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 우크라 침공 한 달
예상을 비웃는 침공이었으나 예상을 벗어난 장기전이 됐다. ‘세계 2위 군사대국’을 앞세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지난달 24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전역을 기습 침공했다. ‘설마’ 했던 침공이었지만, 압도적 군사력으로 사흘 내 수도 키이우까지 점령한 뒤 친러 괴뢰정권을 수립하는 데 속전속결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다.
하지만 개전 한 달이 되도록 러시아군이 수중에 넣은 주요 도시는 단 한 곳(헤르손)뿐. 손실은 불어났다. 러시아군에선 1만 명 가까운 전사자가 발생했다. 구소련이 1979년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해 10년간 잃은 병력(1만5,000명)과 맞먹는다. 부상자도 2만 명에 달한다. 투입 병력 20% 안팎을 잃은 셈이다.
서방은 역사상 최강 제재로 러시아를 옥죄고 있다. 군 전략 실패와 나라 경제 파탄 위기에 악에 받친 푸틴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의 무고한 희생을 키우는 비극으로 전세를 이끌고 있다.
러시아군이 키이우까지 진격하는 데는 고작 9시간밖에 걸리지 않았다. 압도적 전력을 앞세운 러시아군은 침공 첫날 키이우와 북동부 제2도시 하르키우 외곽까지 밀고 들어왔다.
항구 도시 오데사와 마리우폴에도 공습 경보가 울렸다. 러시아 공군은 우크라이나 군 시설을 폭격했고, 제공권을 장악하기 위해 주요 공항을 집중 타격했다. 우크라이나 동·남·북 3면에서 동시다발적 공격이 전개됐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정부의 운명은 끝을 앞두고 있다고 짐작됐다.
우크라이나의 결사항전은 막강한 복병이었다. 2014년 크림반도 병합 때처럼 무혈입성할 것으로 예상한 러시아의 완전한 오판이었다. 젤렌스키 대통령이 침공 직후 대국민 연설에서 “군이 움직이고 있다. 두려워하지 말라”며 “우리는 준비돼 있고, 강하고, 누구든 이길 수 있다”고 군과 국민을 대동단결시킨 점도 결사항전 의지를 끌어올렸다.
우크라이나 공군은 침공 첫날부터 러시아 공습 헬기와 항공기를 잇따라 격추시키며 자국 영공을 지켜냈다. 전투기 보유 대수가 우크라이나보다 10배나 많은 러시아군은 현재까지도 공중 우위를 점하지 못하고 있다. 영국 왕립합동군사연구소(RUSI)의 저스틴 브롱크 연구원은 “초기에 제공권을 장악하고 우크라이나군의 주요 군 시설을 정밀 타격하지 못한 ‘러시아 공군 실종’이야말로 러시아의 가장 큰 패착”이라고 평가했다.
거센 반격에 역사상 최강이라 자평했던 러시아 기갑부대 등 지상군은 우왕좌왕했다. 우크라이나군의 매복과 정밀 타격 전술에 러시아군은 속수무책이었다. 평야와 하천이 많은 우크라이나의 자연 지형도 러시아군의 진격을 막는 보루였다.
진흙으로 변한 평원에서 러시아 탱크는 허우적거렸고, 공병 지원 부족으로 수많은 하천에 가로막혔다. 키이우 코앞까지 들어온 장장 64㎞의 러시아군 호송대 행렬은 침공 나흘 만에 멈춰 섰다. 연료와 탄약 등 군수 물자가 떨어진 탓이다. 프랭크 맥켄지 미 중부사령관은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가 사흘 안에 항복할 것으로 예상해 병참을 고려하지 않고 진격한 것으로 파악된다”고 진단했다. ‘사흘 내 우크라이나 점령’이라는 러시아의 오만이 부른 실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