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애틀랜타
엘리트 학원
첫광고
이규 레스토랑

[수필] 오늘은 햇살이다

지역뉴스 | 외부 칼럼 | 2025-02-19 08:43:15

수필, 김혜경,사랑의 어머니회 회장·아도니스 양로원 원장,오늘은 햇살이다

구양숙 부동산표정원 융자누가 스킨 케어

김혜경(사랑의 어머니회 회장·아도니스 양로원 원장)

 

모닝커피를 내리려고 부엌을 향해 가다가 발을 멈췄다. 창틈으로 숨어든 아침 햇살이 거실 마루 위에 누워있다. 아침의 고요를 갈라놓은 투명한 햇살에 게슴츠레하던 머릿속이 맑아졌다. “아, 참 행복하다.”라고 하려다 피식 웃고 말았다. 목욕 수건만한 햇살 한 자락이 도대체 뭐라고, 행복하다는 거야? 식전 댓바람에 산발한 채 히죽이는 내 모습을 누군가 봤다면 영락없이 돈 사람이다. 

 

소소한 일상이 문득 새롭게 느껴질 때 참 행복하다. 소소하지만 확실한 나만의 행복, 요즘 신조어로 ‘소 확 행’이라지. 어찌 햇살뿐이랴. 혼자 마시는 한 잔의 커피, 담장 한 쪽 벽에 비친 나무그림자, 지붕을 두드리는 장대비 소리, 툭 툭 도토리비 내리는 산책 길, 고개가 절로 끄덕여지는 책 속의 한 문장, 친구와 나누는 이야기들, 너무나 평범해서 별 의미를 두지 않던 것들이 나를 웃음 짓게 할 때 행복하다.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큰 행복은 여행이라는 친구가 있다. 짧은 여행 한번 쉽게 가지 못하는 내 처지를 유난히 딱해하는 친구다. 그가 SNS에 올린 여행사진들을 보면 정말 부러웠고 가끔은 마음이 위축되기도 했다. 그렇다고 내 행복감이 사라지는 것은 절대 아니었다. 즉흥적인 감정과 상관없이 스스로 행복하다고 믿는 내 자신감은 뭘까? 근거를 댈 수 없는 내 자신감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있다. 혹시 내 결핍함을 감추려고 행복한 척하는 건 아닐까? 혹시 내 속의 열등감을 감추려는 오기로 행복하다고 스스로를 설득한 것은 아닐까? 

 

“행복은 스스로 가진 것에 만족하고, 가질 수 없는 것을 바라지 않는 것에서 비롯된다. “ 세계적인 문호 톨스토이의 명언이다. 지당한 말씀이다. 사는 동안 남의 행복에 내가 행복했던 적이 몇 번이나 있었던가. 다른 사람이 지닌 사회적 가치나 물질적 풍요로움에 내가 행복해했던 적이 있긴 했었나? 남의 집 마당에 넘쳐흐르는 용천수가 부럽다고 내 집의 물을 마시지 않는다면, 내 갈증을 어찌 해소 시킬 수 있으랴. 

 

행복감은 순간의 경험이다. 어느 순간 느꼈던 행복감이 아무리 강렬했어도, 시간이 지나면 그때 느낌은 점점 사라진다. 처음 내 집을 장만했을 때 행복감이 지금도 그때처럼 똑같이 남아있는가? 그때 만큼의 행복감을 느끼려면 그보다 큰 행복감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인생사가 드라마틱한 대박 사건만으로 이어지는 건 아니질 않는가. 다행하게도 내 행복은 소. 확. 행. 이다. 감정의 증폭 없는 소소한 일상에서 행복감을 만긱하는데, 굳이 다른 것에서 행복을 찾아려 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나의 하루는 언제나 블랙커피 한 잔으로 시작된다. 유리포트에 온도를 맞춘 물을 부어 졸졸 떨어지는 커피를 보면 행복감을 느낀다. 커피 잔을 들고서 바라보는 뒷마당에서 바람에 살랑대는 나뭇잎들, 우듬지를 향해 기어오르는 다람쥐들, 빈대떡 만큼 큰 잎사귀를 달고 있는 무화과나무, 한쪽으로만 삐딱한 대추나무들, 십 년이 지나도 열매 한 번 달린 적 없는 매화나무, 밤사이 변함없이 남아있는 다정한 세상에 내가 존재한다는 것이 행복하다. 

