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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숙희의 시선] 아이 낳기 무서운 세상

지역뉴스 | 외부 칼럼 | 2023-12-21 12:04:24

정숙희의 시선, LA미주본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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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운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거의 비슷한 걱정을 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애들이 서른 마흔이 넘도록 결혼할 생각을 안 한다는 것, 결혼을 했어도 아이 낳을 계획이 없어 보인다는 것, 그리고 우리들 자신도 이제는 굳이 손주 보겠다는 기대와 욕심이 없다는 것이다. 공통된 이유는 “세상이 너무 무서워서…”다. 

세상이 무서운 이유에는 범죄와 마약, 인종차별, 전쟁, 정치와 경제의 양극화 등 숱한 요인들이 있지만 가장 큰 것은 기후변화, 환경문제다. 폭염, 홍수, 가뭄, 산불, 해수면상승 등 지구온난화로 인한 자연재해가 갈수록 악화되고 있으니 이런 환경에서 후손들이 살아갈 생각을 하면 너무 미안하고 안쓰러워 차라리 대가 끊겨도 좋다는 생각마저 하게 된다는 것이다. 

지난 11월30일부터 12월13일까지 제28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COP28)가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에서 열렸다. 세계 198개국에서 약 7만명이 참석한 올해 총회는 예년에 비해 많은 주목을 받지도 못했고, 전반적인 성과가 크지 않다는 평가가 나왔다. 하지만 한 가지 중요한 진전이 있었다. 

COP회의 28년 역사상 처음으로 지구상의 거의 모든 나라들이 ‘석유와 천연가스’가 지구온난화의 주범이므로 ‘화석연료’ 사용을 줄여야한다는 필요성에 동의한 것이다. 지금까지는 사우디 등 산유국들의 강력한 반대로 ‘석탄’의 단계적 감축에 합의했을 뿐 ‘석유와 가스’는 거론되지 못했는데 이번에 진통 끝에 석유, 천연가스, 석탄을 모두 아우르는 ‘화석연료’라는 표현이 최종 합의문에 명시되면서 전 세계가 공동문제로 인식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학자들은 이번 합의가 지구온난화를 막을 수 있을지에 대해 회의적이다. 총회를 거듭해도 말뿐,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개인 또는 집단의 이기심은 전체의 이익에 반하는 행보를 보인다. 총회를 마친 직후, 올해 COP 의장국인 UAE가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큰 규모의 석유·가스 프로젝트 계획을 밝힌 것이 좋은 예다. 환경단체들은 입을 모아 이중적 행보라고 비난하고 있지만 누가 막을 수 있겠는가? 이런 식이라면 인류는 스스로 종말을 앞당기게 될 것이다. 

2023년은 인류역사상 가장 더웠던 해였다. 이와 함께 올해 지구의 평균온도는 산업화 이전보다 1.4도 상승한 것으로 관측됐다. 기후위기를 막기 위한 마지노선인 1.5도를 넘어설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얘기다. 전문가들은 현재의 추세로는 5년 내에 1.5도를 넘어서고, 2050년에는 1.7도, 2080년에는 2도, 세기말에는 3도에 도달할 것으로 보고 있다. 

전문가들에 의하면 1.5~2도 더워진 환경만 되어도 대기오염으로 1억5,000만명이 일찍 죽게 된다. 1세기에 한번 올까말까 한 대홍수가 매년 일어나고, 산불의 규모는 2배로 커지며, 아마존우림이 사라지고, 빙하가 녹아 해수면이 크게 상승한다. 3도가 되면 뉴욕 시는 매년 대홍수에 침수되고 아프리카는 평년보다 50배나 뜨거워져 사람이 살 수 없게 된다.   

‘인간 없는 세상’(The World Without Us)이란 책이 있다. 어느 날 지구상에서 인류가 갑자기 사라져버리면 세상이 어떻게 변할까를 상상해본 환경과학 넌픽션이다. 언론인 앨런 와이즈먼이 쓴 이 책에 따르면 인류가 멸종했을 때 가장 먼저 찾아오는 것은 ‘정적’이다. 전등 에어컨 컴퓨터의 전기소리, 온갖 기계음과 자동차 소음, 음악소리, 공사장 소음이 모두 사라지면 거리에는 새소리 나뭇잎 소리 같은 자연의 소리만 울린다. 

이어 서울 뉴욕 런던 등 대도시의 지하철은 1주일도 못돼 물에 잠긴다. 매일 수천 리터의 지하수를 퍼내는 펌프의 작동이 중단되면 순식간에 지하터널이 범람하면서 도로가 여기저기 갈라지고 새로운 물길이 생겨난다. 한 달쯤 지나면 발전소들이 가동을 멈추어 지구는 인공불빛 없는 세상으로 돌아간다. 세계 440여개의 원자력발전소들은 냉각수 순환시스템이 작동을 멈추면서 과열되어 불타거나 녹아내려 엄청난 양의 방사능이 유출된다.

집들은 사람이 살지 않으면 금방 허물어진다. 특히 추운 지방에서는 난방이 중단되면 배관이 얼고 녹기를 반복하면서 터지고, 건물도 수축과 팽창을 거듭하다가 균열되어 목조가옥은 기껏해야 10년, 일반 집은 100년을 못 버틴다. 피뢰침도 삭아버려 많은 건물들이 번개에 맞아 불길에 휩싸인다. 멕시코만과 쿠웨이트의 천연가스 유정에 불이 붙으면 지하에 매장된 가스가 다 없어질 때까지 수십 년 동안 타오르면서 대기 중에 중금속 등 독성물질이 방출되어 전 세계로 흩어진다. 

한편 야생동물들은 번성한다. 매년 고압전선, 자동차와 비행기, 고층빌딩 유리창에 부딪쳐 10억 마리 이상씩 죽던 새들이 자유롭게 하늘을 날게 된다. 상아 때문에 죽임을 당해온 코끼리 등 멸종위기 동물은 개체수가 100년 만에 20배로 늘어난다. 300년이 지나면 인간이 개간했던 논과 밭이 사라지고 개량종 농작물들은 다시 작고 맛없는 야생종으로 되돌아간다. 500년 후에는 고층건물들이 다 무너져 내려 숲으로 뒤덮이고, 1만년이 지나면 인류 문명은 완전히 사라진다. 하지만 땅과 대기가 중금속과 방사능으로부터 정화되기까지는 수십만년이 더 걸린다.   

사람들은 인류에게 종말이 찾아오면 지구도 함께 망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인간이 사라지면 지구는 오히려 회복된다. 이 책은 상처 입은 지구의 경이로운 자기치유 모습을 과학적 탐구와 놀라운 상상력으로 그려 보인다. 자연 앞에서 인간과 문명은 휴지조각 같은 존재일 뿐이다. <정숙희 LA미주본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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