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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아침] 9월 서곡

지역뉴스 | 외부 칼럼 | 2024-09-06 08:05:42

행복한 아침, 김정자(시인·수필가)

구양숙 부동산표정원 융자누가 스킨 케어

김정자(시인·수필가)   

 

9월로 접어들었다. 무덥던 더위가 아침 저녁으로 겉옷을 챙겨야 할 만큼 서늘해졌다. 

날마다 더 짙은 푸름으로 옷을 갈아입던 여름이 철이 들어가는 모양 새다. 여름 내내 맺혀진 열매가 속이 들어차는 시절로 들어섰음 이요, 나뭇잎도 풀잎까지도 익어가며 9월을 만들어 갈 것이다. 공원 Pavilion쉼터에서 모임을 갖게 되었다. 지난 수요일이 고령이신 장로님 생신이신 지라 생일잔치 명분으로 가까운 분들이 함께 했다. 장소 선택이 탁월하다고 입을 모은다. 더위도 조심스레 몸을 사리는 계절 길목이라 실내에서 보다 계절 환승을 지켜볼 수 있는 숲이 우거진 공원 나들이가 시기적으로 알맞은 적기라서 인지 노년의 신사 숙녀분들께서 조금은 들뜬 기색으로 보인다. 잘 꾸며진 연회장보다 편안한 분위기에서 시간을 자유롭게 즐길 수 있음이 기특하다는 표정들로 모두 헤벌쭉하다. 준비해온 식사를 나누면서 바람 속에 무엇이 섞였을까 조심스러워 하면서도 만남을 즐기자는 마음으로 위안을 나눈다. 노년층이 특히 조심해야 한다는 코로나19가 재유행이라는 반갑지 않은 방문을 한 터이라서 어쩐지 어색한 행복을 추구하고 있는 건 아닌지 조금은 심려가 일렁이는 형국이긴 하지만. 맑은 계곡에 발을 담글 수 있는 적적한 곳도 아니면서 마지막 더위를 전송할만한 명소를 찾은 것도 아니지만 이민 1세로써의 삶을 묵묵히 견디어 왔기에 공원 쉼터에서의 만남도 마냥 즐거워 보이신다. 

식사시간이 마무리 되자, 모임 때마다 관례 행사처럼 진행되었던 훈담나누기가 이어졌다. 생일이신 장로님의 부인께서 운을 떼기 시작하셨다. ‘하루, 하루를 어루만지듯 소소한 행복을 챙기다가 어느 순간 아무런 자각 없이 편안한 끝맺음을 위해 기도하고 있어요, 여기에 모이신 분들도 편안한 여정 마무리를 바라시지 않으시냐’고 질문을 던지신다. 모두들 숙연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신다. 친정어머니께서 늘 바래셨던 것처럼 나도 자다가 편안하게 가게 되면 좋겠다 싶다. 갑자기 큰 음성이 들린다. ‘아들 자식은 도둑 놈이고 웬수여, 손자는 동포로 생각하면 되고’. 유구무언이다. 연이어 "요즈음엔 70세 아래로는 노인 축에도 못 들어 가신다고. 노인 대접을 제대로 못 받으신다고 불만이 울퉁불퉁이시다. 얼른 곁에 계신 분이 ‘하기야 옛날에 비하면 70이 되어도 늙은이 같지 않은 사람들이 많아졌기 때문이겠지요’. 모두 함구무언 일색이다. 아흔 살에 갓 들어서신 분의 하소연이시다. ‘내 장례식에는 나에게 한 마디라도 하고 싶은 말이 있으신 분들만 오셨으면 좋겠어요. 죽는 시기를 택할 수는 없고, 아프면서 고생하다 갈지, 가족들에게 폐를 끼치다가 갈지 알 수는 없지만’, 말끝이 흐려지신다. 