 

뒷마당의 침묵 속으로 아침햇살이 스며든다. 그래, 오늘 내 행복은 햇살이다. 선탠이 싫어 햇볕 아래 산책은 오래전 포기했지만, 햇살이 아니면 언제 멋들어진 챙 모자를 쓰고 외출하는 즐거움을 맛 볼 수 있으랴. 인생 저물어 가는 나이, 마냥 헐거워지는 하루를 무엇으로 때울까 궁리하지 않고도 내게 주어진 것들에서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내 삶, 지금 이 순간 행복하다. 

 

 

 

댓글 0

의견쓰기::상업광고,인신공격,비방,욕설,음담패설등의 코멘트는 예고없이 삭제될수 있습니다. (0/100자를 넘길 수 없습니다.)

[시와 수필] 참된 인간이 되는 길을 포기한 한국인
[시와 수필] 참된 인간이 되는 길을 포기한 한국인

박경자(전 숙명여대 미주총동문회장) 모란이 피기 까지는 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다리고 있을테요모란이 뚝뚝 떨어져 버린 날 나는 비로소 봄을 여윈 설움에 잠길 테요. 오월 어느 날

[삶과 생각] 정의와 불의
[삶과 생각] 정의와 불의

지천(支泉) 권명오(수필가 / 칼럼니스트)  어느 나라 어디에 살든 사람들은 견해차가 있고 이해관계가 얼키고 설키게 되고 정의와 불의에 대한 견해차가 생기고 변하게 된다. 그래도

[로터리] 흔들리는 한국어

1020 세대에서 등장한 신조어는 많이 있다. ‘할머니·할아버지’의 줄임말과 ‘폭풍눈물’을 180도 회전시켜 발음하기도 힘든 표현 등이다. 신조어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본

[정숙희의 시선] 구스타프 말러와 알마 말러
[정숙희의 시선] 구스타프 말러와 알마 말러

구스타보 두다멜은 LA필하모닉의 음악감독으로 부임한 지 3년째이던 2012년 1월, 말러의 교향곡 전곡을 완주하는 ‘말러 프로젝트’에 도전했다. 9개 교향곡을 3주 동안 17회에

[뉴스칼럼] ‘주먹 불끈’ 피의자 대통령
[뉴스칼럼] ‘주먹 불끈’ 피의자 대통령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구속 상태에서 탄핵심판과 형사재판을 받고 있던 윤석열 대통령 측이 제기한 구속취소 청구에 대해 법원이 지난 7일 이를 인용하고, 검찰이 즉각 항고를 포기하면서

[만파식적] 트럼프 시대의 GDP

1929년 10월 24일 주가 폭락을 신호탄으로 미국 경제가 대공황의 늪에 빠졌다. 기업들이 쓰러지고 실업자가 쏟아지는 와중에도 정부는 경제가 얼마나 망가졌는지, 정책이 어떤 효과

[문화산책] 그들이 남긴 감동의 여운

지난 2월, 세 개의 피아노 연주회를 찾았다. 조성진, 임윤찬, 그리고 장성. 이들의 연주를 연이어 감상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설렘이 컸다. 세 사람 모두 세계 정상급 한국인

[한자와 명언] 天 罰(천벌)

*하늘 천(大-4, 7급) *죄 벌(罓-14, 5급) ‘It is a judgment on you for having lied.’는 ‘그것은 네가 거짓말을 한 ○○이다’란 뜻이다.

[수필] 오늘은 햇살이다
[수필] 오늘은 햇살이다

김혜경(사랑의 어머니회 회장·아도니스 양로원 원장) 모닝커피를 내리려고 부엌을 향해 가다가 발을 멈췄다. 창틈으로 숨어든 아침 햇살이 거실 마루 위에 누워있다. 아침의 고요를 갈라

[전문가 칼럼] 보험, 그것이 알고 싶다- 메디케어 파트 C와 외래 진료
[전문가 칼럼] 보험, 그것이 알고 싶다- 메디케어 파트 C와 외래 진료

최선호 보험전문인 의료계에서는 ‘외래’라는 말을 자주 쓴다. 흔히 ‘외래 환자’, ‘외래 진료’ 등에서 쓰이는 말이다.  ‘외래’라는 말은 ‘바깥에서 온’이라는 뜻이라고 우리는 잘

이상무가 간다 yotube 채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