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 거주 외국인들의 ‘엑소더스(대탈출)’가 시작됐다. 저항하는 시민들을 향한 군부의 무자비한 살상이 극에 달한 데다 소수민족 반군이 참여하는 내전 발발이 초읽기에 들어가서다. 한국 정부도 4월 중 현지 한인 대부분이 귀국하도록 권고했다. 봄은 왔지만 쿠데타로 인한 미얀마의 평화는 멀기만 하다.
미국 국무부는 30일(현지시간) 미얀마에 주재하는 비필수 업무 공무원과 가족, 민간 자국민의 철수를 명령했다. 국무부는 “반군부 시위가 계속되는 등 현지 정세가 앞으로도 불안정할 것으로 보인다”고 철수 배경을 밝혔다. 외교공관 여론을 주도하는 미국 결정에 유럽연합(EU) 등 주요국의 엑소더스도 예고됐다. 이날 독일에 이어 전날 노르웨이 외교부는 북유럽 국가 현지 공관들과 함께 자국민의 철수를 촉구하기로 결정했다. 영국과 프랑스 역시 자국민 귀환 시점을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주미얀마 유엔 사무소와 국제적십자위원회(ICRC)도 상황 악화를 우려해 철수 방식과 시점을 고심하고 있다. 중국, 태국과 함께 미얀마 투자 ‘빅3’로 꼽히는 일본은 이미 지난달 19일부터 단계적으로 자국민들을 귀국시키고 있다. 미얀마 군부의 오랜 파트너인 베트남은 이날 국적기를 띄워 390명의 자국민을 일시에 철수시켰다.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ㆍ아세안)의 맏형인 인도네시아 또한 지난 4일부터 자국민의 철수를 촉구, 이날 기준 100여 명이 귀국한 것으로 파악됐다. 싱가포르도 비슷한 시기에 자국민 귀국 권고를 내렸다.
한국 정부도 현지 한인들의 원활한 귀국을 위해 노력 중이다. 주미얀마 한국대사관은 전날 교민들에게 “4월 중순으로 예정된 띤잔(미얀마 신년 물축제) 기간 전후로 또다시 시위가 격화하고 군경의 강경 진압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며 “반드시 체류해야 할 필요가 없는 경우 매주 화요일 편성된 한국행 임시 비행편을 이용해 출국할 수 있다”고 권고했다. 다만 정의용 외교부 장관은 이날 “아직 교민 철수 결정을 내릴 단계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필요 시 군 수송기나 특별기라도 띄우겠다”고 약속했다.
3,500여 명에 달하는 현지 한인들의 고민은 깊어지고 있다. 한인들은 현재 수시로 당하는 군경 검문에 “꼬리야 루묘바”(한국인입니다)를 거듭 외치며 매일 위기를 모면하고 있다. 아울러 대사관 공지에 따라 야간에는 베란다 근처로 가지 않고, 시위와 관련된 사진을 휴대폰에서 모두 지우고 있다. 양곤 외곽 피혁 공장의 법인장 A씨는 “우리라고 여기 있으면 죽을 수 있다는 생각이 왜 안 들겠냐”면서도 “대다수 주재원은 귀국하기로 결정했지만 나같은 사업가는 최소한의 방도 없이 고국행 비행기를 타기 어렵다”고 토로했다.
경제 주축인 외국인들이 잇따라 떠나고 있지만 군부는 무력 행사에만 집착하고 있다. 전날부터 육군 정규군 1만여 명을 소수민족 반군 지역으로 이동시킨 데 이어 이날은 소수민족 반군 중심인 카렌주에 전투기를 보내 공습을 재차 감행했다.
<하노이=정재호 특파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