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모님이라는 호칭은 어머니 다음으로 살갑고 다사로움으로 마음 깊숙히 자리 잡고 있다.

내 딸들도 이모라는 호칭 속에 담겨있는 깊은 정을 사랑의 끈으로 서로를 이어가고 있기에 이모라는 호칭이 내게는 남다른것으로 되어있다. 일찍 남편과 사별하신 이모님은 나보다  너댓살 어린 딸을 데리고 외가에서 지내셨다.

외가에 갈 때마다 늘 반겨주시는 모습 속에는 푸른 새벽 안개 내음같은 은은함이 깃들어있어 이모님의 알지 못할 신비스런 내음을 맡고 싶어 일부러 이모님의 치마폭에 안겨보기도 했었다.

구전으로 내려오는 구수한 옛날 얘기를 곧잘 들려 주시던 외할머니의 얘기 속에서 늘 빠지지 않는 전설적인 외할아버지의 무용담이 재생되곤 했었다. 일본 순사들을 피해 숨어 다니시던 생생한 현장을 보듯 어린 나에게 자부심과 흥분마저 가져다주는 외할아버지의 무용담을 듣는 동안 이모님은 부엌에서 어린 조카를 위해 분주하셨다.

언제나 단정하셨고 평온이 깃들어있어 이모만 만나면 마음이 나긋해지곤했었다. 사춘기를 넘기면서도 어린 조카의 끝 없는 몽상적인 사념의 세계를 일관성있게 정돈해 주셨고 순수와 문학에의 동경을 함께 나누며 때로는 밤을 밝혀가며 삶의 줄기를 바로 세워가도록 조카를 거두어 주신 이모님의 사려 때문에 나의 사춘기는 독서열로 많은 문학 서적을 탐독할 수 있는 행운의 시기를 보내게 되었다.

대학 입학을 한 그해 아버지에게 닥친 시대의 업보는 너무 잔인했고 그로 인해 아버지의 사업이 기울어지면서 마음을 앓으시던 아버지께서 서둘러 세상을 떠나시고 때 늦은 방황의 시간을 보내게 된 나를 무던히도 마음 아파하시던 시기에 이모님도 정을 붙이며 유일한 삶의 이유였던 이종 동생을 사고로 잃으시는 불운을 겪게 되시었다.

함께 해변의 낙조를 보며 어두워지는 밤 바닷가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기도 했었고 계절을 따라 갈대 우거진 강가를 찾기도하면서 놓아버린 삶의 초점을 찾으려는 긴 여행을 함께 했었다. 계절이 여러 번 바뀌면서 나는 학교를 당분간이라는 명제하에 휴학을하고 행정 공무원의 길을 택했고 이모님은 재혼의 길을 택하시게 되었다.

가까운 어른들과 조촐한 만남을 가지고 이모는 새 이모부의 집으로 옮겨가시게 되었다. 얼마후 아름다운 새출발이 되어지기를 바램하면서 의례히 전실 자식이 있으리라는 예감을 하고 있었던터라 마음을 다지고 이모님의 새 가정을 방문하게 되었다.

막상 이모님을 뵈러간 나는 또 다른 이모님의 모습에 마음이 아려 왔다. 대학을 다니는 큰 아들을 비롯해 두살 씩 터울로 아들만 일곱으로 막내는 유치원생이었다. 일을 도와 주시는 분도 마다하시고 이모님은 그 큰 살림을 혼자서 담담히 해내시고 계셨다.

그렇게 단정하셨음도  이모님만이 지니고 계셨던 그 은은한 향기도 다 접으시고 사내 아이들 틈에서 골목대장 노릇을 하고 계셨다. 그것도 연신 웃으시며 발로 아들의 엉덩이를 걷어 차며 도저히 새로 만난 모자 지간으로는 느껴지지 않을 만큼.

딸을 잃으신  빈 마음을 이렇게 채우고 계시는구나 하는 생각에 이르자 역시 이모님은 이모님 다운 삶을 택하실 수 밖에 없으셨음을 인정해 드려야겠다는 마음을 내색않고 이모님 댁을 나왔다. 

고향을 떠나 이국 낯선 땅에서 해넘이의 길목에 들어선 지금도 모국에 계시는 이모님을 만나러 가고싶다. 갱년기를 힘들게 넘겼을 때도 넓음과 포근함을 지닌 장모로 살아가는 지혜를 얻고 싶을 때도  남은 삶의 여정을 정겹게 함께 보내고싶은 이모님이 그리운데 지난밤 이모님이 돌아가셨다는 전화를 받았다.  이모님은 언니가 없는 나에겐 오롯한 큰 언니였었고 또 한 분의 어머님이셨는데. 선량한 별이 내려와 넉넉한 그늘을 지으시며 인종의 새월을 보낸 여인. 그리운 이모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