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애틀랜타
경동나비
첫광고
엘리트 학원

[시론] 이제 그래피티까지 흉내 내나?

지역뉴스 | 외부 칼럼 | 2023-12-27 17:16:05

시론, 윤여춘 전 시애틀 고문

구양숙 부동산표정원 융자누가 스킨 케어

내 집 앞마당 잔디 울타리는 동네 개들의 공중변소이다. 주인에 이끌려 산책하는 견공들이 코를 들이박고 킁킁대고는 찔끔 방뇨하고 간다. 자기 영역을 침범한 녀석이 있는지 확인하고 제 체취를 보강하는 짓거리다. 모든 들짐승들도 마찬가지여서 배설물이나 털을 흩트려 영역을 표시하고 교미할 대상도 유혹한단다. 일종의 자기과시 본능이다.

영장동물인 인간의 자기과시 역사도 유구하다. 4만 년 전의 동굴 벽에 원시인들이 돌로 긁은 흔적이 발견됐다. 이집트와 로마의 고대유적에서도 돌기둥이나 벽에 긁어서 쓴 사람 이름들이 발견됐다. 고고학자들이 이들을 ‘긁혀진 것(scratched)’이라는 뜻의 라틴어 ‘그라피토(graffito)’라 불렀다. 오늘날엔 복수형인 그래피티(graffiti)가 주로 쓰인다.

요즘 그래피티는 개인주택이나 공공시설의 벽 또는 담장 등에 허가 없이 스프레이 페인트로 마구 글씨를 쓰거나 그림을 그려 재산피해를 초래하는 행위를 총칭하며 거의 모든 나라가 ‘반달리즘(vandalism)’으로 처벌한다. 5세기경 게르만족 부류인 반달족이 서쪽으로 이동하며 약탈과 파괴를 일삼았다는 잘못된 ‘사실(史實)’에서 기인한 용어이다.

원래 그래피티는 무 개념의 일반 낙서와 구별됐다. 나름대로 목적의식이 내재한다. 사냥작전을 그린 원시인들의 동굴 그래피티는 인류예술의 효시라는 말까지 듣는다. 벽을 긁어서 흠집 낸 그래피티가 거의 모두 커뮤니케이션 용도였다. 로마 명소인 카타콤(지하묘지)의 그래피티도 기독교 공동체의 커뮤니케이션 수단으로 반달리즘과 차원이 다르다.

힘들게 긁지 않고 페인트로 금방 완성하는 미국식 그래피티는 1960년대 필라델피아와 뉴욕에서 주로 전철과 화물열차들을 대상으로 시작됐다. 대개 갱단의 명칭을 표시한 ‘태그’(소형 낙서)였지만 곧 ‘매스터피스’로 대형화됐다. 내가 1978년 한국일보 뉴욕지사를 찾아갔을 때 전철 창문들이 온통 페인트로 칠해져 밖이 내다보이지 않을 지경이었다.

이런 행위를 본인들은 그냥 ‘글씨 쓰기(writing)’라고 했지만 저명한 문화평론가 노먼 메일러와 뉴욕타임스가 이를 ‘그래피티’로 격상시켰다. 당시 미국사회를 뜨겁게 달구기 시작한 힙합문화의 아류로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예술성 인정여부가 미국에서 논란이 된 가운데 그래피티는 힙합문화의 등에 업혀 유럽, 남미, 동남아 등지로 퍼졌다.

지난주 워싱턴DC의 링컨 기념관이 반달리즘을 당해 일시 폐쇄됐다. “가자를 해방하라”는 친 팔레스타인 구호가 층계 등에 빨간색 페인트로 휘갈겨 쓰여 있었다. 국립사적지인 이 기념관은 2017년에도 쌍욕 낙서피해를 입었었다. 나흘 전엔 인근에 있는 국부 조지 워싱턴의 기마동상도 화강암 대좌에 똑 같은 형태의 모방 반달리즘 피해를 입었다.

이보다 앞서 한국에선 경복궁 돌담이 16~17일 잇달아 스프레이 페인트로 훼손돼 발칵 뒤집혔다. 국보 1호인 숭례문(남대문)이 2008년 한 노인의 방화로 전소된데 이어 이번엔 청소년들이 연 이틀 문화재를 훼손했다. 체포된 첫 번째 범인(10대)은 누군가가 돈을 준대서 저질렀다고 했고 두 번째 모방범인(20대)은 재미로 했다며 경찰에 자수했다.

