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애틀랜타
엘리트 학원
첫광고
경동나비

[삶과 생각] 쪽 화단에서 행복을

지역뉴스 | 외부 칼럼 | 2024-09-23 17:13:40

삶과 생각,방인숙,수필가,쪽 화단에서 행복을

구양숙 부동산표정원 융자누가 스킨 케어

내게, 제일 감명 깊은 영화는 ‘마음의 행로(Random Harvest)’다. 마지막 장면에서 기억상실 남자가 비로소 옛집을 기억, 만개한 꽃길을 지나 물음표인체 간직하던 열쇠로 문을 열고, 아내랑 진짜로 재회한다. 이후 내 소망 중의 하나가 현관문 앞 꽃길이었다.

해서 이사 오자마자, 현관 길 양쪽잔디를 캐고 벽돌을 박은 폭 50cm 쪽 화단을 만들었다. 이 미니 꽃밭은 이른 봄, 첫 손님인 노랑 수선화에 이어 청색 히아신스가 폈다가 겸손히 스러진다.

이어 하얀 마가렛트들의 춤사위에 나비인양 꽃길을 거닐며 메밀꽃의 운치에 젖는다. 한 여름엔 서양꽃모종인 임페이션즈, 베고니아로 채웠다. 그러다 어릴 때 할머니랑 가꾼 정겹던 화단이 그리워 일년초로 대체했다.

아버지가 하늘로 가신 해엔 과꽃을 흰색으로만 심어 슬픔을 기렸는데, 개화기가 짧아 유감이었다. 엄마가 떠나셨을 땐 좋아하시던 코스모스로 장식, 추모에 잠기곤 했다.

그 다음 인연 맺은 화초가 국화과로서 10월 탄생화인 메리골드다.

옛적엔 금잔화라 불렀기에 영어이름이 Marigold구나 여겼다. 그런데 둘은 엄연히 다른 꽃으로 분류된단다. 멕시코가 원산지인 메리골드는 크게 두 가지다. 유럽으로 이주한 프렌치메리골드(만수국)와 아프리카로 이식된 아프리카메리골드(천수국)다. 별칭인 천수국, 만수국에서 짐작되듯 개화기가 6월부터 서리 맞을 때까지 길다.

몇 년 동안은 꽃송이가 테니스공 모양 둥글고 다알리아같이 소담한 천수국의 노랑이나 주황으로 통일, 단색으로 장식했다. 그러다 천수국보다 꽃은 작아도 노랑, 주황, 검붉은 색까지 어우러진 홑겹이나 겹꽃에다 가운데가 쏙 올라와 다채로운 만수국으로 바꿨다.

천수국의 ‘이별의 아픔’ ‘가련한 사랑’이란 슬픈 꽃말과 달리, ‘반드시 오고야 마는 행복’이란 특별한 꽃말에다 수명도 더 길으니까. 또 신비하게도 씨를 섞어 무작위로 뿌려도, 나름대로 ‘우량자손승계법칙’의 선택인지 각양각색의 꽃 잔치를 연다.

내가 쪽 꽃밭을 빛내줄 ‘마무리투수’로 10년도 넘게 메리골드를 기용하는 이유다. 어릴 때 꽃 선호도에서 늘 등외였던 금잔화가, 이 먼 타향에서 메리골드로 개명, 뒤늦게 내 반려식물로 등극할 줄은 몰랐다. 이렇게 30년 동안을 좋아하는 꽃들이 순서대로 피고 지니 쪽 화단은 늘 내게 행복이다.

흠이라면 자라는 여정에 툭하면 곁가지가 원줄기에서 갈라지며 부러지는 거다. 자랄 때라면 그나마 덜 아까운데 성숙해서 제 무게 때문에 부러지니 너무 애석하다. 줄기가 튼실하던 가, 감당할 만큼만 꽃을 피워야했다. 지나친 욕심의 결과다.

