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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밤새 눈송이 쌓이는 낮선 기차역

지역뉴스 | 외부 칼럼 | 2024-07-01 10:09:25

시와 수필,박경자(전 숙명여대 미주총동문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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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자(전 숙명여대 미주총동문회장)

 

막차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대합실 밖에는 밤새 송이눈이 쌓이고

흰 보라 수수꽃 눈시린 유리창마다

톱밥 난로가 지퍼지고 있었다

그믐처럼 몇은 졸고

몇은 감기에 쿨럭이고

그리웠던 순간들을 생각하며 나는

한줌의 톱밥을 불속에 던져 주었다

내면 깊숙이 할 말들은 가득해도

청색의 손바닥을 불빛속에 적셔두고

모두들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산다는 것이 때론 술에 취한듯

한 두릅의 굴비 한 광주리의 사과를

만지작 거리며 귀향하는 기분으로

침묵해야 한다는 것을 

모두들 알고 있었다.

 

오래 앓은 기침 소리와

쓴약같은 입술담배 연기 속에서

싸륵 싸륵  눈꽃은 쌓이고

 

그래 지금은 모두들

눈꽃의 화음에 귀를 적신다

 

자정 넘으면 

낮설음도 뼈아픔도 다 설원인데

단풍잎 같은 몇잎의 차창을 달고

밤열차는 또 어디로 떠나는지

그리웠던  순간들을 호명하며 나는

한줌의 눈물을 불빛속에 던져주었다 (시인 곽재구, 전남 광주 출신)

 

곽재구 시인은 다산의 혼, 해남 윤선도 혼을 물려 받았다. 그 토양은 나무가 자란 태어날 때부터 한 줌의 흙으로 천사가 하늘에서 시의 혼을 후손의 귀에 속삭여 준다. 1980년 겨울 오스트레일리아로  기차 여행을 떠났다. 내 나이 28세 그 끝없는 방황, 삶의 고뇌 속에서 허우적거릴 때 지구촌 낮선 땅 오스트레일리아를 찾았다. 시드니에서 시작한 기차여행이었다. 밤이면 기차를 타고 낮에는 원주민 동네에서 시골길을 거닐었고 유난히 온천이 많아 여행자들은 어디서나 온천을 즐길 수 있었다. 낯선 나라 찾아 떠난 밤기차 여행을 잊을 수 없다. 초라한 밤기차역 대합실에는 그리웠던 순간들 밤새 눈송이 쌓이는 그 낯선 기차역에는 톱밥 난로가 타고 있었다. 낯선 타향에서 초라한 대합실에 타고 있던 톱밥 난로 어디로 떠나는지 한 줌의 눈물 속에 아롱거린다.

내면에 하고 싶은 말도 많은데 타는 벽난로의 불꽃 속에  태우고 싶었던 내 젊은 날의 청색의 손바닥을 타는 불빛 속에 하나 둘 던지고 있었다. 내 젊은 날, 왜 그리 삶이 아팠던가?  대답없는 삶의 물음표, 그 끝없는 방황, 삶의 고뇌를 싣고 밤기차를 타고 낯선 거리를 헤매고 있었다.

시드니를 떠나 캔버라, 멜버른까지 나를 실은 밤 기차는 끝없는 초원을 실낱같은 희망을 찾아 삶의 고뇌를 실은 젊은 방황을 실은 채  밤기차를 달리고 있었다.

차창 밖에는 초승달이 집시의 설움을 아는가, 모르는가… 끝없는 초원을 양떼들의 고향일뿐 이름없는 나그네의 마음을 누가 알까…

러시아 볼가강 여행에서 녹슨 기차역, 톨스토이가 그의 생의 마지막이 가까워옴을 알고 삼등열차에 몸을 싣고 시베리아 설원으로 떠나 영영 돌아오지 않았다.

역사 속에 한 잎 낙엽같은 산다는 의미를 찾아 헤매던 내 젊은 날의 그 고뇌를 난 왜 오늘  ‘사평역에서’ 다시 읽는지 모른다.

내가 세상살이가 힘든 날 기차를 타고  지구별 낯선 땅을 헤매던 그 아픈 젊은 날이 오늘 한 편의 시가 되어 내 영혼을 적신다.

누군가의 시 속에는 인간 영혼의 원천에서 흘러나온 시가 흐르고 있다. 어떤 시는 내 인생 비바람을 이겨내고, 절망의 절벽에 떨어져 내리는 나를 받쳐준 손이었고, 따스한 가슴이었다. 지하철 벽에 걸린 누군가의  짧은 시가 나를 받쳐준 번갯불같은 섬광이요, 삶의 진실과 마주하는 지혜와 통찰력이요, 나의 인생의 의문의 문을 열어주는 번개불같은 섬광이었다.

시를 잘 쓸 필요가 있을까… 그저 나 자신으로 돌아가고 싶을 때  영혼 깊숙이 속삭이는 마음 깊숙이 흐르는 영혼의  모음이다.

삶이 송두리째 내 삶을 흔들 때 시는 도피처이기도하다. 다산 정약용선생님이 500여 권의 책을 쓸 수 있었던 것도 아름다운 자연, 아이웃음처럼  맑은 마음으로 세상을 사랑하셨다.

 

 

충분하다

몇마디 단어로도  충분하다

시는 언어가 아니라 가슴이다

그 낯선 기차역  밤새 내리는 눈송이를 

내 젊은 날 끝없는 방황을

무엇이 되어야 한다고

풀리지 않는 삶의 고뇌를 

시가 풀어 주었다.  

낯선 대합실  톱밥 난로가

그리웠던 그 순간들을 

그 낯선 대합실 타는 벽난로에는

오늘도 내면 깊숙이 청색 손바닥속에 내 인생 젊음이  타고있다.

그래 지금은  모두들 

눈꽃의 화음에 귀를 적신다

그래 자정이 넘으면 

낮설음도 뼈 아픔도 다 하얀  설원일텐데…

밤 기차는 또 어디로 떠나는지

난 한줌의 눈물을  불빛속에 던진다

안다, 산다는 것은 

그 톱밥 난로 불꽃속에 타는 불꽃인것을

청춘도 던지고 

빈손으로  빈손으로

침묵해야 한다는 것을… 

하얗게 지워라 내 인생의 아픔도

밤새내린 하얀 눈이 

아픔도 낮설음도  하얀 설원으로 

한줌의 눈물의 순간일지라도

생의 모든 순간들이 벽난로 타는 불꽃일지라도

밤 기차를 타고 어디로 흘러가는지…

지구별 낯선 이방인  

한줌의 눈물을 타는 벽난로에 던져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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