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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다시 보자 이란의 힘

지역뉴스 | 외부 칼럼 | 2024-08-05 13:0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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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팔레비 왕조를 무너뜨린 이슬람혁명이 히잡법을 만들기 전만 해도 이란 여성 복장은 자유로웠다. 전제 군주이자 친미 성향인 모하마드 레자 팔레비의 근대화 정책, 세속적 이슬람주의를 지향한 백색혁명으로 참정권 확대 등 여성 인권이 신장됐다. 당시엔 서구식 머리스타일에 치마나 히잡, 차도르(전신 베일)를 쓴 여성이 거리에 섞여 있었다. 신체 노출을 꺼린 종교적 여성과 복장이 자유로운 여성이 공존한 이란이다.

2022년 9월 20대 여성 마흐사 아미니가 히잡을 똑바로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종교경찰에 체포된 지 사흘 만에 사망하자 히잡법 반대시위가 전국을 휩쓸었다. 진보적인 이란 여성의 히잡 반대는 10여 년 전부터 온라인 캠페인 등을 통해 이어져온 터였다. 이슬람혁명이 낳은 종교경찰은 거리에서 머리카락이 보이는 정도, 화장까지 검사할 정도로 악명이 높은 탓에 아미니 사망은 저항의 도화선이 됐다. 이 시위로 수백 명이 숨졌다.

지난달 30일 대통령 취임식을 가진 마수드 페제시키안의 개혁 행보는 세계의 주목을 받는다. 역대 최저 투표율로 국정 불만을 표시한 이란 국민은 1차 대선 투표에서 페제시키안이 1위에 오르자 보수파 후보 결집에 대응해 대거 결선투표에 참여, 이변을 낳았다. 실현하지 못할 약속을 하는 후보에게 투표하지 말라는 최고지도자 하메네이 경고가 무색해졌다. 새삼 눈여겨보게 되는 이란 국민의 힘이다. 팔레비 왕조 폭정만 아니라 세속주의 반발도 탄생 배경이 된 신정국가라 히잡 단속 완화, 인터넷 제한 해제 등 자유와 개방의 공약 실현 여부가 관심이다.

나아가 경제난 극복을 위해 핵 합의 복원 등 서방과의 관계 개선도 약속했다. 하지만 실권을 쥔 최고지도자와 의회, 혁명수비대 등 보수 강경파 힘이 여전한 탓에 개혁 좌초를 점치는 이도 많다. 선거 이변은 국민의 자유의지와 실정 심판이라 마냥 대통령 발목을 붙잡기 어렵다. 북한과 함께 ‘악의 축’으로 규정한 미국이지만 우리 정부는 선거 직후 양국 우호증진 기대를 담은 축전을 보냈다. 원유대금 동결에 유조선 나포 대응으로 껄끄러웠던 관계가 진전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서로 도울 일이 차고 넘치는 두 나라다.

<정진황  한국일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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