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유창 목사 혜존(몽고메리 사랑 한인교회)
“여기저기서 단풍잎 같은 슬픈 가을이 뚝뚝 떨어진다. 단풍잎 떨어져 나온 자리마다 봄을 마련해 놓고 나뭇가지 위에 하늘이 펼쳐 있다. 가만히 하늘을 들여다보려면 눈썹에 파란 물감이 든다…. 소년은 황홀히 눈을 감아본다.”
슬픔에서 자연의 이치를 깨우치고 또한 거기에서 희망의 신앙을 승화시킨 시인 윤동주의 위대함을 발견해봅니다. 이것은 소위 원시복음(The Original Gospel)이라 일컫는 창세기의 아담의 타락과 형벌을 기록한 창세기 3장 15절말씀에서 은혜의 패러독스를 예언하시는 하나님의 강력한 메시지입니다.
사탄 마귀가 뱀의 형상으로 나타나 아담과 하와를 타락시킨 결과 하나님의 진노의 형벌이 아담, 하와, 뱀에게 동일하게 내렸지만 인간은 공허한 존재로 몰락하는 것이 아니라, 두번째 아담이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사탄의 파멸을 가져오고 사람이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대승리로 역전되는 패러독스의 은혜복음이 선포되고 있습니다(롬 5:12~21). 이것은 눈에 보이는 가을의 단풍잎이 낙엽 되어 뒹구는 가을의 슬픔을 마침내 봄이 찾아오게 만드는 자연의 역리현상을 희망으로 축복하시는 하나님의 섭리와 동일합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사람은 세가지를 이긴다고 종교개혁자 존 칼빈(John Calvin)이 명확하게 밝혔기 때문입니다. 선악과를 따먹음으로써 하나님과 약속을 어긴 것은 최초의 인간, 첫번째 아담의 치명적인 실수였지만 예수님의 역사적 개입(Intervention of History)으로 이 땅에 오셔서 그 모든 잘못을 극복하게 하신 하나님의 섭리가 이루어진 것은 은혜의 힘입니다.
세가지 은혜의 힘은 구체적으로 첫번째, <죄>에서 승리. 두번째, <죽음>에서 승리. 세번째 <마귀>에게 승리. 이 강력한 은혜의 힘이 인간을 허무의 실존 아래 비참하게 끝내게 하지 않고 공허와 허무의 실존적 존재에서 실유(Being)의 성취의 존재로 승리하게 하였습니다. 창세기 3:15의 성취는 존재하시는 하나님, 존재하시는 예수 그리스도, 존재하는 언약인 성경말씀이 실유의 은혜(The Grace Of Being) 가운데 확보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은혜의 실유> 속에 존재합니다. 그러므로 <실유의 은혜(The Grace of Being)>가 인간의 실존입니다. 결코 죽음이나 죄가 그 미래를 좌우할 수도 결정할 수도 없는 신비한 은혜의 존재입니다. “여기저기서 단풍잎 같은 슬픈 가을이 뚝뚝 떨어진다…봄을 마련해 놓고 나뭇가지 위에 하늘이 펼쳐져 있다.” 가을은 작별을 고하는 슬픈 운명이지만 동시에 파릇한 새싹이 돋아나오는 희망의 봄을 약속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타락을 질병과 죽음으로 그 형벌을 다스렸지만 용서와 생명으로 승리의 은혜, 실유의 은혜(The Grace Of Being), 카타르시스의 은혜(Grace Of Catharsis)로 자비를 베푸셨습니다(사 53:5).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요한복음 10장 12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