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애틀랜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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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칼럼] 긍휼과 은혜(Mercy and Grace, 히Heb. 4:16)

방유창 목사(몽고메리 사랑 한인교회) <포스트 모더니즘 세대(Postmodernism Generation)>의 자화상은 자신감을 상실한 허무에 시달리는 연약한 인생이라 할 수 있습니다.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정체성을 잃어버린 채 하루 하루를 무의미하고 맹목적인 삶으로 연명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바로 이러한 세태의 모습은 이 천년 전에 세상에 <인류구원>이라는 원대한 비전을 품고 세상에 찾아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셨을 때에도 인생의 자화상은 변함없이 동일한 세태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바로 그런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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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칼럼] 우스타바이 우크라이노!(Rise Up, Ukraine! 요Jn. 1:19~28)

방유창 목사(몽고메리 사랑 한인교회) “일어나라, 우크라이나여!” 이 외침은 마치 봄꽃들의 생명의 목소리가 메아리치는 소리와 같습니다. 봄볕에 향기를 품어내며 마치 <흩어지는 분수처럼 은은히 들려오는 교회의 푸른 종소리>마냥 아무리 지우려 애를 써도 결코 지울 수 없는 <봄꽃의 강한 생명력>과도 같습니다. 냉혹한 추위로 아무리 막으려 해도 혹한의 겨울이 결코 막을 수 없는 봄꽃의 강인함처럼, <우크라이나 민초들>의 나라를 위한 생명수호는 마치 봄꽃 예수 그리스도가 엄동설한 같은 잔인한 마귀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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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칼럼] 디스토피아 시대의 은혜 예수(Grace Jesus In The Time of Dystopia, 요Jn. 1:15~18)

방유창 목사(몽고메리 사랑 한인교회)<디스토피아(Dystopia)>란 말은 존 스튜어트 밀의 의회 연설에서 처음으로 등장한 단어입니다. 존 스튜어트 밀은 <디스토피아(Dystopia)> 는 “나쁜 장소”를 가리키는 말로서,  그리스어 <Dys(나쁜)>와 그리스어 <Topos(장소)>가 결합된 말이라 소개합니다. <디스토피아>를 단적으로 말하면, <역(逆) 유토피아, 안티 유토피아>를 가르킵니다. 저자 요한의 메시지에 나오는 “은혜 위에 은혜”는 이 <역(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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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칼럼] 침묵의 지혜로 말씀하시는 하나님(God Speaking With Silent Wisdom, 시Ps. 62:1~12)

김남조 시인의 “그대 있음에”라는 시가 있습니다. “그대의 근심 있는 곳에/ 나를 불러 손잡게 하라/ 큰 기쁨과 조용한 갈망이/ 그대 있음에 내 마음에 자라거늘/ 오, 그리움이여/ 그대 있음에 내가 있네/ 나를 불러 손잡게 해/ …..그대 있음에 내가 있네/ 나를 불러 그 빛에 살게 해.” 시인의 노래는 보이지 않는 절대적인 존재를 의식하고 현하의 절망의 늪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돌파구는 나를 부르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그리고, 그 소리에 부응하여 내 손을 내밀라는 것입니다. 그순간, 칠흑같이 캄캄한 절망의 늪은 어느새 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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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칼럼] 어머니의 눈물, 엔학고레(Mother’s Tear, En Hakkore, 삿Jdg. 15:15~21)

“한밤중 자다 깨어 방구석에서 한없이 숨 죽여 울던/ 엄마를 본 후론/ 아! 엄마는 그러면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심순덕 시인의 시 가운데 나타난 “어머니의 눈물”에 관한 소개입니다. “어머니는 그래도 된다”고 당연시한 것들이 어느 순간에 “어머니는 그러면 안 되는 것이었음”을 깨닫은 순간이 반드시 찾아옵니다. 그러나, <때늦은 깨달음>은 이미 어머니는 이 세상에 계시지 않아 부모님 돌아가신 후에 아무리 후회를 해도 소용없는 <父母死後不後悔 >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엔학고레와 어머니의 눈물>은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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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칼럼] 인식과 앙망(Realization and Hope, 사Isa.40:28~31)

