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사 직후 판매 늘고, 주가는 급등
140만명 숨진 총기문제의 실제 주범
‘미래 고객’어린이 상대 마케팅 성행
로비에 뇌물까지…나팔수는 NRA
사상 최악의 라스베가스 총격참사로 미국민들은 깊은 슬픔에 잠겼다. 트럼프 취임 이후 잠잠하던 총기규제 강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대형 참사가 이어져도 총기규제 입법 하나 못하는 정치권에 대한 분노도 거세다. 하지만, 대형 참극의 뒤편에서 표정 관리를 하는 이들도 있다. 바로 대형 총기업체들이다. 총기참사로 주가는 뛰고, 판매는 급증하는 공식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불안과 공포’로 이익을 챙기는 그들에게 참사가 호재가 되고 있는 셈이다. 참사 뒤편에서 미소 짓는 미 총기업체들의 이면을 들춰봤다.
라스베가스 참사는 호재?
미국 총기업체들이 웃음을 감추려 표정 관리에 열심이다. 오바마 퇴임 전 급증하던 총기 판매가 트럼프 취임 이후 급감해 수개월째 슬럼프에서 허덕였던 미 총기시장이 라스베가스 참사로 모든 것이 급반전되고 있어서다. 미국 현대사 최악의 총기참사가 그들에겐 사상 최대의 호재일 지도 모른다.
10월 3일 참사 다음 날 미 총기업체들의 주가가 일제히 치솟았다. 업계 1위인 ‘스텀 러거’(Sturm Ruger, RGR)주가는 이날 4% 급상승했고, ‘스미스&웨슨’으로 알려진 ‘아메리칸 아웃도어 브랜즈’(AOBC)주가는 3% 올랐다.
소총으로 유명한 ‘윈체스터’를 소유기업 ‘올린’(Olin, OLN)의 주가는 이날 무려 6% 폭등했다. 총기업체 주가는 이날 내내 상승곡선을 이어갔다.
‘총기참사는 주가 급등으로 이어진다.’는 공식이 이번에도 예외가 아니었던 셈이다. 지난해 6월의 올랜도 펄스 나이트클럽 참사, 2015년 12월 샌버나디노 사건, 2012년 콜로라도 오로라 극장 총기 난사 사건, 코네티컷 뉴튼의 샌디훅 초등학교 참극 당시에도 마찬가지였다.
대형총기참사가 총기규제 논의로 이어질 것은 분명하지만, 결코 입법이 실현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투자자들은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총기참사->공포확산->주가폭등->판매 급증
대형 총기참사가 발생할 때마다 총기판매가 급증한다는 것은 미 총기업계에서 그간 깨지지 않는 공식과도 같다.
총기난사로 100여명이 숨진 프랑스 파리 테러사건과 14명의 사망자를 낸 샌버나디노 사건 직후였던 지난 2015년 12월, 미 총기업계의 권총 판매는 무려 62%나 급신장했고, 펄스나이트 클럽 사건이 터진 2016년 6월부터 8월까지 20%가 넘는 판매증가세가 3개월간 계속됐다.
600여명의 사상자를 낸 이번 라스베가스 참사도 총기수요 급증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될 것이다.
‘이지스 캐피탈’사 총기업계 전문가 롬멜 디오니시오는 “개인 안전에 대한 우려가 커질 수밖에 없어서 총기 수요를 촉발시킬 것”으로 예상했다. 연간 1,600만정의 총기가 판매되는 미국에서 올해는 얼마나 더 많은 총기가 팔려나갈까.
“140만명이 총으로 죽었는데..”
끊임없이 반복되는 총기사건으로 한 해 수만명의 미국인들이 사망하고 있지만 총기업체들은 눈 하나 꿈쩍하지 않는다.
총기사건으로 흔들리기에는 이미 천문학적인 규모의 산업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총기제조업계와 판매 등 총기관련 산업의 매출규모는 한 해 430억달러에 달하고 있다.
1968년부터 2011년까지 40여년간 총기로 인해 사망한 미국인이 무려 140여만명에 달한다는 충격적인 통계도 있다. 샌안토니오나 댈러스시 전체 인구에 맞먹는 미국인들이 전쟁터도 아닌 총에 맞아 숨진 셈이다.
2013년 한 해 총기로 인한 사망자는 3만 3,636명이었다.10만명 당 10.6명이 총기로 인해 사망한 것. 1만 1,208명이 총기살인, 2만 1,175명은 총기자살로 죽었고, 786명은 총기 부주의나 실수 때문이었다.
어린이 총기판촉 행사까지
총기판매는 늘고 있지만 총기업계에도 고민이 있다. 판매가 늘지만 총기 소유 가정은 감소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카고 대학 조사에 따르면, 1977년부터 2010년까지 약 20여 년간 총기 소유 가정은 감소 해왔다.
