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아기 퍼가기 시대’
1966년 고교 3학년이던 한 소녀는 임신으로 인해 학업을 중단하고 대도시에 있는 유급 위탁 가정으로 보내졌다. 그는 같은 해 7월 딸을 출산했다. 소녀는 직접 키우고자 했으나 그의 딸은 태어난 지 열흘 만에 종교단체가 운영하는 입양기관으로 보내졌다. 그리워하던 딸과의 재회는 30년이 지난 1996년에서야 이뤄졌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딸은 2007년 8월 루게릭병으로 생을 마감했다.
미국인 캐런 윌슨-부터바우가 엄마로서 실제로 겪은 일이다. 1950∼1960년대 미국에서는 임신한 미혼 여성이 부터바우와 비슷한 일을 비일비재하게 당했다. 최근 한국에서 번역 출간된 ‘아기 퍼가기 시대’는 미국 사회가 미혼모의 모성을 억압하고 어머니로서의 권리에 부당하게 개입한 역사에 대한 부터바우의 폭로이다.
책은 ‘아기 퍼가기 시대’(Baby Scoop Era)로 지칭되는 2차 대전 이후부터 1972년에 이뤄진 비공개 영아 입양 관행과 이 과정에서 미혼모가 겪은 일 등을 추적하고 미국 정부와 관련 당국이 임신한 백인 미혼 여성을 억압한 역사를 촘촘하게 엮어냈다.
‘미국의 미혼모, 신생아 입양, 강요된 선택’이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에 따르면 미국에서는 아기 퍼가기 시대에 약 400만명이 입양 보내졌다. 이 가운데 약 200만명이 미혼모의 아기로 추정된다. 이 시대의 여성은 성적 자기 결정권이라는 측면에서 매우 취약한 환경에 놓여 있었다.
결혼하지 않은 여성이 피임약이나 피임 도구를 구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고, 임신과 출산에 관한 정보에 접근하기도 쉽지 않았다. 당시는 “새로운 성적 행동의 표준”이 형성되는 시기였으나 피임은 쉽지 않았고 사회는 혼전 임신 여성을 “문제 있는 여자애들”이라는 시각으로 규정했다.
2차 대전 후 입양 관계자들은 미혼모에게 아기를 포기하고 입양 보낼 것을 강력하게 권하고, 입양 시장이 본격화한다.
미국에서는 아기 퍼가기 시대에 150만명 이상이 강제 입양으로 아기를 뺏긴 것으로 추산된다. 문헌, 사회복지 담당자 및 어머니들의 증언에 의하면 당시 미혼모는 범죄자 취급을 받았고 입양 분야의 전문가들이 이런 편견을 부추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