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연 “실패해도 기술은 남는다”
미 네트워크 구축 등 전폭 지원 속
김동관 차륜형 개발 선제투자 결실
본계약 땐 10조원 규모 사업 확보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미국 육군의 차세대 기동전술화포(MTC) 사업 시제품 공급 업체로 단독 선정된 것은 ‘K방산’의 쾌거로 꼽힌다. 과거 미국의 포병 전력을 지원받았던 한국이 76년 만에 미국에 화포를 공급하는 국가로 발돋움했다는 상징성은 물론, 독일 라인메탈과 영국 BAE시스템즈, 미국 제너럴다이내믹스, 이스라엘 엘빗시스템즈 등 세계 최상위 방위산업 기업들을 제치고 얻어낸 성과라는 점에서다. 과감한 선행 투자를 결단한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과 치밀한 시장조사와 전략 수립을 주도한 김동관 한화그룹 수석부회장의 2대에 걸친 뚝심 경영이 결실을 얻었다는 분석에 힘이 실린다.
이번 사업은 미 육군이 기존에 운용하던 노후 견인포 M777을 대체하기 위해 추진하는 핵심 전력 현대화 프로젝트다. 한화는 자동화 포탑 시스템과 검증된 차체 기술력을 앞세워 글로벌 경쟁사들을 따돌리고 시제품 단독 공급 업체로 낙점됐다. 미 육군은 당초 사거리 연장 자주포 사업(ERCA)을 통해 궤도형 화포 자체 개발을 추진했으나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신속한 사격과 진지 이탈이 가능한 기동화포의 중요성이 부각되자 차륜형 자주포 도입으로 방향을 틀었다.
미군의 수요 변화를 한발 앞서 파악하고 기민하게 대응한 ‘전략의 승리’라는 분석도 잇따른다. 한화는 2024년 3월 미 육군 예산안에서 차륜형 자주포 도입 흐름을 조기에 포착하고 같은 해 12월 K9MH 자체 개발에 전격 착수했다. 2025년 상반기 기본·상세 설계를 끝낸 한화는 올해 1분기 첫 시제품을 완성했다. 개발 착수부터 실물 제작까지 걸린 시간은 1년 남짓, 전체 개발 여정은 30개월에 불과했다. 1989년 개발 착수 이후 약 40년간 축적된 기술과 투자, 정부와 군 당국의 지원이 뒷받침됐기에 가능한 속도였다는 게 한화 측의 설명이다.
2대에 걸친 그룹 차원의 방산 육성 의지 또한 주효했다. 김 회장은 “실패해도 좋다. 자주국방을 위한 기술은 남는다”는 비전과 신념 아래 방산 부문에 대한 전폭적인 투자와 수출을 위한 미국 내 네트워크 구축에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김 회장의 꿈은 장남인 김 수석부회장으로 이어졌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국제 정세가 급변하는 상황에서 유럽 전역에 임직원을 보내 정보를 수집하는 한편 대화 채널을 구축해 수출 성과를 올리는가 하면 새로운 자주포에 대한 미군 수요를 미리 예측해 미국 시장 공략을 위한 선제적인 투자도 단행했다.
김 수석부회장이 주도해 2024년 말 성사시킨 필리조선소 인수도 미국 상선 및 방산 시장 진출을 위한 교두보가 됐다는 점에서 큰 성과로 꼽힌다. 이달 13일(현지 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미국 내 조선소를 소유한 외국 기업이 한시적으로 본국에서 최대 2척까지 함정을 건조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국가 안보 각서에 서명한 가운데 필리조선소를 보유한 한화가 미 해군 함정 건조에 나서고 K9 차륜형 자주포 양산까지 현실화하면 한화는 바다와 육지 양쪽에서 동시에 미국 방산 시장에 깃발을 꽂게 된다.
업계가 주목하는 대목은 이번 계약 규모 자체보다 향후 이어질 후속 사업 기회다. 미 육군이 통상 시제품 평가 후 결함이 없으면 해당 기종으로 최종 양산 계약을 맺는 관례를 고려할 때, 10조 원 안팎에 달하는 본양산 사업 진입이 유력하다. 미군이 운용 중인 M777이 1000문 안팎인 점을 감안하면 후속 양산 물량은 수백 문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서울경제=송주희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