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한국사회는 화염병과 최루탄으로 상징되는 과격시위가 극에 달했습니다. 얼굴을 수건으로 반쯤 가린 젊은이들이 시위대 최 전방에 나서서 방패를 들고 횡렬종대로 막아선 경찰을 향해 화염병을 던지면 전경은 최루탄을 쏘고, 백골단은 육탄으로 시위대를 해산시키는 ‘일그러진 모습’이 서울 도심과 대학가에서 하루도 빠짐없이 일과인양 반복됐었죠.
100도를 육박하는 무더운 날씨에 짓눌린 듯 한적한 모습의 한인타운과 달리 애틀랜타 다운타운은 지난 며칠 간 격앙된 인파가 연일 도로를 메우면서 긴장된 시간을 보냈습니다. 지난 5일 루이지애나, 지난 6일 미네소타에서 잇달아 발생한 경찰의 흑인 총격사건을 규탄하는 시위가 애틀랜타에서도 벌어졌다는 소식을 접하고는 예전 한국의 잿빛 기억들이 오버랩 되더군요.
한 여름에도 무거운 전투복으로 무장한 채 전경버스 옆 바닥에 주저앉아 지친 표정을 짓고 있던 젊은 전경들, 얇은 천으로 된 간이 륙색을 등에 매고 삼삼오오 모여있다가 순식간에 시위행렬에 합세하며 구호를 외쳐대던 남녀 대학생들, 하루 종일 시위 현장을 취재하고 귀사 하면 점퍼에 묻은 최루탄 냄새가 역하다면서도 미소를 날려주던 선배들. 그리고 노태우 전 대통령 시절, 고대 앞에서 열린 시위가 처음으로 화염병 없이 평화적으로 치러졌다는 후배기자의 보고를 받고 흥분해 하며 톱 뉴스로 보도했던 1990년 그 어느 날. 이런 기억들이 30년 가까이 지난 지금 낡은 흑백사진을 보는 것처럼 뿌옇게 떠올랐습니다. 
시위 첫날인 7일에는 수백 명이었던 시위대가 8일에 1만명 이상으로 불어났으니 놀랄 수 밖에요. 더욱이 애틀랜타는 동조시위 인데다 주말이 지나면 수그러들 것으로 예상했는데 월요일까지 닷새 내리 시위가 이어져 내심 심상치 않다는 불안감이 컸었습니다. 비록 평화 시위였지만 총기 휴대가 자유로운 사회인 만큼 계획적이든 우발적이든 총격 사고가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죠. 또 '흑인들의 목숨도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고 외치는 전국 시위대의 목소리가 그 어느 때보다 크고 강하다는 사실도 간과할 수 없었습니다. 다행히 카심 리드 애틀랜타 시장이 시위대 대표를 만나 잠시 시위를 멈추고 냉각기간을 갖기로 합의해 일시 불은 껐지만, 전국의 흑백 갈등 분위기가 좀처럼 가라앉을 기세가 아니어서 냉각기간이 끝나는 다음 주가 주목됩니다. 아울러 불상사에 대비해 한인들도 안전에 주의를 기울여야 하겠습니다.   김수완 발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