특히 두 번째 범인은 자신이 예술을 한 것이라며 “안 미안하다”고 말했단다. 미국 물을 좀 마신 모양이다. 뉴욕 시는 전철낙서를 지우는 데만 연간 5,200만 달러를 쓴다. LA도 2,800만 달러를 각종 낙서제거에 투입한다고 들었다.

이런 아이들을 엄벌하지 않으면 세계최고의 서울 지하철이 언젠가 뉴욕이나 LA 지하철과 비슷한 몰골이 될지도 모른다.

<윤여춘 전 시애틀 고문>

댓글 0

의견쓰기::상업광고,인신공격,비방,욕설,음담패설등의 코멘트는 예고없이 삭제될수 있습니다. (0/100자를 넘길 수 없습니다.)

[신앙칼럼] 라함의 축복(Blessing of Raham, 마Matt. 5:7)

방유창 목사 혜존(몽고메리 사랑 한인교회)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마 5:7). “긍휼(Mercy)”을 의미하는 히브리어는 ‘엘레

[삶과 생각]  지난 11월5일 선거 결과
[삶과 생각] 지난 11월5일 선거 결과

지천(支泉) 권명오(수필가 / 칼럼니스트)  선거는 끝났다. 1년 이상 치열하게 선거전을 펼치며 당선을 위해 올인했던 대통령 후보와 지방자치 선출직 후보들이 더이상 열전을 할 일이

[시와 수필]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박경자(전 숙명여대 미주총동문회장) 저렇게 많은 별들 중에 별 하나가  나를 내려다 본다 이렇게 많은 사람 중에 그별 하나를 쳐다 본다 밤이 깊을 수록별은 밝음 속에 사라지고나는

[한자와 명언] 修 練 (수련)

*닦을 수(人-10, 5급) *익힐 련(糸-15, 6급) 학교 교육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바로 ‘가정 교육’인데, 이를 문제시 삼지 아니하는 사회적 풍조 때문에, 우리 사회가 병들

[내 마음의 시] 통나무집 소년
[내 마음의 시] 통나무집 소년

월우 장붕익(애틀랜타문학회 회원) 계절이 지나가는 숲에는햇빛을 받아금빛 바다를 이루고외로운 섬  통나무집에는소년의 작별인사가 메아리쳐 온다 총잡이 세인이소년의 집에서 악당들을  통

[전문가 칼럼] 보험, 그것이 알고 싶다-   메디케어 혜택의 신청
[전문가 칼럼] 보험, 그것이 알고 싶다- 메디케어 혜택의 신청

최선호 보험전문인 다른 나라에서도 그렇겠지만, 특히 미국에서는 65세 전후가 상당히 중요한 나이가 된다. 은퇴할 나이가 되기 때문이다. 직장에서 은퇴하는 경우에도 그렇지만, 자영업

[애틀랜타 칼럼] 가정 생활의 스트레스

이용희 목사 저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한 가지 잘 한 것이 있었는데 책을 잘 읽었습니다. 그래서 학교 선생님이 대표로 책을 읽으라고 많이 권유를 했습니다. 제가 목사가 된 후에 가장

[벌레박사 칼럼] 집 매매시 터마이트 레터 준비하기

벌레박사 썬박이곳 조지아는 집 매매시 터마이트 클로징 레터(Termite clearance letter) 가 반드시 필요한 필수 서류는 아니지만, 집 매매시 대부분의 바이어가 요구

[법률칼럼] 시민권자 초청 영주권

케빈 김 법무사  시민권자 배우자를 통한 영주권 신청은 많은 분들이 알고 있는 내용이지만, 실제로는 잘못된 정보로 혼란스러워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시민권자 배우자 초청을 통한

[행복한 아침] 아 가을인가

김정자(시인·수필가) ‘아 가을인가’ 이 가곡은 가을이 돌아오면 저절로 흥얼거리게 되는 노래다. 후반부 소절엔 멜로디도 가사도 기억이 흐려지려 했는데 이번 주 합창단에서 악보를 받

이상무가 간다 yotube 채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