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장기화 속 원자재값 양극화, 밀값 전쟁 이전 7달러대 눈앞…식량발 인플레 완화 기대 커져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일제히 급등했던 원자재 가격이 양극화 조짐을 보이고 있다. ‘공급 리스크’가 여전한 에너지 가격이 고공 행진 중인 반면 곡물 가격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곡물 수출 합의에 힘입어 확연한 진정세로 접어들었다. 글로벌 인플레이션을 촉발한 두 축 가운데 하나인 곡물 가격 하락으로 물가 부담을 덜 것이라는 기대감이 커지고 있지만 전쟁과 기후 변수 때문에 안심하기는 이르다는 지적도 나온다.
1일 튀르키예 국방부는 우크라이나 곡물을 실은 화물선이 남부 오데사항에서 오전 9시 15분께(이하 현지 시각) 출항해 레바논으로 향했다고 발표했다. 지난달 22일 체결된 곡물 운송 협정 이행의 첫 사례가 된 수출 선박은 시에라리온 국적의 화물선 라조니(Razoni)호로 2만 6000톤의 우크라이나산 옥수수가 실린 것으로 알려졌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곡물 수출 합의 이행에 청신호가 켜지면서 뚜렷한 하락세를 보여온 곡물 가격은 한층 안정될 것으로 전망된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의 세계 식량가격지수는 3월 159.7까지 치솟았다가 이후 3개월 연속 하락해 6월 154.2에 머물렀다. 밀 가격은 7월 29일 기준 8.07달러에 거래돼 전쟁 이전 수준(7달러대)으로 돌아갔다.
이에 식량발(發) 인플레이션 압력이 완화될 것이라는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 JP모건은 올 4분기 농산물 가격 상승률이 5.5~6%로 둔화할 것이라며 이 추세가 이어지면 세계 물가가 1.5%포인트, 신흥국 물가는 2%포인트 낮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반면 에너지 가격은 여전히 불안하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유럽연합(EU)의 천연가스 가격 지표인 네덜란드 TTF 9월물은 지난달 26일 ㎿h당 207유로로 전쟁 발발 이후 최고가였던 212유로(3월 7일)에 근접했다. 유럽의 때 이른 폭염에 더해 지난달 말 러시아가 독일로 향하는 가스 공급을 최대치의 20%로 줄인 탓이다. 파장은 아시아로도 번졌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유럽이 액화천연가스(LNG) 수입을 다변화하면서 아시아 LNG 가격도 전쟁 직후 최고가 수준으로 올라섰다고 전했다.
북해산브렌트유 선물은 세계 경기 둔화 우려로 지난달 한때 배럴당 100달러를 밑돌았지만 29일에는 다시 110달러대로 올라섰다. 산유국 협의체인 OPEC+가 3일 회의에서 기존 증산 규모를 유지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 결과다.
에너지 값이 떨어질 기미를 보이지 않자 급기야 유럽 국가들은 러시아 원유 관련 제재 완화에 나서기 시작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EU는 최근 역내 선박이 러시아산 원유를 EU 외 국가 및 지역으로 운송하는 경우에 한해 해상보험에 가입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목적지가 어디든 러시아 원유를 실은 선박의 보험 가입을 금지해 러시아 원유를 거래하지 못하게 하던 데서 한발 물러선 것이다. EU는 성명에서 “전 세계 식량 및 에너지 안보에 (EU의 제재가)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을 피하기 위해 제재를 완화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