’(SCORPION)을 뜻하는 스콜피온 특수부대 소속 경관들로 강력범죄 대응 치안 임무를 수행해 왔었다. 공교롭게도 이번 폭행에 연루된 경관 5명 모두 흑인이었다.
운전석에서 끌려나온 니컬스는 ‘알았다’라고 여러 차례 반복하며 고분고분한 모습을 보인다. 경찰관이 시킨 대로 땅바닥에 드러누워서도 “나는 그저 집에 가려는 것일 뿐”이라며 “당신들은 지금 과한 행동을 하는 것”이라고 차분히 설명했다.
하지만 경찰관들이 이를 무시한 채 엎드리라고 소리치며 “테이저건을 쏴”라는 말까지 하자 니컬스는 동요한 듯 일어나 도망치려고 시도했다. 이에 경찰은 그를 붙들고는 주먹과 발길질을 가하는 것은 물론 진압봉을 휘두르고 테이저건을 발사하는 등 무차별적으로 물리력을 가했다.
“엄마, 엄마”를 부르짖던 니컬스는 눈물과 통증을 유발하는 ‘페퍼 스프레이’를 얼굴에 맞은 데 이어 추가 구타를 당한 후 완전히 제압됐다. 차가 처음 멈춘 지 14분만인 8시 38분이었다.
니컬스의 신음이 잦아들자 경찰관들은 거리를 서성이며 동료와 수다를 떠는가 하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태연자약하게 서 있는 모습을 보였다. 몇분 뒤 응급의료 요원이 현장에 도착했지만, 니컬스의 상태를 제대로 들여다보거나 치료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 후로 20여분이 더 흐르고서야 구급차가 왔다. 조용한 거리 한구석에서 무용담을 나누고, 주먹 인사와 함께 등을 토닥이는 경찰관들의 행동을 보면 좀처럼 괴로워하지도 다급해하지도 않는 듯했다.
힘없이 땅바닥에 누워 몸부림치는 니컬스에게 한 경찰관이 “넌 아무 데도 못 간다”고 여러 차례 윽박질렀다. 현장에서 니컬스에 몰매를 가한 경찰관 5명은 모두 흑인이었다.
니컬스는 체포된 후 고통을 호소하며 병원으로 옮겨졌다. 사흘 뒤인 10일 신부전과 심장마비로 숨졌다. 그는 희귀 질환인 크론병을 앓고 있었다.
사건 발생 이후 해당 경찰관들은 모두 해고됐으며, 대배심은 지난 26일 이들을 2급 살인과 가중 폭행 등 혐의로 기소할 것을 결정했다.
27일 멤피스 경찰국의 보디캠 영상이 공개된 직후 멤피스를 비롯해 LA와 뉴욕, 워싱턴 DC, 보스턴 등 도시에서는 경찰의 과잉 진압에 항의하는 시위대가 거리에서 행진을 벌였다. 멤피스에선 시위대 때문에 인근 고속도로 운행이 일시적으로 중단되기도 했다.
LA에서도 200여명의 시위대가 경찰과 대치했다. LA 경찰국(LAPD) 본부 앞에는 시위대의 진입 등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무장경찰이 배치됐지만, 일부 시위대는 바리케이드를 치우고 경찰차를 흔드는 등 위협적인 행동을 했다.
뉴욕 한복판 타임스퀘어에 모인 시위대 역시 경찰과 충돌했다. NYPD는 시위 도중 폭력을 휘두른 3명을 체포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성명을 내고 “니컬스의 죽음을 불러온 구타가 담긴 끔찍한 영상을 보고 격분했으며, 깊은 고통을 느꼈다”고 분노를 표출했다.
니컬스의 어머니 로번 웰스는 “아들은 온몸이 멍투성이였고, 머리는 수박만큼 부어올랐으며, 목은 부러져 있었고, 코는 ‘S’자로 휘었다. 살아 남았더라도 식물인간이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웰스는 “도시를 불태우고 거리를 파괴하는 것은 원치 않으며, 내 아들도 그런 생각은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호소했다.
< 노세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