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DC현대산업개발이 여러 조건을 내걸기는 했지만 아시아나항공 인수 의지에 변함이 없다고 밝힘에 따라 산업은행·수출입은행 등 채권단도 일단은 안도하는 분위기다. 다만 HDC현산이 “인수조건의 원점 재협의”를 요구하면서 앞으로 협상 과정에서 치열한 줄다리기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우선 HDC현산 측은 사전에 채권단에 입장문을 전달하지는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채권단도 9일 오전10시께 HDC현산의 공개 입장문이 나오자 관련 부서를 중심으로 분석 및 대응 방안 모색에 착수했다.
그동안 채권단·금융당국 내에서는 HDC현산이 아시아나 인수를 포기하는 것에 대해 우려가 컸다. HDC현산이 두 손을 든다면 아시아나를 채권단 관리하에 둬야 하고 항공업황이 최악인 상황에서 새 주인을 찾을 수 있을지도 미지수였다. 아시아나 주식(구주)을 판 대금으로 회생하려던 금호그룹을 다시 채권단이 관리해야 하는 상황도 예상됐다.
문제는 재협상 과정이다. 시장에서는 HDC현산이 아시아나 인수 직후 채권단에 갚기로 한 돈의 만기 연장을 요구할 것으로 보고 있다. HDC현산은 지난 4월 유상증자로 1조4,665억원을 아시아나에 투입한 후 이 중 1조1,745억원으로 채권단 차입금을 상환할 계획이었는데 만기를 늘리는 식이다. 아시아나에 4월 1조7,000억원의 추가 대출을 해준 채권단 입장에서는 특수한 상황을 감안해 만기 연장 정도는 받아들일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HDC현산은 금호산업으로부터 아시아나 지분 30.77%를 3,228억원(주당 4,700원)에 사들이기로 했는데, 매입가를 절반 정도로 깎아달라는 요청도 할 것으로 보인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아시아나 주가가 3월 2,000원대까지 떨어지는 등 지난해 말 계약할 당시보다 낮은 가격에 형성돼 있기 때문이다.
금호산업은 주식 매각대금 3,228억원 중 1,300억원은 계열사 금호고속이 산은으로부터 진 1,300억원을 갚고 나머지 자금은 그룹 재건에 투자한다는 계획을 갖고 있었는데 받을 수 있는 금액이 줄어들어 타격을 입을 수 있다. 채권단 입장에서는 HDC현산의 원활한 인수를 위해 구주 가격을 깎도록 금호 측에 요구할 수 있겠지만 반대로 금호 측에 돌아갈 돈이 너무 적으면 금호도 안 좋아질 수 있어 고심할 수밖에 없다.
<이태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