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계 거목 김광신·문대양 하와이 대법원장·랠프 안 선생·‘다저스 목소리’빈 스컬리
올 한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별들이 많았다. 지난 9월 고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 서거로 영국 전역을 넘어 영연방과 전 세계가 정신적 지주를 잃은 애도의 기간을 보냈고, 중국에서는 제3대 최고 지도자로 1990년대 중국의 고속경제 도약을 견인한 장쩌민 전 국가주석이 사망했다. 67년간 미프로야구 메이저리그 LA 다저스의 경기 중계를 전담했던 빈 스컬리가 지난 8월3일 타계해 다저스팬들을 슬프게 했다.
한국에서는 보수 원로 김동길 교수와 초대 문화부장관을 역임한 이어령 교수가 영면했다. LA 한인사회에서도 정·재계와 교계 선두에서 이끌었던 빛나는 별들이 사라졌다.
도산 안창호 선생의 막내아들 랠프 안 선생과 문대양 전 하와이 대법원장을 떠나보냈다. 조지 최 전 한미은행 이사장과 노광길 전 한미은행 이사장이 별세했다. 또, 미주 한인 교계의 거목인 은혜한인교회 설립자인 김광신 원로목사와 국군포로 송환위원회 토마스 정(정용봉) 회장이 세상을 떠났다. 애도와 추모의 물결이 끊이지 않았던 2022년 한 해 진 별들을 모아봤다.
도산 안창호 선생의 막내아들로 남가주 한인사회 내 이민 선조 후손의 대부격이었던 고 랠프 안(한국명 안필영) 선생이 2월26일 향년 95세로 별세했다. 고인은 한인사회에서 활발히 활동하며 부친을 비롯해 조국 독립에 헌신한 이민 선조들의 활동을 알리고 뜻을 계승하는 일에 앞장서 왔기에 한인 사회가 애도하며 추모행사를 치렀다.
이에 앞서 한국 항공우주공학의 선구자인 홍용식 박사가 지난 1월24일 버지니아 맥클린 자택에서 별세했다. 1970년대 국산 미사일 로켓 ‘백곰’ 개발을 이끌었다. 2월10일에는 ‘미국 한인 입양인의 대부’, ‘한국전쟁 참전용사의 친구’로 불리는 김원보 한미문화협회장이 별세했다.
은혜한인교회 설립자인 김광신 원로목사가 지난 5월25일 별세했다. 고 김광신 목사는 ‘땅끝까지 복음 전파’라는 선교 비전 아래 은혜한인교회의 부흥을 주도했던 미주 한인 교계의 거목이었다. 단일교회로서는 가장 많은 전 세계 6,000개 교회를 개척한 은혜한인교회는 러시아를 비롯 57개국에 선교사 329명을 파송하는 등 선교하는 교회로 세계에서도 유명하다. 이에 앞서 지난 4월4일 LA 기독교윤리실천운동 창립자로 건강한 이민 교회 세우기에 앞장섰던 유용석씨가 별세했다.
미주한인 이민종가 하와이 한인사회의 상징적 인물이었던 문대양 전 하와이 대법원장이 지난 7월4일 향년 82세로 타계해 하와이주 법무부가 “전설을 잃었다”고 애도했다. 문 대법원장은 1903년 한인 최초의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 이민 1세이던 고 문정헌씨의 손자로, 선친 문덕만, 모친 메리 문씨 사이에서 1940년 태어난 이민 3세로 1993년 하와이 주 대법원장으로 임명되었다.
이어 2016년 LA 시의회로부터 올림픽과 웨스턴 애비뉴를 ‘양석규 스퀘어’로 지정 받았던 LA 한인타운의 올드타이머 양석규 로얄문화재단 이사장이 지난 7월7일 세상을 떠났다.
6·25 참전 유공자로 71년 만에 무공훈장을 받아 화제가 됐던 국군포로 송환위원회 토마스 정(한국명 정용봉)회장도 지난 10월6일 별세했다. 구 나라은행 이사장, 미주한인이민 100주년기념사업회 공동회장, 국군포로송환위원회 회장 등을 거치며 한인사회에서 많은 활동을 펼쳐왔다. 특히 지난 2003년 미주한인이민 100주년기념사업회 공동회장을 맡아 로즈 퍼레이드에 꽃차를 출품하는 등 한인 이민역사를 주류사회에 알리는 데 힘썼다.
지난 12월1일에는 미주한인들에게 이철수 구명으로 널리 알려진 유재건 변호사가 향년 85세로 별세해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1937년 서울 출생인 고인은 경기중·고, 연세대 정외과 졸업후 1969년 도미, 1977년 UC 데이비스 법대를 마치고 민권변호사로 사형수 이철수 구명에 앞장서 10년만에 석방을 이끌어냈다. 1990년 한국으로 귀국해 MBC시사토론 사회자(1990-93년), KBS심야토론 사회자(1993-95년)로 활약했다.
한인 경제계 인사들로는 조지 최 전 한미은행 이사장이 지난 3월14일 별세했다. 고인은 지난 1982년 출범한 한미은행의 설립준비위원으로 활동하는 등 한미은행의 창립멤버였으며 초대 이사로 20여년간 활동하면서 이사장을 역임했다.
노광길 전 한미은행 이사장도 지난 10월13일 한국에서 별세했다. 1984년 한미은행 이사진에 합류한 뒤 35년간 이사로 재직하며 이사장을 두 차례 역임하면서 한미은행을 탄탄한 기반 위에 올려놓는데 지대한 공헌을 했다. 특히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이사장을 맡아 2010년 1억2,000만달러 자본증자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하는 등 남가주 한인 금융계에 큰 족적을 남기며 한인 경제 발전에 기여했다.
다운타운 의류업계의 올드타이머 강상호 전 의류협회 3대 회장이 9월6일 지병으로 별세했다. 향년 68세. 고 강상호 회장은 지난 1981년부터 20여년간 의류업체 ‘한나패션’을 운영했으며 1980년대 초반 다운타운에서 한인들의 의류업 정착에 큰 공헌을 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지난 1월12일 나성영락교회에서 25년 간 동시통역을 담당했던 광복회 배국희 전 회장의 남편 김부운씨가 별세했고 LA 한인사회의 올드타이머로 한국인권문제연구소 서부지회장을 지낸 강대양씨가 한 주 앞선 지난 1월6일 별세했다. 향년 87세. 퓰리처상 2회 수상자인 강형원 기자의 부친으로 김대중 전 대통령을 적극 후원한 미주 한인 인사로도 잘 알려져 있다. 1983년 당시 미국 망명 중이던 김 전 대통령 후원 단체인 한국인권문제연구소 창립 멤버로 서부지회 회장을 역임하며 한국 민주화 운동에 앞장섰다.
<하은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