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지는 먹거리 생태계
쌀값 열달새 18% 폭락한 17만원
정부 약속 20만원에 한참 못미쳐
“식당들은 공깃밥 한 공기에 2000원씩 받는데 농민들은 밥 한 공기에 200원도 간신히 받고 있습니다. 생산비는커녕 일한 품값도 안 나올 지경입니다.”
‘쌀의 날’ 기념일을 불과 열흘 앞둔 9일 전국농민회총연맹은 “이대로라면 올가을 역대 최악의 쌀값 폭락이 올 것”이라며 경남 의령군에서 3800㎡(약 1150평) 면적의 논을 갈아엎었다. 앞선 6일에는 8개 농민 단체가 서울역 인근에서 ‘쌀값 보장 농민대회’를 열고 대책 마련을 촉구하기도 했다.
올해로 10회째를 맞는 쌀의 날을 앞두고 정부와 농협이 각종 행사 준비에 한창이지만 쌀값 폭락세가 지속되면서 농가 민심은 바닥을 치고 있다. 16일 통계청에 따르면 5일 기준 산지 쌀 가격은 가마(80㎏)당 17만 8476원으로 지난해 10월(21만 7552원)에 비해 17.5% 폭락했다. 정부가 약속한 가마당 20만 원에 크게 못 미치는 가격이다. 최근 5년간 산지 쌀값 추이를 살펴봐도 6월 쌀값이 전년도 11월에 비해 5% 이상 하락한 해는 2022년과 올해뿐이다.
2022년 쌀 폭락 사태 2년 만에 악몽이 재연되면서 농민들 사이에서는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정부는 6월 쌀 5만 톤을 직접 매입했는데 이는 농업계 요구(15만 톤)에 크게 못 미치는 양이다. 2022년에도 농업계에서는 정부의 구곡(2021년산) 쌀 37만 톤 격리가 충분치 않다고 보고 추가 매입을 요구했지만 정부는 이에 응하지 않다가 10월 신곡 수확이 시작되고 나서야 구곡을 격리하는 4차 매입을 추진했다.
정부가 손을 쓰지 못하고 있는 건 쌀뿐만이 아니다. 사실상 더 큰 문제는 쌀 이외 곡물에 있다. 쌀은 재배 농가가 많고 생산이 상당 부분 기계화된 덕분에 350만 톤 안팎의 생산량을 매년 꾸준히 유지해 자급률(한 나라의 전체 곡물 소비량에서 자국산 곡물이 차지하는 비율)도 100% 안팎을 기록하고 있지만, 수요가 급증하는 밀·옥수수 등 타 주요 곡물의 자급률은 곤두박질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소비량 36㎏을 기록해 ‘제 2의 주식’으로 자리 잡은 밀의 자급률은 1960년 35.3%에서 2022년 1.3%까지 주저앉았다. 옥수수와 콩도 같은 기간 각각 50%에서 4.3%, 92.6%에서 28.6%로 급감했다.
쌀을 제외한 모든 곡물들의 자급률이 급감하면서 우리나라 식량안보가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우리나라의 최근 3개년(2021~2023년) 곡물 자급률 2008년(31.3%)보다 11.8%포인트 급감한 19.5%를 기록했다. 같은 기간 전 세계 평균 곡물 자급률은 100.7%에 달한다.
식량 자급률 역시 2022년 기준 46.0%, 사료용까지 합하면 반 토막인 22.3%에 불과하다. 이상기후와 식량의 무기화는 위기를 더욱 키우고 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기후변화 영향 반영 시 2033년 밀, 옥수수 수입 단가는 미반영 시 추정치보다 각각 43.9%, 41.3% 급등할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도 뒷짐만 지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뚜렷한 성과가 나오지 않고 있다. 생산량 증대가 가장 시급한 밀과 관련해 ‘1차 밀 산업 육성 기본 계획(2020년 11월)’을 내놓고 매년 시행 계획을 발표하고 있으나 올해 밀 재배 면적은 9536㏊로 지난해보다 17.8%나 축소됐다. 저온 피해와 잦은 비 등 자연재해까지 겹쳐 생산량 또한 큰 폭의 감소가 불가피하다.
<서울경제=정다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