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포청 출범 한달 / 이것만은 바꾸자
국 회·재외정책 입안자들
‘검은머리 외국인’취급
‘교포’명칭·인식 바꿔야
‘검은머리 외국인’‘똥포’ 건보 먹튀’…
미국을 비롯한 해외에 살고 있는 한인들에 대해 일부 한국인들이 가지고 있는 부정적인 인식을 대표하는 표현들이다. ‘검은머리 외국인’은 본래 한국에서 금융범죄를 저지른 뒤 외국 국적을 이용해 처벌을 회피하는 몇몇 한인들을 경멸하는 의미에서 탄생한 금융가의 은어였다. 이제 이 표현은 한인들이 혜택만 누리고 책임은 지지 않으려 한다는 편견을 반영하는 말로 회자되고 있다.
간혹 한국에서 해외에 나가있는 한인들을 비꼬아서 말할 때 ‘똥포’라는 표현을 쓴다. 미주 한인은 작은 자영업이나 하면서 사는 ‘미국 거지’라는 말이 한때 TV 드라마 대사에 버젓이 등장하기도 했다. 중국과 인도에 이어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이민자 규모가 큰 한국임에도 불구하고 떠난 자와 남은 자 간의 골은 이처럼 깊다.
1990년대 중반 미주 한국일보 등 한인 언론사를 중심으로 교포의 교(僑)자가 ‘남의 집에 붙어서 사는 삶’이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으니 교포라는 표현 대신 ‘동포’ 혹은 ‘한인’이라고 쓰자는 캠페인이 전개됐다. 동포는 같은 핏줄을 이어받은 사람들. 같은 나라에 살던 다른 나라에 살던 같은 민족 의식을 가진 사람 모두를 가리킨다. 외국에 거주하는 뜻을 가진 교포보다 포괄적 의미다. 지금은 한국 정부에서도 해외 한인들에 대한 호칭을 ‘재외동포’라는 표현으로 통일시키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기관 공무원이나 지상사 주재원, 유학생, 관광객 등 아직도 많은 한국인들은 교포라는 표현에 익숙하다. 심지어 한국 언론사들이 해외 한인들과 관련된 기사를 작성할 때도 여전히 교포가 압도적이다.
70년대 유신시대와 80년대 반미 분위기 탓인지 해외 한인들을 조국을 버린 자로 매도하는 그릇된 국민정서도 여전하다. 이런 잘못된 국민정서를 이용해 표심을 얻으려는 얄팍한 한국 정치인들도 있다. 폐해가 명백한 선천적 복수국적 독소 조항들의 개정이 쉽지 않은 것도 ‘병역 기피’라는 색안경을 쓰고 보는 한국 정치인들의 부정적 인식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한국 오자마자 건보 9,000만원 혜택… 외국인 장인 ’먹튀‘ 막는다’ 이는 지난해 12월7일자 한국의 한 중앙 일간지에 실린 헤드라인 제목이다. 이 기사는 일부 중국동포 근로자가 아픈 부모와 장인·장모를 한국으로 모셔 와 저렴하게 치료받고 출국하는 얌체 행태를 막자는 취지였으나 그 불똥은 멀쩡한 한인들로까지 튀고 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남인순 의원실이 최근 한국 건강보험공단에서 제출받은 ‘외국인 보험료 부과 대비 급여비 현황’ 자료에 따르면 외국인 관련 건보 재정수지는 ▲2018년 2,255억원 ▲2019년 3,658억원 ▲2020년 5,729억원 ▲2021년 5,125억원 등 4년간 총 1조6,767억원의 누적 흑자를 기록했다.
이는 한국 건보공단이 치료비 등에 쓴 급여비보다 훨씬 더 많은 보험료를 한인들을 포함한 외국인들이 냈다는 의미다. 특히 미국 국적 가입자들의 경우 2021년 682억6,000만원에 달하는 흑자를 기록한 것으로 조사됐다.
그럼에도 지난 달 한국 보건복지부는 외국인 건보 혜택 기준을 현행보다 강화하기로 결정했다. 이 때문에 미주 한인사회 일각에서는 한인들이 차별받지 않도록 건강보험 정책 마련에 있어 동포 대상 여론 수렴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한 나라의 정책은 정책 수요자에 대해 정책 입안자가 어떤 비전과 방향성을 갖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윤석열 정부의 결단으로 전 세계 한인들의 오랜 숙원인 재외동포청이 지난달 5일 출범했다. 출범에 앞서 지난 5월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재외동포정책의 비전 개발’ 정책토론회에서 전문가들은 “그간 딱 떨어지는 재외동포정책이란 게 한번도 없었다”는데 견해를 같이 했다.
일부 한국인들이 갖고 있는 재외동포에 대한 삐딱한 시선은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이러한 부정적 정서가 정책을 수립하는 정부 부처 공무원들 사이에서도 공유되고 있다면 백년 앞을 내다 본 체계적인 동포정책 수립은 난망할 것이다. 임채완 재외동포연구원장은 “재외동포가 중요한 민족자산이라는 인식을 전제로 한국인과 재외동포 사이에 호혜와 상생이 가능한 동포 정책 수립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노세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