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애틀랜타
이규 레스토랑
첫광고
엘리트 학원

[한국춘추] 나에게 묻다

지역뉴스 | 외부 칼럼 | 2025-02-28 12:18:15

한국춘추,박인애,수필가,나에게 묻다

구양숙 부동산표정원 융자미국 크래딧 교정

국민가수 송대관이 고인이 된 후 오래전 영상들이 유튜브에 오르며 그의 선행이 회자되었다. 그중 하나가 SBS 예능 프로 ‘실험카메라’였다. 태진아가 송대관에게 삼천만 원을 빌리는 데 성공하면 임무가 완수되는 미션이었다. 송대관은 빚 때문에 코너에 몰린 후배가 안쓰러워서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다. 통장 잔고를 묻더니 그걸 전부 빌려주자고 한 것도 모자라 나머지 돈은 빌려서라도 막아주려고 마음먹었다. 그의 진심을 확인한 제작진들이 환하게 웃으며 몰래카메라였다고 밝히자, 표정이 굳는 듯 보였으나 이내 어이가 없는지 웃고 말았다. 평소 동료들에게 커피 한 잔도 안 사고 얻어 마시는 구두쇠였다는데, 그의 내면은 달랐던 거다. 언제 돌려받을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통장을 내줄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본인의 삶도 어려워 어머니 용돈을 제대로 챙겨 드리지 못했던 어려운 시절이었다고 들었다. 어쨌거나 실험 카메라의 결말은 해피엔딩이었다.

남의 주머니를 여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경험한 적 있다. 몇 년 전이었는지는 잊었지만, 그날 느꼈던 서운함은 아직도 선명하다. 서운함이 남았다는 것은 누군가를 도울 때 받을 것을 계수해 본 적 없다고 자부했던 것에 관한 모순이었거나 거짓말이었는지 모른다. 어쩌면 나도 속물이었는지 모를 일이다. 

그해 만우절, 장난기가 발동하여 구역식구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급한 일이 생겨서 그러는 데 일주일만 쓰고 돌려줄 테니 오천 불만 빌려 달라는 장난을 쳤다. 돌아온 대답은 의외였다. 그들은 내 사정을 다 듣기도 전에 지레 앓는 소리를 하거나 온갖 핑계를 늘어놓았다. 바로 전 모임에서 큰돈이 들어왔다며 밥을 사겠다고 했던 사람조차 없던 용처(用處)를 만들어내느라 끙끙거렸다. 알아보고 연락해 주겠다는 빈말조차 하는 이가 없었다.

냉정한 현실은 내가 잘못 살았다는 자책으로 이어졌고, 매주 가족처럼 만나던 사람들이 낯설게 느껴지는 부작용을 낳았다. 무슨 착각을 그리도 야무지게 했을까. 빌려줄 거라고 믿었던 기대는 일순간에 무너졌다. 성애가 아니었다면 후유증은 오래갔을 것이다. 그녀는 가진 돈이 부족하니, 직장에서 가불하고 카드에서 현금을 뽑으면 가능할 것 같다며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내 편이 있다는 게 세상 든든했다. 선배의 진심을 목도한 태진아의 기분도 그러했을까. 

공연히 쓸데없는 짓을 해서 모두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든 것 같아 사과를 했다. 한바탕 웃고 아무 일 없듯 제자리로 돌아갔으나 나는 잠시 생병을 앓았다. 돈이 없어서 부탁했다면 얼마나 비참했을까 싶고, 내가 곤경에 처했다는데 외면했던 목소리가 못내 서운함으로 얹혔다. 내 돈을 빌려 쓰고 신세를 졌던 사람들이라고 해서 나를 도와야 한다는 법은 어디에도 없는 거였다. 나누는 것에도 책임이 따르고 누군가를 스포일 시켰다면 그것도 죄라는 것을 깨닫고 나서야 호구는 내놓고 살았던 정신줄을 거둬들였다.

나의 몰래카메라는 세드 엔딩이었다. 하지만 마음 밭을 정비하는 계기가 되었다. 딱히 달라진 건 없다. 하늘이 마음 한 자락 내어주는 일을 허락하면 재능 기부로, 풍족히 내려 주면 물질로 내가 할 수 있는 능력 안에서 나누며 살아보려 애쓰는 중이다. 부족한 사람이어서 때론 본전 생각이 날 수도 있겠지만, 그때마다 지혜를 구해볼 생각이다. 

노래는 그 시절 함께 했던 사람과 추억을 불러온다. 송대관은 자신의 힘든 삶과, 당시 석유파동으로 생활고가 어려웠던 서민들에게 “노력하면 안 되는 일이 없다”라는 노랫말을 써서 모든 이의 삶에 해뜰날이 오기를 응원하고 노래하며 희망을 심어주었다. 요 며칠 고약했던 날씨가 모처럼 쨍하다. 

나는 무엇으로 세상에 희망을 심어줄 수 있을까. 

