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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승순<조지아텍 재료공학과 교수>



매년 그렇지만 2018년에도 마찬가지다. 바로 엊그제 새해에 접어든 것 같은데 불과 석 달이 채 남지 않았으니 유수와 같이 흐르는 세월이라지만 점점 빨라지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또한 동시에 지난 한 해를 어떻게 지내왔는지 돌이켜 보며 기뻤던 일들과 아쉬웠던 일들, 특히 후회되는 일들은 무엇인지 곰곰히 곱씹게 된다. 또한 가정과 직장, 그리고 자신이 속한 많은 인간 관계들 가운데에서 나는 어떤 사람이었는지, 선택의 기로에 섰을 때에 어떤 선택을 해왔는지, 좋은 선택은 무엇이고 뻔한 실수를 반복하지는 않았는지 생각하게 된다. 늘 바쁘게 일분 일초를 아끼며 살아가는 삶, 그러나 다람쥐 쳇바퀴와 같이 반복되는 듯한 일상을 성실하게 살아왔는지 자문하게 된다. 

이러한 생각 가운데 내 자신이 잘 살아가고 있는가 하는 질문에 대면할 때면 떠오르는 기억이 있고, 그 기억은 내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비추어 주는 삶의 거울과도 같은 역할을 한다. 필자의 마음 속에 새겨진 기억은 30대 초반에 보내었던 로스앤젤레스에서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당시 필자는 캘리포니아 공대에서 박사후과정 연구원으로 연구를 하고 있었고, 더디게 진행되는 연구, 불확실한 미래의 진로에 대한 여러 가지 복잡한 고민으로 머리가 꽉 차있었다. 특히 네 가족 먹고 살기에 빠듯한 살림살이와 궁색한 주머니 사정에 늘 시달렸고, 커가는 아이들을 보며 예쁘다 귀엽다 느끼지 못하는 여유 없는 마음 가짐의 가장이었다.

여름의 평범한 주말이었을까? 무슨 이유였는지 기억나지 않는 일로 운전을 해서 LA의 한인 타운을 지나고 있었고, 신호등에 걸려서 잠시 길 위에 멈추어 주변을 생각 없이 둘러보고 있었다. 그 때 인도 위로 한 히스패닉 남성이 네 다섯 살 정도 되어 보이는 남자 아이와 함께 걸어가는 것이 눈에 띄었다. 주말을 맞아 아빠와 아들이 공원에라도 놀러 나온 것이었을까. 한눈에도 행색이 나보다 훨씬 못해 보였던 그들. 나는 그래도 중고 자동차라도 끌며 그 길을 가고 있었지만 그들에게선 차가 있으리라고는 생각되지 않는 남루함이 묻어 나오고 있었다. 그런데 내 눈에 깊이 들어온 것은 그들의 남루한 옷차림도, 언제 감았는지 모를 떡진 머리도 아닌, 손에 롤리 팝 캔디를 들고 세상에 부러울 것 없는 듯 활짝 웃으며 서로 바라보던 그 부자의 표정이었다. 하얀 이를 보이며 밝게 웃으며 무엇인가를 재잘거리며 걷는 아빠와 아들... 나는 그들의 모습에 시선이 고정되어 걸어가는 모습을 내내 보게 되었고, 그들이 시야에서 사라질 때 즈음해서 내 눈에서는 눈물이 고여 있었다. 

근심 걱정을 좋아서 하는 사람이 누가 있으랴마는, 사랑하는 사람들과 살아가는 기쁨과 행복이 무엇인지 묻지도 않은 채, 지나가면 다시 오지 않을 이 시간을 근심 걱정 가운데 그저 보내버리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보게 되었다. 고단한 일들로 가득한 일상을 살고 있지만, 그 가운데에서도 우리에게 허락된 기쁨과 행복이 무엇인지 깨달으며 감사하게 살아왔다면, 그리고 그 고단함이 더할수록 더욱 더 그리하려 노력하며 살아왔다면, 어느 새 스쳐 지나가는 듯한 2018년 한 해도 소중한 시간으로 잘 살아온 것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