아는 것은 힘이다(Knowledge is Power).” 어느 날, 어린 아들이 엄마에게 질문을 합니다. “엄마, 어떻게 하면 역사공부를 잘 할 수 있나요? 수백년 전에 이미 죽은 사람들이 한 일에 대하여 나는 관심이 없어요” “아는 것이 곧 힘이란다. 네가 과거에 일어난 일에 대하여 무언가 아는 것만큼 다가올 미래에 대하여 도움이 될 텐데….” 이 이야기를 좀더 깊이 있게 정리하자면, “아는 것만큼 자신을 잘 조절할 수 있다(The more you know, the more you can control).”는 말입니다.구약시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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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칼럼] 참 목자상(The Image of The Good Shepherd, 요Jn. 1:1~18)

리처드 백스터(Richard Baxter)의 <참 목자상(The Reformed Pastor)>은 21세기의 오늘날도 변함없는 롤 모델의 목자상(牧者像)입니다. 어떤 세상의 유혹이나 위협의 칼날 앞에서도 결코 흔들림이 없는 목자로서의 중심을 잃지 않았던 참 목자 백스터는 <하나님 중심, 말씀 중심, 교회 중심>의 거룩한 목자의 길을 꿋꿋이 지키며 걸어갔습니다. 참 목자상의 최고의 롤 모델에 대하여 사랑의 사도 요한은 예수님의 음성으로 그 목자상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더글라스 맥아더 장군이 전쟁의 포화 속에서 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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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칼럼] 새벽의 나팔수, 예수(Jesus, The Trumpet At Dawn, 사Isa. 52: 1~2)

새벽 – 윤동주다들 죽어가는 사람들에게/ 검은 옷을 입히시오/ 다들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흰 옷을 입히시오/ 그리고, 한 침대에/ 가지런히 잠을 재우시오/ 다들 울거들랑 젖을 먹이시오/ 이제 새벽이 오면/나팔 소리 들려올 게외다/ 나팔 소리가 울리면 잠에 빠진 사람은 일어나 <새로운 시간(New Time)>을 준비합니다. <새로운 새벽(New Dawn)>은 “죽어가는 사람들”과 “살아가는 사람들”이 한 힘으로 모여야 비로소 혁명의 새벽은 밝아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시인의 간절한 바람은 새벽의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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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칼럼] 봄꽃 예수의 파종(播種)(Sowing of Spring Flowers Jesus, 막Mk. 4:1~9)

시인 이육사의 “광야(廣野)”에 다음과 같은 시구가 나옵니다. “지금 눈 내리고/ 매화(梅花) 향기 홀로 아득하니/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 시인의 노래처럼 씨를 뿌리는 자를 우리는 파종자(播種者)라 합니다. 이 파종자를 우리는 흔히 일컫기를 농부라 합니다. 농부가 씨를 뿌리기에 가장 적합한 파종기(播種期)를 우리는 사계절 가운데 “봄”이라 합니다.봄꽃 예수께서는 우리가 봄에 만나야 할 예수님이십니다. 봄꽃 농부는 봄에 나타납니다. 예수님께서는 봄꽃 농부이십니다. 차디찬 겨울의 냉기를 뚫고 대지 위에는 어김없이 봄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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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칼럼] 환희(歡喜)의 귀환(歸還 )(The Joyful Return, 1Cor. 고전15:1~58)

부활절(Easter)은 만왕의 왕이신 <성자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의 귀환(歸還)>이 이루어진 날입니다. 또한, 존귀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념하여 지키는 <위대한 날>입니다. 이 사건은 이미 예수님 탄생 700년 전에 대예언자 이사야를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예언하셨습니다. 이사야는 예수 그리스도 탄생예언에서 하나님께서는 무엇으로 이 엄청난 일을 이루실 것인가를 분명히 밝혔습니다.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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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칼럼] 비아 돌로로사 예수의 눈물(Jesus’ Tear of Via Dolorosa, 롬Rm.14:8)