<박인애 수필가>

댓글 0

의견쓰기::상업광고,인신공격,비방,욕설,음담패설등의 코멘트는 예고없이 삭제될수 있습니다. (0/100자를 넘길 수 없습니다.)

[수필] 집으로 가는 길
[수필] 집으로 가는 길

김혜경(사랑의 어머니회 회장·아도니스 양로원 원장) 교육장에 들어서고 나서야 콧등 위에 안경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필이면 이 중요한 날에 안경을 차에다 두고 오다니. 몸은 이

[데스크의 창] 정의에도 ‘중립’이 있을까
[데스크의 창] 정의에도 ‘중립’이 있을까

‘정의란 무엇인가’(Justice: What‘s the right thing to do?)는 하버드 대학교 교수이자 정치철학자인 마이클 샌델이 1980년부터 진행한 수업 내용을 토

[뉴스의 현장] 먹고 사는 문제, 관세로 뒤흔들리다
[뉴스의 현장] 먹고 사는 문제, 관세로 뒤흔들리다

성장기 아이를 키우고 있는 기자는 요즘 장을 보러 갈 때마다 심난하다. 외식비가 치솟아 끼니의 대부분을 직접 해 먹고 있는 탓에, 장 보는 일은 우리 가족의 건강을 지키는 일이자,

[화요 칼럼] 행복의 조건
[화요 칼럼] 행복의 조건

『행복의 조건』 의 저자 조지 베일런트(George Eman Vaillant)는 미국의 정신과 의사이자 연구자다. 그는 하버드 대학교에서 의과대학 교수로 재직했고 성인 발달 연구소

[전문가 칼럼] 보험, 그것이 알고 싶다- 메디케어 파트 D 의 보조금 (Extra Help)
[전문가 칼럼] 보험, 그것이 알고 싶다- 메디케어 파트 D 의 보조금 (Extra Help)

최선호 보험전문인 세상은 공평한가? 아니면 불공평할까? 결론은 대개 불공평한 세상으로 결론이 나는 것 같다. 유토피아와 같은 이상향에서는 공평성이 제대로 발휘되겠지만, 현실 사회에

[애틀랜타 칼럼] 바르게 보는 법을 배우자

이용희 목사 “눈은 마음의 창”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눈으로 보고 느끼는 것은 항상 마음의 판단이 있게 마련입니다. 때문에 우리는 자신이 보는 것을 올바르게 해석하기 위해

[내 마음의 시] 아름다운 산책길
[내 마음의 시] 아름다운 산책길

써니 권(애틀란타 문학회 회원) 새벽에공원산책하면아침 이슬 영롱한 아름다움모든 생물들 깊은 잠에서깨어나 기지개 활짝 펴네. 오늘은토끼풀이 나를 반기네혹시 네잎 클로버 찾을까그러나

[법률칼럼] 법의 그림자 속 숨겨진 이야기3화

케빈 김 법무사  창고의 진실과 법의 판결“진실은 깊은 곳에 숨겨져 있다. 법은 그것을 밝혀내는 열쇠다.”로펌에서 일하며 깨달은 진리다.제니와 나는 동건의 유산을 둘러싼 싸움에서

[벌레박사 칼럼] 독거미 퇴치하는 법

스파이더맨 영화를 보면 스파이더맨이 발사하는 거미줄은 악당을 무찌르거나 스파이더맨을 자유롭게 이동시켜주는 매력적인 것으로 보여진다.그러나 현실에서의 스파이더, 거미는 그렇지 않다.

[행복한 아침] 철들 무렵

김정자(시인·수필가)     우연히 오랜 친분이 있는 분들을 음식점에서 만나게 되었다. 반가움에 두 손을 잡고 어린 아이처럼 깡충대며 어쩔 줄 몰라 하다가 문득 ‘나 이제 철 들었

이상무가 간다 yotube 채널

[애틀랜타 뉴스] 2025년 4월 2일(수)#아틀란타이상무#아틀란타지역소식#한국일보아틀란타#조지아소식#아틀란타로컬#세계한인비즈니스대회#아틀란타한인회비대위#헌재탄핵선고일#4월4일
[플로리다 홈리뷰] 롯데마트와 30분거리 새집보다 좋은 리세일 랜치하우스!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미리미리 세금 안 내는 플랜으로 준비하세요~ #노후 #저축 #연금 #IRA #Roth
[애틀랜타 홈리뷰] 게이트가 있어 더욱 안전한 타운하우스, 40만불 초에 잡을 수 있는 찬스!
[아틀란타 마트 추천] 타지에서 내 고향 찐 음식이 그리울 때, 알짜배기만 모아놓은 이곳으로 와보세요!! #울타리몰 #Wooltari
[애틀랜타 홈리뷰] 스케일이 다르다! 아무나 따라할 수가 없다! 상도 베가스에서 타는 조지아 부동산은 누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