이 기간 약 40%가 줄어든 것으로 조사됐다. 그러자, 미 총기업체들은 총기수요 확대를 위한 대책마련에 골몰했다. 해결책은 바로 미성년 어린이들을 잠재적인 총기수요자로 만드는 것이었다.
2008년부터 어린이들에게 초점을 맞춘 마케팅 프로그램이 대대적으로 가동됐다. 미성년 어린이들을 총기에 친숙하게 만드는 문화 프로젝트를 통해 잠재적인 고객으로 확보하는 것이 목표였다.
총기를 마치 장난감처럼 ‘즐거움’으로 유혹하는 광고가 쏟아졌고, 어린이 전용 총기 매거진도 생겨났다.앞장 선 것은 총기업계의 나팔수 ‘NRA‘. 2008년 NRA는 어린이를 위한 총기매거진 ’인사이트‘를 창간했다. ’유스데이‘ 행사를 만들어 부모가 어린 자녀에게 총기사용법을 가르치도록 했다.
2013년에는 3살짜리 어린 아이에게 할아버지의 선물이라며 1,000달러짜리 평생회원권을 수여하기도 했다. ‘마를린’라이플 같은 청소년 맞춤형 제품도 줄지어 출시됐다. 수요를 만들기 위한 전략적 행보였다.
뇌물에 무장강도 출신 대표까지
‘죽음’을 파는 미 총기업체들의 부도덕한 탐욕은 끝이 없다. 총기 판매를 위해 뇌물을 주다 적발되거나 암시장에 대량으로 총기를 제공하고 있다는 의혹도 적지 않다.
업계 3위 ‘스미스앤 웨슨’사는 지난 2010년 한 아프리카 국가에 총기 납품 계약을 따기 위해 FBI 고위 관리에게 뇌물을 건네려다 부사장이 기소됐고, 2014년에는 인도네시아와 파키스탄 관리들에게 뇌물을 건넨 사실이 들통 나 200만달러의 벌금을 물기도 했다.
특히, 이 업체는 대표가 과거 무장 강도였다는 사실이 밝혀져 사임한 일도 있었다.
2004년 애리조나 리퍼블릭은 제임스 조셉 마인더 회장이 한때 미시건주에서 악명 높았던 ‘샷건 무장강도단’ 중 한 명이었다고 보도해 파장을 일으켰다.
미 총기업체들이 멕시코 암시장에 대량으로 총기를 제공하고 있다는 의혹도 있다. 연방의회조사국 보고에 따르면, 미국보다 훨씬 엄격한 총기규제법을 시행하고 있는 멕시코에서 압수된 총기의 87%가 미국 총기업체들이 제조한 것으로 드러나 의혹이 커진 적도 있다.
총기업계의 나팔수 NRA
갤럽의 최근 여론조사에 따르면, 미국인 대다수가 보다 강력한 총기규제가 필요하다는데 동의한다. 1990년대의 70%보다는 낮아졌지만 55%의 미국인들이 총기규제를 지지한다는 조사다. 그렇다면 미국인 과반수가 지지하는 강력한 총기규제는 왜 실현되지 않는 것일까.
바로 미 총기업계의 나팔수 역할을 자임한 ‘NRA’ 때문이다. 연방 차원이든 주 정부 차원이든 총기규제 입법을 막기 위해서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 총기소유를 지지하는 보수 유권자를 무기로 힘을 과시하고, 정치 기부금으로 우호적인 정치인들을 만들어낸다.
하지만, NRA의 로비 파워의 원천은 돈을 대는 총기업체들로부터 나온다. 업계 1위 ‘스텀 러거사’는 판매된 총기 1정당 1달러씩 NRA에 기부하며 다른 업체들도 매번 거액을 기부한다. NRA의 로비력은 총기규제 입법을 저지하는데 그치지 않고, 기존의 규제까지 없앨 정도로 막강하다. 2005년 연방 의회가 제정한 ‘PLCA 액트’가 대표적이다.
이 법은 미 총기업체들이 손해배상 민사소송을 당하지 않도록 사실상의 면책특권을 부여한 것이다. 이 법의 제정으로 총기업체를 상대로 한 주 차원의 민사소송 제기가 어려워졌다.
<김상목 기자>
숫자로 본 미 총기산업
135억달러총기제조업체들의 연간 매출액. 15억달러가 순수익
429억달러총기산업의 경제규모
3억1,000만정미국인 보유하고 있는 총기 숫자
1,084만7,792정2013년생산된 총기 숫자.
2,096만8,273회총기구입을 위해 신청한 신원조회 건수
31%미 전체 가정 중 총기를 보유하고 있는 비율
5정평균 총기 보유 갯수. 25정 이상 보유자는 3%
29% vs. 43.7% vs. 55.9%지역에 따른 총기소유 비율. 각각 교외, 도심, 농촌 지역.
총기수요 확대에 혈안이된 미 총기업체들에게 미성년 아동은 잠재적인 미래의 고객들이다. 2013년 NRA총회의 ‘유스데이’ 행사에서 한 여자 어린이가 총기 사용법을 배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