눈물이 메마른 시대입니다. 눈물보다는 웃음에 더 관심이 많은 시대입니다. 그러나, 인생은 웃었던 날보다 울었던 날들이 더 많은 것을 잊고 삽니다. 눈물에는 슬픔을 가득 담아 흘리는 비애(悲哀)의 눈물이 있는가 하면, 기쁨이 파도처럼 밀려오는데도 자신도 모르게 눈에서 흘러내리는 기쁨의 눈물이 있습니다. 비아 돌로로사는 세상 그 누구도 걸어가지 못한 “슬픔의 길(Way of Sorrows), 고뇌의 길(Way of Grief), 고난의 길(Way of Suffering, Way of Pain)”임을 지금도 역사는 증명하고 있습니다.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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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칼럼] 비아 돌로로사 예수의 침묵(Jesus’ Silence Of Via Dolorosa, 시Ps.130:5~8)

”나는 침묵하고 있던 것이 아니다. 너희들과 함께 괴로워하고 있었다.” 엔도 슈사쿠의 침묵에서 들려준 <예수님의 음성>입니다. 침묵할 때가 있습니다. 그 침묵은 그냥 간과할 목적으로 하는 침묵이 있는가 하면, 침묵하는 것이 입을 벌려 말하는 것보다 더 강력한 힘이 있을 때 침묵으로 일관하는 것입니다. 현하(現下), 비아 돌로로사, “슬픔의 길(The Sorrowful Way)”, “고통의 길(The Way of Suffering)”을 걸어가신 십자가의 예수 그리스도를 깊이 묵상할 <고난주간, The Passion 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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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칼럼] 네 자리를 정돈하라!(Make Up Your Bed! 행Ac. 9:32-35)

시인 송기원은 1974년작 그의 시, <회복기의 노래>에서,“격렬한 고통의 다음에는 선명한 빛깔들이 일어서서 나부끼듯이/오랜 주검 위에서 더없는 생명과 빛은 넘쳐 오르지/(….)/저것 봐, 열린 페이지마다 춤추는 구절들을/익산의 내 눈이 별로 박히어 빛을 퉁기는 것을/모든 허물어진 관련 위에서 새롭게 되는 질서를” 시인이 노래한 <빛>으로 새롭게 되는 <회복기의 노래>는 바로 사도행전 9:32~35의  <8년 중풍환자, 애니아>를 하는 이야기입니다. 초대교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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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칼럼] 세월을 아끼라(Make The Most Of Every Opportunity, 엡Eph. 5:15~18)

바울의 인생을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목적형 인생”입니다. 분명한 목적과 목표를 세우고 그 목적에 부합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항상 “목적이 이끄는 삶(The Purpose-Driven Life)”을 살았습니다. 이율배반(Ironical)의 모순적 외형이 실소를 금치 못하게 하는 것이 있다면, 이 서신을 에베소 성도들에게 쓰고 있는<지금>, 그는 모든 세상사람들이 손가락질 하는 <감옥의 죄수>입니다. 그런 처지에서 감옥 밖의 사람들에게 “세월을 아끼라!”하고 <충고의 메시지>를 선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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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칼럼]복된 장마비(Showers of Blessing, 겔Eze. 34:1~31)

 “나무를 보면 숲을 보지 못한다(One cannot see the wood for the trees.)” 옛 고사성어 가운데 이관규천(以管窺天)이란 말이 있습니다. 부분을 보고 전체를 보지 못하는 근시안적인 행동을 이르는 말입니다. 현하, 작금의 상황이 우리의 안목을 새롭게 해야 할 중요한 시기입니다. 본문의 말씀을 기록한 선지자 에스겔은 마지막 결론에서 “야훼삼마(거기 계시는 하나님)”로 끝을 맺습니다(겔48:35). 이 결론적인 에필로그가 시사하듯 에스겔 선지자는 본문 겔 34장에서 하나님의 위로와 회복의 축복을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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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칼럼] 나의 증인, 나의 종(My Witnesses, My Servant, 행Ac.1:8)

 이사야 43:10에,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는 나의 증인, 나의 종으로 택함을 입었나니”라고 이사야는 예수 그리스도를 고난의 종으로 묘사하였습니다. 이 이사야의 메시아닉 예언은 갈릴리 예수 그리스도가 부활하시고 40일째 되는 날, 갈릴리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구름을 타고 승천하시는 바로 그 즈음에 이사야적 표현을 인용하십니다. “너희는 나의 증인이 되리라.”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야훼 하나님께서 장차 올 모든 세대를 향하여 하나님의 증인 된 삶을 살라고 분부하시고(사43:10), 갈릴리 예수님을 통하여 장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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