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소비자 물가지수 상승 폭이 당초 예상보다 낮은 것으로 집계됐다. 인플레이션이 잡히기 시작했다는 기대감이 시장에 일시에 퍼졌다. 가장 먼저 반응한 곳은 주식 시장이다. 예상보다 낮은 소비자 물가 지수 발표 직후 주식 시장은 팬데믹 이후 가장 큰 폭으로 급등했다.
하지만 ‘연방 준비 제도’(Fed)의 지속적인 기준 금리 인상에도 부동산 시장에서는 아직까지 가시적인 효과가 나타나지 않고 있다. 주택 가격 상승세가 한풀 꺾였지만 전국 대부분 지역의 집값은 여전히 작년보다 높다. 부동산 시장에서는 여전히 인플레이션과 경기 침체에 대한 우려가 공존하는 상황으로 셀러와 바이어 모두 철저한 대비가 필요하겠다.
주택구입 미뤘다면 다운페이먼트‘재테크’나서야
집 팔아야 한다면 경기 침체 신호에 주목해야
◇ 주거 관련 비용 여전히 오름세
물가는 잡히기 시작했지만 주택 가격과 렌트비 등 주거 관련 비용은 여전히 살인적이다. 최근 발표된 10월 소비자 물가 지수가 예상치를 하회했지만 지수 산출에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렌트비 지수와 ‘자가 거주자 렌트비 지수’(Owners’ Equivalent Rent Index)는 각각 전달 대비 0.7%포인트와 0.6%포인트씩 상승했다. 주택 부문에서는 인플레이션이 여전히 진행 중임을 의미하는 것이다. 부동산 정보 업체 코어로직의 집계에서도 9월 전국 주택 가격은 전년 대비 11.4% 상승, 두 자릿수 비율의 상승세를 이어갔다.
고금리, 고주택가 현상이 겹치면서 주택 소비 심리는 바닥을 쳤다. 국영 모기지 보증 기관 패니메이가 10월 실시한 설문 조사에서 지금이 집을 구입하기 좋은 시기라고 답변한 응답자는 16%에 불과했고 집을 팔기에 유리한 시기라는 응답자 역시 전달 59%에서 51%로 급감했다.
이처럼 바이어는 물론 셀러도 현재 주택 시장 상황을 매우 비관적으로 보고 있기 때문에 주택 매매 계획이 있다면 무엇보다 철저한 대비가 필요한 시기다. 덕 덕컨 패니메이 부대표는 “주택 시장 냉각 현상이 계속될 것이라는 우려로 주택 구매 심리 지수가 조사 이래 가장 낮은 수치를 기록했다”라며 “반대로 주택 가격 상승세와 고이자율로 인해 ‘주택 구입이 불리한 시기’라는 응답자는 급증했다”라고 설명했다.
◇ 전문가들 ‘구입 시기 잠시 미뤄라’
소득이 당장 증가할 것으로 기대되지 않는다면 주택 구입 시기를 잠시 미루는 것도 좋다고 전문가들이 조언한다. 주택 시장 상황에 변화가 발생했기 때문에 당장 무리한 구입에 나서는 것보다 기다리는 데 따른 유리한 점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주춤해진 주택 가격 상승세가 이어지고 정체기에 진입한다면 주택 구입 능력이 개선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주택 가격 둔화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지금 주택을 구입한다고 해도 주택 구입의 가장 큰 장점인 자산 축적 효과도 많지 않다.
◇ 다운페이먼트, 고금리 계좌로 이체
주택 구입 타이밍을 저울질하는 동안 주택 구입 능력을 최대한 끌어올리는 것이 급선무다. 인플레이션에 따른 장점도 있는데 기준 금리 인상으로 시중 은행 예금 계좌의 이자율도 올랐다는 것이다. 내 집 마련을 위해 모아둔 다운페이먼트는 고금리가 제공되는 계좌로 옮겨 이자를 한 푼이라도 더 받아야 보다 유리한 조건의 주택을 구입하는 데 도움이 된다.
1년 이내에 다시 주택 구입에 나설 계획이라면 출금이 용이한 세이빙 계좌가 적합하다. 최근 세이빙 계좌에 높은 이자율을 제공하는 은행이 많기 때문에 잠시라도 세이빙 계좌를 활용하면 짭짤한 이자 수익을 올릴 수 있다.
세이빙 계좌에 다운페이먼트 자금을 보관하려면 기존에 사용하던 계좌와 다른 세이빙 계좌를 개설해 입금하고 가능하면 기존 은행과 다른 은행의 계좌를 이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그래야 힘겹게 모은 다운페이먼트가 갑자기 다른 용도로 돈이 필요할 때나 기타 생활비로 빠져나가는 일을 막을 수 있다.
만약 1년 이상 지난 뒤에 주택을 구입할 계획이라면 세이빙 계좌보다 높은 이자율이 제시되는 ‘양도성 예금증서’(CD)나 ‘머니 마켓 펀드’(MMF) 계좌 등이 유리하다. 더 높은 수익률을 내고 싶다면 세이빙 계좌, 상장지수펀드, 주식 등에 분산투자도 고려해볼 수 있지만 원금이 보장되지 않는 고위험 상품은 피해야 한다.
◇ 셀러, 경기 침체 신호 주시해야
집을 팔아야 하는 셀러의 셈법도 복잡해졌다. 소비자 물가 지수가 주춤해져 경제 연착륙에 대한 기대감이 커졌지만 경기 침체에 대한 우려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경기 침체가 시작되면 주택 처분에 여러 제약이 따르기 때문에 집을 내놓는 시기를 신중하게 고려해야 한다.
만약 집을 팔 계획이 있다면 경기 침체가 시작되기 전에 집을 내놓는 것이 여러모로 유리하다. 경기 침체가 발생하면 모기지 이자율이 떨어져도 실직, 소득 감소 등의 현상으로 인해 바이어의 모기지 승인율이 하락한다. 모기지 대출 거절 증가로 수요가 위축되면 집을 파는 일이 더욱 힘들어질 수밖에 없다.
온라인 재정정보업체 뱅크레잇닷컴의 그렉 맥브라이드 재정 분석가는 “이사 갈 집이 이미 마련된 경우가 아니라면 경기 침체 우려로 너무 성급하게 주택 처분에 나서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라고 조언한다. 집을 팔려면 부동산 중개 수수료와 기타 클로징 비용 등 수만 달러가 넘는 비용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또 이사 갈 주택 구입에도 많은 비용이 필요하고 주택 구입 시기를 미루다 보면 자칫 높은 임대료 부담만 발생하기 쉽다. <준 최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