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태어난 한인 2세라도 선천적 복수국적 신분으로 한국에 3년 이상 체류하면 병역 의무를 이행해야 한다는 한국 헌법재판소(헌재)의 결정이 내려졌다. 이에 따라 한인 2세 남성들이 한국에 장기 체류할 때 각별한 주의가 요구된다.
헌재는 지난 6일 A씨 등이 ‘병역법 시행령 128조 7항 2호는 위헌’이라며 낸 헌법소원 사건에서 재판관 전원 일치 의견으로 합헌 결정을 내렸다. 이 병역법 조항은 재외국민 2세가 3년 넘게 한국내에 머물면 병역 의무를 이행하도록 하는 내용이다.
현행법상 선천적 복수국적 신분의 재외국민 2세는 37세까지 국외여행 허가를 받는 형식으로 병역을 연기할 수 있다. 하지만 병역법 시행령 128조 7항 2호는 18세 이상 재외국민 2세가 3년을 초과해 국내에 체류하면 병역 연기 대상에서 제외하도록 하고 있다.
단, 선천적 복수국적을 가진 한인 2세가 만 18세가 되기 전에 국적이탈을 해 더 이상 한국 국적이 살아있지 않은 경우에는 병역의무를 이행할 필요가 없어 이번 결정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
이 조항은 당초 1994년 1월1일 이후 출생자에 대해서만 적용됐지만 2018년 5월 개정되면서 한국 국적이 살아 있는 모든 재외국민 2세가 대상이 됐다. 다만 국내 체류 기간은 개정된 시행령이 시행된 2018년5월29일 이후 국내 체류 기간부터 계산하도록 했다.
이에 1993년 12월31일 이전에 출생한 재외국민 2세 A씨 등은 개정된 시행령이 자신들의 행복추구권과 거주 및 이전의 자유 등을 침해한다며 헌법소원을 냈다.
그러나 헌재는 “재외국민 2세는 외국에서 출생해 출생, 성장, 언어, 교육, 문화 등에 차이가 있어 병역의무의 이행을 강제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상당한 특례를 부여한 것”이라며 ”국내에 3년을 초과해 머물면 생활의 근거지가 대한민국이라고 볼 수 있으므로 특례 배제에 합리적 이유가 있다“고 판시했다.
헌재는 ”재외국민 2세는 1994년 1월 1일 이전·이후 출생자 모두 병역의무 이행을 연기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없다“며 ”출생연도와 상관없이 특례를 배제해도 불합리하다고 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즉, 미국에서 태어난 선천적 복수국적자들의 경우 한국에 따로 출생신고를 하지 않았다 해도 만18세 이전에 국적 이탈을 하지 않았다면 3년 넘게 한국에 머물 경우 병역 의무를 이행해야 하는 것이다.
선천적 복수국적이란 미국 등 해외에서 태어나 출생국가 국적을 부여받은 2세라도 출생 당시 부모 중 한 명이라도 한국 국적자일 경우 자동적으로 한국 국적이 부여돼 자신이 원하지 않는데도 복수국적자가 되는 한국 국적법상 제도다. 이와 관련 전종준 변호사(워싱턴 로펌 대표)는 “이번 헌재 결정에 따라 내년 국적법 개정이 더욱 더 중요해졌다”며 “선천적 복수국적자들이 한국에 장기 체류 시에도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새로운 국적법 조항이 마련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석인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