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레이 회담… 우크라이나 사태 향방은
우크라이나를 둘러싼 미국과 유럽·러시아의 셈법이 복잡하게 얽히고 있다. 우크라이나에서 러시아의 입김을 배제해 유럽에서 패권을 강화하려는 미국, 이를 차단하고 과거 소련 제국의 부활을 노리는 러시아, 양쪽의 팽창을 견제하려는 유럽의 치열한 힘겨루기로 사태 해결이 쉽지 않다.
당장 미국과 러시아 양국 고위급이 10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우크라이나 사태 해결을 위해 대화에 나섰지만 이렇다 할 합의점을 찾는 데 어려움을 겪은 것도 서로의 셈법이 다르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12일에는 러시아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간, 오는 13일에는 러시아와 유럽안보협력기구(OSCE) 간의 연쇄 협상이 예정돼 있어 극적 합의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사태의 기저에 미국과 러시아의 패권주의가 자리하는 한 합의는 갈등 해결이 아닌 ‘봉합’에 그칠 것이라는 회의론 역시 만만치 않다.
10일 스위스 회담은 치열한 신경전 속에 이뤄졌다. 미국은 “주권국가(우크라이나)가 자국의 동맹(나토)을 선택할 자유가 있다”며 러시아의 나토 동진 금지 보장 요구를 일축했다. 이에 러시아는 “미국이 타협할 준비를 해야 한다”고 되받아쳤다. 합의가 어려워지자 미국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공격할 경우 북한에 버금가는 제재를 할 것”이라고 압박하고 나섰다.
이런 가운데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와의 독자 논의를 모색 중이라는 뉴욕타임스(NYT)의 보도도 나왔다. 이번 주 일련의 회담이 성과 없이 끝날 가능성이 제기되자 우크라이나가 모스크바와의 자체 협상에 조용히 나서고 있다는 것이다.
러시아 일간 코메르산트에 따르면 우크라이나는 러시아 측에 3단계 신뢰 구축 방안 등 10가지 계획을 제시했다. 여기에는 휴전과 포로 교환, 민간인 접경 통과 지역 개설 등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러시아는 나토의 동진 움직임을 문제 삼고 있다. 미국 주도의 안보 기구인 나토는 지난 1999년 헝가리와 폴란드·체코를 시작으로 옛 소련권이었던 동유럽 국가들을 순차적으로 포섭했다. 러시아로서는 우크라이나까지 내줄 경우 서구 세력과의 완충지대가 사라지는 셈이라 위기감이 클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러시아가 완전히 수세에 몰린 것은 아니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우크라이나를 지렛대로 삼아 미국과 유럽 간 분열을 노리고 있다. 유럽은 만성적인 가스난을 겪고 있다.
러시아는 군사적 이슈는 미국 및 나토, 에너지 이슈는 유럽연합(EU)과 중심 국가인 독일 및 프랑스와의 회담을 통해 미국과 유럽 간에 틈을 벌리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미국이 우크라이나에서 러시아의 영향력을 지움으로써 유럽에서 패권을 강화하려는 의도를 간파한 푸틴이 유럽의 아킬레스건인 에너지 문제를 걸고 넘어진다는 것이다.
여기에 푸틴은 ‘강력한 러시아’ 복원 의지도 불태우고 있다. 미 싱크탱크인 외교정책연구소의 막시밀리안 헤스 연구원은 “푸틴이 카자흐스탄에 곧바로 군대를 투입한 것은 ‘러시아가 있어야 이 지역의 안보가 유지된다’는 메시지를 던진 것”이라고 논평했다.
유럽 내부에서도 우크라이나 사태에 대한 의견은 엇갈린다. 당장 유럽 각국은 미국의 제재가 자국에 미치는 경제적 파장을 파악하는 데 골몰하고 있다. 독일과 프랑스 등은 우크라이나가 전장으로 비화하는 것을 꺼린다. 당장 러시아에 대한 천연가스 의존이 심해 사태가 최악으로 치달을 경우 전력난이 악화할 소지가 크다.
반면 예전 옛 소련의 지배를 받았던 동구권 국가들은 러시아에 대한 미국의 강공책에 찬성한다. 블룸버그통신은 “유럽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할 경우 조 바이든 정부가 준비하고 있는 각종 ‘패키지 제재’가 오히려 유럽 경제에 미칠 손실을 우려한다”고 보도했다. 통신은 특히 “러시아와 직결되는 가스관 노르트스트림2를 막 완공한 독일은 미국의 러시아 제재에 동참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