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아프간 개발원조 자금 지급 중단”
“탈레반의 아프가니스탄 장악이 불러올 경제적 영향은 곧 전 세계에 감지될 것이다.”
17일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이슬람 근본주의 무장조직 탈레반의 귀환이 여성 인권뿐 아니라 경제에도 먹구름을 드리우고 있다며 이같이 전했다. 탈레반을 불신하는 서방국이 줄줄이 돈줄을 조이면서 세계 최빈국이 ‘검은 산업’으로 눈을 돌릴 가능성은 점점 커지고 있다. 미국과 패권경쟁에 나선 중국은 아프간의 막대한 광물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 경제를 둘러싼 탈레반과 세계 각국의 ‘2라운드’가 이제 시작되는 분위기다.
AP통신 등에 따르면 이날 호세프 보렐 유럽연합(EU) 외교·안보 정책 고위대표는 “아프간에 대한 개발원조 자금 지급을 중단했다”고 밝혔다. 앞서 EU 27개국은 올해부터 2024년까지 이 지역에 12억 유로 지원을 약속했는데 원점으로 되돌리기로 했다. 독일과 스웨덴 역시 전날 “아프간이 이슬람 율법을 도입할 경우 돈을 한 푼도 줄 수 없다”고 선을 그었다. 자금지원을 고리로 탈레반에 인권 존중을 압박한 셈이다.
자금줄이 끊긴 아프간은 굶주림 앞에 놓이게 됐다. 아프간은 지난 반세기 끊임없는 정쟁과 내전, 외세 침략과 간섭이 이어지면서 경제가 황폐화됐다. 지난해 세계은행 기준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198억1,000달러에 불과하다. 한국(1조6,310억 달러)의 1.2% 수준이다. 그나마 국제사회 지원은 버팀목이 됐다. 작년 아프간 GDP의 42.9%가 원조에서 나왔다. 올해도 국제사회로부터 33억 달러를 받을 예정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서방이 원조를 줄줄이 끊을 경우 경제 위기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BBC방송은 “아프간 경제는 취약하고 원조 의존형”이라며 “금융지원이 불확실해질 경우 경제 전망은 위태로워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더 큰 문제는 서방의 자금 압박이 아프간을 마약 산업으로 밀어 넣을 수 있다는 데 있다. 이미 아프간은 아편과 헤로인의 원료인 양귀비의 세계 최대 재배지다. 전 세계 생산량의 90% 이상이 이 곳에서 나온다. 탈레반 역시 연간 수익의 60%를 마약 거래로 충당해왔다. 이날 탈레반이 “대체 작물을 마련해 마약 없는 사회를 구현하겠다”며 국제사회의 지속적 지원을 호소했지만, 서방 국가의 외면이 경제난으로 이어질 경우 탈레반뿐 아니라 가난한 농민들마저 양귀비 재배와 마약 판매에 손댈 수밖에 없다.
<허경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