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 기축통화 흠집내기 시도
유럽에 수출하는 에너지 대금을 루블화로 지급받겠다고 선언한 러시아에 해외 수출하는 모든 에너지나 원자재 대금을 루블로 책정하고 결제하는 방안을 추진해야 한다는 논의가 부상하고 있다. 거래 국가에 루블화 지급을 강제하는 방식으로 러시아에 경제 제재를 가한 서방 보다 강력한 보복에 나서는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로이터 통신은 30일(현지시간)은 바체슬라프 볼로딘 러시아 하원 의장이 이날 텔레그램을 통해 “(러시아 산) 가스를 구매하고 싶다면 루블을 준비하라”며 “가스 뿐 아니라 루블 기준으로 가격을 매기는 품목을 비료와 곡물, 식용유, 석유, 석탄, 광물, 목재 등으로 확대하는 것이 우리의 이익에 부합한다”는 제안을 했다고 보도했다.
크렘린 궁도 이에 대해 긍정적인 반응이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 대변인은 이같은 제안에 대해 “이는 분명히 추진돼야 할 아이디어”라며 “잘 처리될 수 있을 것”이라고 답했다. 그는 “미국 달러는 세계 기축통화로서의 역할에 이미 타격을 입었다”며 “루블을 러시아 수출품의 가격 기준으로 삼는 움직임은 우리와 상대국가 모두에게 이익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러시아의 이같은 움직임은 서방의 경제 제재에 대한 반발이자 미국 달러의 기축통화 지위에 흠집을 내기 위한 시도라는 분석이 나온다. 현재 러시아는 유럽과 미국이 가한 경제 제재가 해당 국가의 물가를 끌어올려 결국 스스로에게 해를 가하는 비이성적 행위라는 비판을 이어가고 있다.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전 러시아 대통령은 “러시아에 대한 경제제재가 부메랑이 되면서 세계가 깨어나고 있다. 기축 통화에 대한 자신감은 아침 안개가 사라지 듯 녹아 내리고 있다”며 “미국 달러와 유로에 대한 외면은 더이상 환상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그러면서 “정신나간 서방의 정치인들이 자신들의 납세자들을 희생시키고 있는 것”이라며 “개별 국가 화폐의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다만 러시아의 이같은 시도가 현실화할지, 시행하더라도 거래 국가가 호응할지는 미지수다. 당장 러시아는 유럽에 수출하는 천연가스 대금을 루블화로 지급받겠다고 선언했지만 독일을 비롯한 유럽국가들은 달러나 유로로 결제하기로 한 기존 계약을 따르겠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현재 가즈프롬 은행에서 결제되는 유럽 수출 천연가스는 58%가 유로로, 39%를 미국 달러로 결제된다. 나머지 3%는 영국 파운드화다.
중국의 움직임이 변수라는 분석도 나온다. 미국에 이어 경제 규모 세계 2위 국가인 중국이 호응할 경우 루블화 결제 비중이 어느정도 늘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왕이 중국 외교부장은 “양국 정상의 합의 하에 중국은 러시아와 협력해 중-러 관계를 새로운 시대로 끌어올릴 용의가 있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