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천(支泉) 권명오(수필가 / 칼럼니스트)
나의 피와 DNA는 한국인이고 신분은 미국시민이다. 그 때문에 나와 같은 코리언 아메리칸 이민 1세들은 겉과 속이 다른 묘한 존재들이다. 그렇다고 크게 잘못 됐거나 사회에 누가 될 대상도 아니고 불행의 대상도 아니다. 어쨌든 이민 1세들은 피와 DNA가 다른 미국 혼혈인생이나 다름없다. 각자 이민을 선택한 이유와 조건과 목적이 다를지라도 분명한 것은 대망의 꿈과 희망을 위해 미국으로 왔다는 사실이다. 이민 1세들은 수많은 난관과 고통을 겪으며 굳게 뿌리를 내리고 있고 2세, 3세들은 각 분야에 진출해 훌륭하게 역할을 다하고 있다. 외국인들과 결혼도 하고 그리고 혼혈 손자와 손녀도 생겨 다국적 미국인들이 된 상태다.
1974년 이민을 올 당시 예기치 못했던 일들이 자연스럽게 변하며 미국화가 돼 가고 있다. 이민 52년이란 세월에 따른 결과다. 지난날들을 돌아보면 인생사의 2/3는 미국에서 살았기 때문에 중요한 인생 여정의 희로애락의 이력서는 미국의 생활과 역사였다. 한국에서 37년 살았고 미국에서 52년을 살았다. 그런데 한국에 대한 추억이 더 많은 것 같고 어린시절 기쁘고 즐겁게 뛰놀던 동무들이 더욱 깊게 아로새겨져 있다. 시골 가월리 내 고향 산천들이 그립고 임진강에서 벌거벗고 미역감고 얼음판에 썰매 타고 팽이 치고 잣 치기 제기 차기 등으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신나게 뛰놀던 동무들을 잊을 수가 없다. 이제 모든 것은 끝났고 미련도 없다.
고향을 찾아도 낯설고 삭막하다. 포탄으로 인해 산들이 부서지고 변했다. 그리고 임진강 나루터엔 강다리가 괴물같이 가로질러 고속도로와 연결돼 있어 낯선 땅이 됐다. 정들었던 소꿉동무들도 거의 다 세상을 떠났다. 그래도 14년간 살아온 옛 고향에 대한 추억들이 가장 깊이 남아있다. 그후 서울에서 살다가 미국에서 52년간 살아왔다. 그 때문에 모든 희로애락과 추억들이 한국보다 훨씬 더 많은데도 어린시절이 아로새겨졌던 고향산천 옛 동무들이 그립다. 하지만 나는 52년간 살아온 미국 애틀랜타가 좋다. 그동안 한국과 미국을 돌아보고 여러 나라 여행도 했지만 나는 애틀랜타가 제일 좋다. 날씨 좋고 교통 편리하고 또 나무숲 속에 있는 주거지들이 별장같이 아름답다. 주위를 바라만 보아도 즐겁고 기쁘다. 미국은 정의롭게 열심히 노력하면 먹고 사는데 지장이 없이 자유롭게 부담 없이 잘 살 수가 있다. 부정적인 문제들도 있지만 그것은 지구촌 어디에나 있는 것이며 세상사엔 100% 낙원과 행복이 없다.
행복과 불행은 생각의 차이에 따라 좌우될 것이다. 고향이 따로 없고 정들면 고향이라 친구도 따로 없고 우연히 만나 정들면 다 친구가 된다. 애틀랜타는 내가 가장 오래 산 도시라 많은 사람들과 정이 들고 희로애락을 함께 해 온 여정의 일부이고 생의 안식처인 동시에 종착역이다. 견해차가 어찌됐든 미국을 선택한 동포들은 시민권을 취득하고 시민의 권리와 의무를 다하며 다민족 미국인들과 함께 영광을 나누고 가꾸면서 살아야 될 미국이라 더욱더 좋고 종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