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권 취득 못해 ‘국적불명’ 상태 방치
과거 범죄 연루돼 추방당할까 전전긍긍
‘어린 시절 입양돼 한 평생 미국에 살았지만 미국인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국적 불명의 존재’. 한국에서는 성공한 입양인 사례가 주로 부각되지만, 강제 추방의 불안감을 평생 안고 사는 입양인도 적지 않다.
2일 한국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통계가 관리되기 시작한 1958년부터 2012년까지 미국으로 입양된 입양인 수는 총 11만1,148명이다. 이중 미국 국적(시민권) 취득이 확인된 이는 9만1,719명이다. 해외입양인 단체들은 나머지 1만9,429명 중 상당수가 시민권을 취득하지 못한 채 국적 불명 상태로 방치돼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영주권만 있을 뿐 시민권은 없다 보니 성인이 된 이후 여권 발급 과정에서 뒤늦게 자신이 미국인이 아님을 깨닫고 당황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고 한다. 이들이 계속 미국에서 살기 위해선 다른 해외 이민자와 마찬가지로 깐깐한 미국 시민권 취득 절차를 밟아야 한다. 하지만 과거 범죄 경력 등이 있는 입양인은 시민권 취득이 어려운 것은 물론 한국으로 추방되기도 한다.
지난달 21일 스스로 목숨을 끊은 입양인 필립 클레이(43·한국명 김상필)씨가 그런 경우다. 태어나자마자 고아원에 맡겨진 클레이씨는 열살 때인 1984년 홀트아동복지회를 통해 미국 가정에 입양됐다. 하지만 양부모가 시민권을 얻어 주지 않아 미국 국적이 없었다. 이후 클레이씨는 폭행 사건에 연루됐다가 시민권이 없다는 사실이 드러나 2011년 7월 한국으로 추방됐다.
정신질환을 앓고 있던 클레이씨는 한국에서 노숙자 쉼터와 복지시설, 정신병원, 교도소 등을 전전하다가 며칠 전 경기도 고양시의 한 아파트에서 끝내 투신 자살했다. 그의 한국생활을 도왔던 중앙입양원 관계자는 “클레이씨는 언어가 통하지 않는데다 아무런 연고가 없는 한국생활에 적응할 자신이 없다고 했다”고 전했다.
해외 입양인 인권에 대한 요구가 커지면서 미국 정부는 2001년부터 ‘아동시민권법’(Child Citizenship Act)을 시행, 1983년 2월27일 이후 출생한 입양인은 자동으로 시민권을 인정해 줬다. 하지만 클레이씨처럼 1983년 2월26일 이전 출생자들은 여전히 사각지대에 남아 있다. <이성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