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지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 선정된 캐시 박 홍 작가
“우리 딸이 피부색에서 자유롭기를, 인종과 경제적 평등이 실현되는 국가에서 자라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시사주간지 타임의‘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에 선정된 캐시 박 홍(45) 작가는“몹시 흥분되고 사실인가 싶어 한동안 멍했다”고 소감을 밝혔다. 그녀가‘이 시대의 아이콘’으로 뽑혀 타임지 커버를 장식한 것은 지난해 출간된 자서전적 에세이‘마이너 필링스(Minor Feelings)’의 반향이다.‘마이너 필링스’는 소수적 감정으로 번역된다. 사회적 소수자가 안고 사는 불안과 짜증, 수치심과 우울감 등을 통칭한다. LA 출신 한인 2세로 뉴욕 브루클린에 거주하는 홍 작가와 지난 22일 전화와 이메일로 인터뷰를 했다.
■서툰 영어는 나의 유산
1976년 홍성달·혜숙씨 부부의 장녀로 LA에서 태어났다. 유나이티드 패브리케어 서플라이 대표이자 남가주 연세대 동문회장을 역임한 부친 홍성달 회장과 어머니 박혜숙씨는 미국의 이민 금지가 풀린 직후인 1970년대 초 펜실베니아주 이이리 외곽으로 이민을 왔고 LA 한인타운으로 이주했다.
하시엔다 하이츠, 퍼시픽 팰리사이즈에서 유년기를 보냈고 집에서 한국어로 말했기 때문이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까지 영어를 거의 몰랐다고 한다. 그는 초등학교 시절 ‘플레이보이’라고 쓰여진 티셔츠를 입고 학교에 간 적이 있었다. ‘플레이보이’가 어떤 의미로 통하는지 정확히 몰랐던 것이다. 그는 “한 동급생이 ‘너 플레이보이가 무슨 뜻인지 알아’라고 물었을 때 ‘노우’라고 대답할 수 밖에 없었고 웃음거리가 되었다”며 처음으로 알게된 ‘마이너 필링스’였을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그녀에게 ‘이질적 언어 환경’은 역설적으로 ‘영어를 탐구하게’ 만들고 갈등하는 의식에 가장 근접한 자신만의 어휘소 목록을 쌓게 한 동력이 되었다고 한다. “미국에서 아시아인으로 자란다는 것은 권위있는 사람이어야 할 부모의 굴욕을 목격한다는 것, 그리고 부모에게 의지하지 않는 법을 배운다는 것을 뜻한다. 부모가 아이를 보호할 수 없기 때문이다”라는 그의 고백이 이민 2세대에게 주는 따스한 위로처럼 들리는 이유다.
■나를 만들어온 ‘감정들’ 파헤치기
“가족과 함께 한국을 방문해 친지와 어울리면 정말 즐겁죠. 한국이 주는 따스한 위안은 내 뿌리에 대한 보다 확고함에서 느껴지는 겁니다”
작가는 이민 1세대가 미국에서 겪는 고통은 인종차별보다는 ‘고향을 떠나왔다는 뿌리 뽑힘’에 있다고 했다. 애당초 자신을 한국인이라 여기기 때문에 한인타운을 제2의 고향쯤으로 받아들인다고.
하지만 2세대는 다르다. 미국에서 나고 영어를 쓰며 자라 교육 받고 일하는 미국인이지만 어느 누구도 미국인이라고 인정하지 않는 데에서 고통이 시작된다고 표현했다. 그가 ‘시’를 통해 아시안 아메리칸으로 성장한 그의 의식 속 억눌린 부분을 캐내려한 이유기도 하다.
미술에 재능과 관심이 많았던 홍 작가는 진보 성향의 명문 예술대학인 오벌린 칼리지에 입학한 뒤 본격적으로 ‘시’를 쓰기 시작했다. 1970~80년대 인종과 계층문제, 마약 등 당시 금기시 됐던 소재들을 과감히 코미디 소재로 삼아 큰 인기를 누렸던 흑인 리처드 프라이어의 스탠드업 코미디를 좋아했던 그는 추악한 현실이 코미디로 둔갑하는 스토리텔링에 매료되었다고 했다.
아이오와 대학원 문예창작과에서 시작과 예술 비평 활동을 병행한 그는 2002년 첫 시집 ‘몸을 번역하기’(Translating MO’UM)를 출간하며 ‘몸’이라는 한국어를 제목에 그대로 넣었다. 이 시집은 푸시카트상을 수상했고, 2008년 펴낸 두 번째 시집 ‘댄스 댄스 레볼루션’(Dance Dance Revolution)으로 바너드 여성 시인상을 수상했다. 이어 2012년 출간한 시집 ‘제국의 엔진’(Engine Empire)으로 윈덤캠벨문학상, 구겐하임 펠로십, 국립예술기금 펠로십을 수상했다.
■사소하지 않은 ‘마이너 필링스’
럿거스 대학교 뉴왁 캠퍼스 예술대학원 교수로 재직 중인 그는 ‘마이너 필링스’(Minor Feelings: An Asian American Reckoning)로 올해 초 전미도서비평가협회 자서전 부문을 수상했다. 팬데믹 직전인 2020년 2월 말 출간된 이 책은 뉴욕타임스(NYT) 논픽션 분야 베스트셀러로 선정되었고 코로나19 확산 이후 아시안 혐오 범죄가 급증하면서 ‘새로운 목소리, 새로운 영향력’을 지닌 작가로 그를 급부상시켰다.
지난 8월에는 마티 출판사에 의해 한국어판도 나왔다. 그는 한국 독자를 위해 ‘미국의 인종차별사’를 간략하게 설명하며 “미국에서 보이지 않는 인종인 아시아인의 몸 안에 살면서 느끼는 자신의 상반된 감정을 투명하게 풀어넣고 싶었다. 남들에게 좀 더 이해받고 눈에 덜 안 보이는 존재가 되고자 이 책을 썼다”고 집필 의도를 밝혔다.
인종차별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고 아시안이 백인 그룹에 들어갈 수는 있겠지만 차별을 받는 다른 그룹이 있을 거라 생각한다는 그는 차단된 상태에 처한 ‘비백인’은 과거에 식민 지배를 받았던 자, 조상이 이미 멸망을 겪은 아메리카 원주민 같은 생존자, 서구 제국이 초래한 기후 변화 때문에 악화된 가뭄과 홍수 또는 집단 폭력으로부터 피신한, 현재 멸망을 겪고 있는 이주자와 난민이라고 했다.
“우리가 힘을 합하면 할 수 있어요. 다른 소수 민족들과 함께 모두를 받아들이는 나라를 건설할 수 있습니다”
■ 캐시 박 홍 약력
-럿거스대 교수, 시인, 수필가
-‘더 뉴 퍼플릭’ 시 부문 편집장
-홍성달·박혜숙 부부 장녀로 1976년 LA 출생
-오벌린 칼리지 졸업
-아이오와대 대학원 문예창작 석사
-첫 시집 ‘몸을 번역하기’로 푸시카트상 수상
-두 번째 시집 ‘댄스 댄스 레볼루션’으로 버나드 여성 시인상 수상
-시집 ‘제국의 엔진’으로 윈덤캠벨문학상 등 수상
-수필집 ‘마이너 필링스’ NYT 베스트셀러, 전미도서비평가협회 자서전 부문 수상
<하은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