테이프로 붙여보고 부목을 대줘도 헛수고다. 작년에야 ‘혹시 기적이?’ 하며 훼절(毁折)된 걸 심고 보살폈더니, 오뚝이 같이 기사회생 복제됐다. 그나저나, 인간들도 삶의 무게가 버겁거나 절망적 세상살이 현실과 맞서도, 이런 식물마냥 새로운 기회창출로 재생치유 된다면, 험한 인생길도 훨씬 수월하련만...

<방인숙 수필가>

 

댓글 0

의견쓰기::상업광고,인신공격,비방,욕설,음담패설등의 코멘트는 예고없이 삭제될수 있습니다. (0/100자를 넘길 수 없습니다.)

[신앙칼럼] 차원 높은 감사(The High Level Of Gratitude, 합Hab. 3:16-19)

방유창 목사 혜존(몽고메리 사랑 한인교회)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합 3:18). 여호와, 하나님을 감사의 대상으로 삼는

[뉴스칼럼] 슬기로운 연말모임 - 말조심

“아버지가 언제 그렇게 바뀌었는지 알 수가 없다”고 60대의 백인남성은 기가 막혀했다. LA에서 대학교수로 일하는 그는 부친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최근 동부에 다녀왔다. 90대

[파리드 자카리아 칼럼] 민주당의 세 가지 실수
[파리드 자카리아 칼럼] 민주당의 세 가지 실수

언뜻 보기에 2024년 한해 동안 나라 안팎에서 치러진 선거는 팬데믹 이후의 혼란과 인플레이션에 휘말린 정치 지도자들을 한꺼번에 쓸어간 거대한 물결로 설명할 수 있을 듯 싶다. 지

[이 아침의 시] 날의 이야기
[이 아침의 시] 날의 이야기

‘남의 이야기’ 고영민  주말 저녁 무렵아내가 내민 음식물 쓰레기통을 비우러밖에 나왔는데아파트 옆 동 쪽으로 걸어가는할머니의 뒷모습에 깜짝 놀랐다영락없는 내 어머니였다돌아가신 지

[안상호의 사람과 사람 사이] 옐프 전국 1위 식당
[안상호의 사람과 사람 사이] 옐프 전국 1위 식당

첫날은 허탕을 쳤다. 미리 주문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하는 사람은 둘인데 주문 26건이 밀려 있었다. 지금 주문하면 한 시간 반쯤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25센트 동전 하나에

[전문가 기고] 한국의 전문간호사와 미국의 NP

최근 한국의 의료사태와 관련해 간호법이 국회에서 통과 공표되어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다. 의사협회가 자신들의 영역을 침범한다며 적극 반대했는데도 여야 거의 만장일치로 통과됐다. 간

[삶과 생각] 책임감
[삶과 생각] 책임감

책임감, 이거 없는 사람들 꽤나 있다.오늘 신문을 보니 후배의 부인상(喪配) 부고가 나왔다. 적어도 금혼(金婚)은 지났으리라.처음엔 사랑이요, 중반에 친구로, 후반엔 동반자로서 사

[삶과 생각]  애틀랜타 k – 글로벌 엑스포
[삶과 생각] 애틀랜타 k – 글로벌 엑스포

지천(支泉) 권명오(수필가 / 칼럼니스트)  지난해 미주 상공인 총연합회장(이경철) 취임식을 애틀랜타에서 거행한 뒤 첫 사업으로 해외 최초로 한상대회를 LA오렌지 카운티에서 개최해

[시와 수필] 정직은 최선의 정책이다

박경자(전 숙명여대 미주총동문회장) 모래 한 알에서 세계를 볼 수 있고 들꽃 한 송이에서 하늘 나라를 보고우리의 손바닥에서 무한한 영겁을그리고 한순간 속에서 영원을 본다   ( 시

[전문가 칼럼] 보험, 그것이 알고 싶다-  메디케어를 신청할 수 있는 자격
[전문가 칼럼] 보험, 그것이 알고 싶다- 메디케어를 신청할 수 있는 자격

최선호 보험전문인 ‘아널드 슈워제네거’는 영화 ‘터미네이터’의 배우로 유명하기도 하지만, 캘리포니아 주지사였던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가 캘리포니아 주지사 시절에 그를 미국 대통령으

이상무가 간다 yotube 채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