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 집단학살 규정 3가지 해당
유엔 인권이사회에 보고서 제출
가자지구에서 팔레스타인인을 ‘집단학살(제노사이드)’한 혐의로 국제사법재판소(ICJ)에 피소된 이스라엘이 궁지에 몰리고 있다. 집단학살이 맞다고 확인한 유엔 인권이사회 보고서가 나온 데 이어 친(親)팔레스타인 유럽 국가 아일랜드도 거들고 나섰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보고서를 거부하고 집단학살 지적에 강하게 반발했다.
27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미국 CNN방송 등에 따르면 팔레스타인 점령 지역 인권 상황에 대한 유엔 특별보고관 프란체스카 알바네제는 이날 스위스 제네바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에서 팔레스타인인 집단학살 범죄를 저지르고 있다고 믿을 만한 합리적 근거가 있다”고 밝혔다.
그 근거로 △집단 구성원을 살해하고 △집단 구성원에게 심각한 신체적 또는 정신적 피해를 입혔으며 △생활 조건을 고의로 파괴한 점을 들었다. 이는 유엔 제노사이드 협약에서 집단학살로 규정한 5개 행위 중 3가지에 해당한다. 알바네제 특별보고관은 이 같은 내용이 담긴 ‘제노사이드 해부’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전날 유엔 인권이사회에 제출했다.
이탈리아 변호사이자 학자인 그는 이날 “특별보고관 임기 초부터 항상 공격을 받아 왔다”고도 밝혔다. 알바네제 특별보고관은 ‘이번 보고서 작업으로 인해 위협을 받았느냐’는 질문에 “위협을 받았다”면서 “위협이나 압력은 나의 헌신이나 내 작업의 결과를 바꾸지 않는다”고 답했다. 다만 누구로부터, 어떤 위협을 받았는지는 밝히지 않았다.
이스라엘의 반응은 격렬했다. 제네바 주재 유엔 이스라엘대표부는 “이 보고서를 완전히 거부한다”며 “이스라엘 국가의 설립과 존재 자체를 불법화했다”고 반발했다. ‘집단학살’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것부터가 “터무니없는 일”이라고 일축했다.
그러나 이스라엘에 씌워진 집단학살 혐의는 짙어지는 분위기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은 지난해 12월 팔레스타인에 대한 집단학살 혐의로 유엔 최고 법정인 ICJ에 이스라엘을 제소했다. 이번 유엔 보고서까지 집단학살을 못 박으면서 이스라엘은 더 불리해졌다.
아일랜드도 이스라엘의 집단학살 혐의 입증에 힘을 싣고 나섰다. 영국 가디언에 따르면 미셸 마틴 아일랜드 외교장관은 27일 “가자지구 내 구호품을 제한하는 것은 집단학살 의도에 해당한다고 ICJ에서 주장할 것”이라며 재판 개입 의사를 밝혔다.
기근을 초래하는 인도주의적 지원 제한이나 삶의 터전인 주택 파괴 등도 집단학살로 봐야 한다는 목소리 역시 커지고 있다. 프리야 굽타 캐나다 맥길대 법학과 부교수는 온라인 학술저널 더컨버세이션 기고에서 “이스라엘이 가자지구 내 가옥을 고의로 파괴한 후 주민을 이주시키고 팔레스타인 땅을 합병한 오랜 역사를 볼 때, 이는 국가적·인종적·민족적 집단으로서 팔레스타인인들에게 해를 끼치기 위해 의도한 전략”이라며 “주택 파괴를 집단학살로 볼 만한 강력한 이유가 있다”고 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는 지난 25일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 즉각적 휴전을 요구하는 결의문을 채택했지만, 가자지구 내 총성은 계속되고 있다. 25~27일 이스라엘의 공격으로 팔레스타인 주민 약 160명이 숨지고, 195명이 다쳤다고 아랍권 매체 알자지라가 유엔 인도주의업무조정국(OCHA)의 최신 보고서를 인용해 전했다. 팔레스타인 와파통신에 따르면 27일 기준 가자지구 누적 사망자 수는 총 3만2,490명에 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