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 잠든 새벽 키이우 공습 재개,
폭격 잔해서 구출 소녀 수술대에
의식 찾자 첫마디가 “남동생은요”
일요일 새벽이었다. 전쟁 중인 도시는 얕은 잠에 빠져 있었다. 26일(현지시간) 오전 6시 30분, 러시아군이 쏜 미사일이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로 날아들었다. 굉음이 하늘을 찢었다. 미사일은 셰우첸키우스키 지구의 민간인 아파트를 부쉈다.
각국 언론은 “독일에서 26일 개막한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 맞춰 러시아가 무력 시위를 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그러나 그런 정치적 프레임으로 납작하게 해석할 일이 아니었다. 공습 현장에서 만난 피해자들의 아픔은 구체적이고 선명했다.
러시아는 이달 5일 이후 3주 만에 키이우 공습을 재개하면서 때렸던 곳을 또 때렸다. 이 아파트는 이미 세 번이나 미사일 공격의 타깃이 됐다. 26일 공격으로 최소 1명이 사망하고 6명이 다쳤다. 미사일은 7살 소녀를 수술대에 올렸다. 콘트리트 더미 아래 묻혀 있다 구조된 소녀의 엄마는 러시아인이었다. 전쟁은 피아 구분 없이 잔혹했다. 주민들은 앞으로 오랫동안 잠들지 못할 것이다.
키이우 중심부의 셰우첸키우스키 지구는 대통령궁인 마린스키궁과 의회로부터 직선거리로 불과 5㎞ 떨어져 있는 곳이다. 기자의 숙소와도 3㎞ 거리다. 우크라이나 공군에 따르면 미사일 4~6발이 이 지구에 떨어졌다. 공군은 “러시아가 ‘전략적 폭격’을 가했다”고 했다.
공습 직후 찾은 현장은 아수라장이었다. 폭격 잔해가 나뒹굴었고, 매캐한 먼지가 시야를 가렸다. 통제된 현장에선 경찰관과 소방관들이 실종자 수색을 하고 있었다.
피격된 아파트 근처에 사는 알렉산드로(가명)씨는 말했다. “부엌에서 물을 마시는데 폭발음이 들렸어요. 30초~1분쯤 지났을까, 폭발음이 두 번 더 들렸어요. 3, 4분쯤 뒤에 네 번째 폭발음이 났습니다.” 50미터 거리 아파트에 사는 여성은 “가까스로 목숨을 구했다”며 고개를 저었다. 공습 경보조차 없이 미사일이 떨어졌다고 주민들은 말했다.
한 아파트 주민은 “3월부터 5월까지 세 차례나 미사일 공격을 받았다”고 했다. 지은 지 얼마 되지 않은 고급 아파트여서 전쟁 전엔 부러움의 대상이었지만, 이제는 키이우에서 가장 두려운 곳이 돼 버렸다. 주민 올가(가명)씨는 “잠드는 게 무섭다. 이제는 떠나겠다”고 했다.
바딤 데니센코 우크라이나 내무부 장관 고문은 현지 방송에 출연해 “이 지역에 많은 군사 기반 시설이 있기 때문에 러시아가 공격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아파트에선 7세 소녀가 자고 있었다. 아이는 구조되어 인근 어린이병원으로 옮겨졌다. 얼굴, 팔, 다리 곳곳에 부상을 입었다. 병원 직원은 이렇게 전했다. “아이가 의식을 찾자마자 한 말이 ‘남동생 어디 있어요?’ 였어요. 하지만 남동생 소식은 듣지 못했습니다.”
아파트 주변에선 소녀의 엄마가 화제였다. 피격 세 시간 만에 구조된 에카타리나(35)씨는 모스크바 출신인 러시아인이었다. “러시아인이 러시아군의 공격으로 죽을 뻔한 거예요. 과연 누구를 위한 전쟁인가요?” 알렉산드로씨가 말했다.
아파트와 400미터 떨어진 유치원에도 미사일이 떨어졌다. 일요일이라 인명 피해는 없었지만, 유치원 건물은 곳곳이 훼손됐다. 유치원 건물 옆 상수도관이 터지면서 깊은 물웅덩이가 패였다.
우크라이나와 서방 국가에서는 “러시아가 G7 정상회의 일정에 맞춰 경고 메시지를 보낸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미사일이 죽인 건 부유한 국가의 정상들이 아니라 평범한 삶을 꿈꾸던 우크라이나인들이었다.
아파트 주민들은 왜 정치적 이유로 자신들이 폭격 피해를 당해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아파트에 살다 떠났다는 한 여성은 호소했다. “너무 지쳤어요. ‘앞으로 어디에서 살아야 하나’ 하는 걱정뿐이에요. 우리는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고 싶지 않은 죄 없는 사람들이에요. 러시아는 왜 자꾸 우리를 공격하는 걸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