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이 물불을 가리지 않는 기후변화로 몸살을 앓고 있다. 최근 독일 벨기에 네덜란드 룩셈부르크 등 유럽 북부 지역에서 기록적 폭우로 물난리가 나더니, 이번엔 대형 산불이 이탈리아와 그리스 등 남부 지역을 휩쓸고 있다. 원래도 고온건조한 기후인데 가뭄마저 한층 심해지고 있는 탓에, 향후 산불 발생 빈도가 더 잦아지고 규모도 커질 것이라는 적신호가 켜지고 있다.
CNN방송과 영국 BBC방송 등에 따르면, 지난 24~26일 이탈리아 그리스 스페인 프랑스 등 유럽 남부 전역에서 산불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났다. 특히 이탈리아 사르데냐주가 “유례없는 재앙”을 겪고 있다. 사흘 이상 산불이 지속되며 산림 200㎢가 잿더미로 변했다. 서울 여의도(2.4㎢)의 83배에 달하는 면적이다. 인력 7,500명과 화재 진압용 항공기 20대 이상을 투입하며 사투를 벌인 끝에 27일 대부분 진화됐지만, 이재민 1,000여 명이 발생했고 주택과 농작물이 대거 소실됐다. 크리스티안 솔리나스 주지사는 “막대한 피해 규모를 정확히 파악하기조차 어려운 상황”이라며 중앙정부에 복구 자금 지원을 요청했다.
그리스도 곳곳이 불바다다. 26일 하루 동안 소방당국이 파악한 ‘현재진행형’ 산불만 50여 건이었다. BBC는 “수도 아테네의 북쪽 30㎞ 떨어진 지역에서 발생한 산불 연기가 아테네까지 넘어와 시야를 가렸다”고 전했다. 키리아코스 미초타키스 총리는 이날 내각회의에서 “다음 주말부터 또다시 폭염이 장기간 지속되면 더 많은 화재가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며 “8월은 매우 힘든 한 달이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프랑스도 25일 중남부 오드주의 산불을 잡기 위해 소방관과 구조대 1,000여 명과 소방헬기를 동원해 총력전을 폈다. 스페인 산불은 북동부 카탈루냐 지역에서 17㎢, 중부 카스티야라만차에선 25㎢의 면적을 각각 불태웠다.
이번엔 화마가 덮치지 않았으나, 포르투갈은 유럽 내에서 산불로 가장 큰 피해를 본 나라다. 2010년 이후 10년간 발생한 산불만 무려 1만8,000건이다. 해마다 서울 면적(605.2㎢)의 두 배가 넘는 산림 1,360㎢가 화재로 사라진다. 환경단체 세계자연기금(WWF) 포르투갈지부는 “포르투갈은 스페인보다 산림 면적이 80% 적은데도 산불 피해는 31% 이상 많다”며 “매년 전체 산림의 3%가 불타고 있는 셈”이라고 설명했다.
더 큰 문제는 이게 끝이 아니라는 점이다. 기상학자들은 유럽 남부가 특히 심각한 기후위기에 직면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유럽환경청(EEA)은 “온실가스 배출량이 줄지 않으면 유럽 전역에서 폭염이 더 심해지고 화재 위험 지역도 넓어지면서 결국 산불철이 더 길어질 것”이라며 “그중에서도 유럽 남부의 화재 위험도가 가장 크다”고 진단했다. 유럽연합(EU) 온실가스 감축 정책(그린딜)을 총괄하는 프란스 티메르만스 EU 수석부집행위원장은 “변덕스러운 기후가 ‘뉴 노멀(새로운 표준)’이 되고 있다”며 “지금 당장 긴급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기후위기는 완벽한 ‘통제 불능’ 상태로 치달을 것”이라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