한 분이 벌떡 일어나시면서 ‘내가 병에 걸렸을 때 현대 의학으로 치료할 수 없고, 곧 죽음이 임박하다는 진단을 받게 되면, 연명 조치는 일체 거부할 것입니다. 하지만 고통을 완화하기 위한 조치는 얼마든지 최대한 취해 주셨으면 좋겠구요. 고통을 억제하는 의약품 부작용으로 죽음을 일찍 맞는다 해도 상관없겠습니다. 만일 제가 식물인간 상태에 빠졌을 때는 생명을 인위적으로 유지하기 위한 연명 조치 중단을 바랍니다. 이 말은 제가 온전한 상태에 있을 때이므로 이 내용을 재차 문서로 작성하지 않는 한 유효합니다’. 이 선언을 들었기에 마치 증인으로 서야 할 것 같은 긴장감이 흐른다. 언제나 편안하게 말씀을 하시던 분께서 ‘우리가 평소에 가졌던 일상 중에 관심과 애착을 줄이고 잡다한 용품들을 과감히 정리하도록 하십시다. 책, 골동품, 귀중품 등을 연고있는 분에게 살아생전에 선물하면 받는 이나 주는 이나 서로가 다 좋겠지요, 언제일지 모를 사후에 유물을 정리해야 하는 가족들에게 민폐를 줄이자는 뜻에서 현명한 노후관리 덕목이 아닐까 합니다.’ 조용한 박수 소리가 애잔하게 들린다. 

동갑인데 생일이 빠르다고 굳이 언니라고 호칭하라는 친구의 덕담이다. ‘우리 나이가 되면 입은 닫을수록 좋고 지갑은 열수록 환영 받습니다. 말하기보다 듣기를 좋아하고 말을 아끼면 더욱 환영 받겠지요. 이상 끝’하시면서 말을 맺는다. 그렇다. 어디서나 장황한 사설은 금물이다. 짧으면서 곰삭은 지혜로운 말이나 유머 한마디는 얼마든지 주변을 즐겁게 할 수 있을 테니까. 조용히 계시다 손을 번쩍 드시면서 ‘세상만사가 내 뜻대로 안 되는 경험은 모두다 많으실 겁니다. 포기할 것은 과감히 포기하고 체념하는 게 현명하겠지요. 되지도 않은 일로 속 끓이지 않는 게 여생을 편안하게 해줄 것입니다.’ 하시고는 머리를 긁적이신다. 매번 모임 때 마다 같은 말씀을 계속하신다. 얼마나 내려놓았는지를 숙제처럼 받아가는 기분이 든다. 유난히 옷매무새 치장에 열심이신 분의 덕담이시다. 배우는 데는 나이가 없어요. 컴퓨터 앞에서나 유튜브에서라도 공부하려는 깨어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 안경을 낀 채 책을 들고 졸고 있는 모습은 얼마든지 아름다운 풍경이 될 수 있을 터이니까.

평소 영화배우라는 별명을 가시신 분의 덕담이 이어진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낭만을 품고 살아가면 몸은 늙어도 마음은 청춘이랍니다’. 옳은 말씀. 늘 마지막을 멋진 멘트로 마무리 해주시는 분께서 축원을 건네신다. ‘지금까지, 가까운 가족을 더불어 주변과 사회의 혜택 속에 살아 왔는데, 얼마 남지 않은 생이기에 이제 부터라도 세상을 위해, 남을 위해 베풀며 살아 가십시다. 사회봉사의 습관이 부족했던 우리 세대지만 하찮은 일이라도 내가 먼저 실천하면 보람을 느끼게 될 것이니까요’. 존경받는 노후로 업그레이드된 삶을 지금 부터라도 시작하자고 이구동성이다. 당장 메모지를 펼쳐놓고 구체적인 발상이 모여지고 향내나는 모의가 시작된다. 9월의 사명감이 색다르게 추가된 셈이다. 생의 가을을 지나 겨울로 들어서는 이 땅의 노인분들에게 베풀어주어야 할 따스한 덕담을 9월은 어찌 마련해야 할지 고심해야 할 것 같다. 9월 서곡이 잔잔하게, 용솟음치듯, 차분하기도 하고, 설레기도 하면서 유쾌하게 울려 퍼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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