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희 목사
“눈은 마음의 창”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눈으로 보고 느끼는 것은 항상 마음의 판단이 있게 마련입니다. 때문에 우리는 자신이 보는 것을 올바르게 해석하기 위해 마음을 훈련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본다는 과정은 눈에 의해서만 되는 것이 아닙니다. 눈은 마치 손을 내밀어서 물체를 붙잡고 그것을 머릿속에 기억하는 그런 작용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뇌는 그 물체를 기억 하도록 인도 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종종 눈에 보이는 여러 가지 아름다움이나 누추함을 애써 외면하곤 합니다. 눈으로만 보고 마음으로는 보지 않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의 육체적인 눈, 마음의 눈은 비뚤어지고 그릇된 안개 속을 헤매는 수가 있습니다. 그럴 경우 그것은 당신이나 타인에게 깊은 상처를 안겨주는 도구가 되곤 합니다. 정신적으로 근시인 사람은 주위의 대상이나 가능성을 지나치려고만 합니다. 그런 사람은 언제나 자신의 눈앞에 닥친 일에만 온 신경을 집중합니다. 이런 사람에게는 미래관이란 없습니다. 그러므로 만일 당신이 미래에 대한 기초를 닦기에 게으른 사람이라면 당신은 정신적인 근시임에 분명합니다.
한편 정신적으로 원시인 사람은 눈 앞에 있는 가능성을 놓치지 않습니다. 하지만 당장 닥친 기회는 외면하려 합니다. 이런 사람은 꿈을 꾸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한 걸음 한 걸음씩 발전의 길을 가는 것이 아니라 단번에 정상적으로 뛰어올라가고자 합니다. 당신의 마음의 눈은 근시인가, 아니면 원시인가요? 당신은 바르게 보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또 창조적으로 보는 법을 익혀야 합니다, 그것은 우리 주위에 놓여 있는 기회를 보는 길이며 동시에 미래의 성공을 보장하는 길입니다. 그리하여 어떤 사람은 자신의 우울증에 대한 원인을 찾아 내기도 하고 머리핀이나 핀셋을 발명하기도 하였습니다. 불모지를 천혜의 관광지로 탈바꿈시키기도 하고 만유인력을 발견하기도 하였습니다. 이것들은 모두가 마음의 눈으로 이룩한 결과였습니다. 보는 것을 터득 함으로써 당신은 이제까지 존재한다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기회를 포착할 수 있습니다. 물론 여기에는 행동하는 적극성이 함께해야 합니다.
일본의 토리우 지방에 살던 미키모토 고기치는 가난한 국수집 큰 아들이었습니다. 그는 열한 살의 어린 나이 때 아버지가 병석에 눕자 아홉 명의 동생을 부양하기 위해 밀가루를 반죽하여 국수를 만들어야만 했습니다. 그 즈음 그를 주의깊게 살펴본 한 무사가 다음과 같은 가르침을 주었습니다. “신앙의 본보기는 동포에 대한 친절과 사랑을 실천하는 데에 잇는 것이지 그저 되풀이하는 기도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 가르침은 아주 기본적인 행동 철학이었습니다. 너무나도 종교적인 말이었지만 그것은 분명 생각보다 행동을 우선하라는 무사도의 원칙과도 통하는 말이었습니다. 그 가르침의 깊은 뜻을 알아차린 미키모토는 그 때부터 모든 일에 있어서 적극적으로 행동 하기 시작을 했습니다.
20세기가 되자 미키모토는 결혼을 위해 국수집을 과감하게 포기하고 진주 상인이 되었습니다. 당시 진주는 희귀한 보석으로 대단한 상품 가치가 있었기 때문에 그는 이 분야에서 희망의 빛을 발견했던 것입니다. 새로운 세계로 진출한 미키모토는 자신의 직업에서 뭔가 특별한 계기를 찾기 위해 동분서주했습니다. 지성이면 감천이듯 한 대학교수가 그에게 중대한 성공의 모티브를 제공해주었습니다. 이 보편적인 자연 법칙을 들은 것 만으로도 미키모토의 가슴은 뛰기 시작을 했습니다.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조개 속에 인공적으로 이물질을 심어서 조개가 죽지만 않는다면 그 안에 진주가 만들어질 것이 아닌가? 이런 미키토의 발상은 곧 바로 행동으로 옮겨졌습니다. 그는 대학교수의 조언을 받아 인공진주양식에 도전을 했습니다. 보고 듣고 관찰하고 실행하는 수많은 과정이 뒤따랐습니다. 하지만 그는 가능성을 확신했기에 작은 실패에도 결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의 손바닥에는 마침내 영롱한 인공 진주가 빛을 발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진주 양식에 성공한 최초의 인물이 되었습니다. 지식만으로 상공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것을 응용하는 사람만이 선두에 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