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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아침] 단풍이 아름답게 피었습니다

미국뉴스 | 외부 칼럼 | 2023-11-03 08:34:18

행복한 아침, 김정자(시인·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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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자(시인·수필가)  

 

미 국내에서 라스베가스 다음으로 결혼식 선호도가 높은 테네시 소재 개틀린버그  경유로 미국내 최고의 단풍을 감상할 수 있는 그레이트 스모키 국립공원을 찾아 나섰다. 먼 능선들이며 산자락이 최상의 가을풍경으로 반겨준다. 존재 이유였던 푸름의 산화를 겪어내며 마지막을 불태우고 떠날줄아는 순복을 고하고 있는 가을 정취의 황홀경을 빚어 낸 눈부신 단풍이라서 아름답게 피었노라고 예찬하지 않을 수 없음이다. 깜짝 추위가 지나간 흔적이 역력하다. 봄이면 꽃으로 쏟아지는 꽃 비가 좋아서, 가을이면 낙엽으로 흐드러지게 쏟아지는 꽃비가 좋아서 해마다 늦은 봄에, 늦가을 즈음에 스모키 산자락을 찾곤한다. 장엄한 산세의 위용으로 만날 때마다 숙연해진다. 룩아웃마다 다붓하고 호젓한 풍광이 색다른 감성으로 다가 온다. 남은 날의 짧음을 상기하라는 메시지가 원색 잎 서리서리에 맺혀있다. 수북히 쌓인 가랑잎 까지도 버림의 미학을 전시하는 생태 체험 미술관 같다. 낙화하듯 쏟어지는 낙엽의 내려놓음과 나목의 비움이 비장의 몸부림으로 보인다.

 

다음 해를 기약한다 하지만 실은 다음 해의 낙엽은 올해의 잎새가 이미 아니라는 석별의 마음이  서걱거린다. 스모키 산맥 최정상에서 두손을 입에 모으고 ‘단풍이 아름답게 피었습니다’라고 외쳐본다. 계곡이 만든 충분한 진폭과 산세의 흐름 따라 되돌아오는 파장도 단풍 빛깔 메아리가 되어 돌아온다. 신기루 단편 처럼 산이 깊어질수록 원색의 향연이 더해가는 것 같다. 흙으로 돌아갈 가랑닢 아우성이 숲을 흔들고 산자락은 축제에 젖은 듯 존재하는 모든 색감들을 불러들였다. 겹겹이 흐르는 산세의 능선과 능선, 계곡과 산자락 마다 저만의 색조에 집중하며 여념없이 원색 축제를 위해 온 산하를 물들이고 절경의 최정점을 이루어 놓았다. 겹겹이 쌓인 아스라한 능선은 선과 선으로 이어지며 가물거리는 지평선 여백이 담백한 수목화를 연출해 내고 있다. 무한대의 깊음을 묘사해낸 선과 선이 이어지는 붓끝의 예기가 서려있다. 삶의 지난함이 빚어낸 생의 조감도가 한겹씩 겹쳐진듯 하다. 생의 유한성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처연한 체념까지 직시할 수 있는 적절한 겨를을 열어준 것이다. 방문객들의 발걸음도 이러함을 지켜보기 위해 찾아나선 걸음들로 보여진다.  

 

온대 띠를 두르고 있는 모든 변방도 함께 물들고 있어 우주에서 바라보는 지구 별은 단풍으로 채색된 빛으로 우주 공간에서 으뜸된 아름다운 별로 빛날 것이다. 무리지듯 쏟아지는 낙엽 춤사위가 웅장한 심포니 울림에 감응된듯 온통 마음을 휘저어 놓는다. 낙엽의 마지막을 지켜주는 조문객처럼 찾아든 걸음들의 조화가 어찌보면 동상이몽 같다. 낙엽 또한 해마다 수 많은 조문객을 불러 들이는 재주가 있었던 것을. 잎새의 마지막을 지켜주고픈 마음을 담아 판타지 동화 같은 빛깔 고운 낙엽 몇잎을 거두어 들인다. 구비구비 결고운 산세를 연출 해내려 아름다운 단풍 꽃으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깔 맞춤하려는 미묘한 돌발적 의지로 보인다. 꽃으로 피워낸 단풍이 정서적 피안으로 안내해 준다. 감성적인 다감한 길잡이에 이끌리듯 지극히 현실주의였던 인생들도 낭만주의를 자처하게 된다. 

가을이 아름다운 계절로 주목받는 사유는  열풍처럼 섬약하고 세심한 센티멘탈로 이끌어 주기 때문인 것 같다. 새순으로 시작한 신록의 아름다움에서 생명력을 느끼게해 주었던 아름다움의  소멸의 공허를 깨달음하게 해주는 모순의 아름다움 까지. 가을 산은 선별된 아름다움을 펼치고 있다. 계곡 사이로 흐르는 개울에 실려 긴 여정을 떠나는 낙엽도 눈에 띄인다. 세월에 실려 흘러가는 인생의 옆모습으로 언뜻 보인다. 골짜기마다 단풍이 만개했던 것도 잠시, 바람에 실려 꽃비처럼 쏟아지는 산자락마다 비움과 고독, 쓸쓸함과 쇠락, 몰락으로 인한 내려놓음의 정석을 펼쳐내고 있다. 비움과 내려놓음을 묵언으로 일깨워주고 있는 가을 날이 얼마간 남았을까 싶은데 가을처럼 살고 싶은 마음 길이 트이고 있다. 

 

비워야할 것이 무엇인지, 내려놓아야할 것이 무엇인지를 이미 알아버린 가을 산야의 고해성사가 이리도 아름다울줄이야. 가을 산은 소멸의 아쉬움 조차도 연민의 도취라 우기며 과잉된 감정 소모가 아닌 순수로 물들게하는 저력까지 지니고 있었음을. 극적인 화려함에서 적막함으로 추락하는 단풍과 낙엽의 최정점이 교차하는 압축된 생태계 현장을 목격하면서 한편으론 초토화된 가랑잎 패권이 전쟁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지구촌 모습으로 비견된다.  멋있게 떠나려는 가을 심중에는 영혼을 어루만지는 힘의 내재로 하여 흐뭇하고 흡족한 풍경과의 석별이 아쉽다. 능선과 능선은 메아리로 마음을 나누고 낙엽은 낙엽끼리 낙엽의 언어를 나누는데 머리에 서리앉은 나이든 아낙은 아무말도 알아듣지 못한다. 낙엽이 꽃이 되어 거샌 빗줄기 처럼 쏟아져 내리는 계곡을 바라보며 ‘단풍이 아름답게 지고 있습니다’ 하고 외쳐본다. 초록 향연에서 보냈던 호시절을 추억하게 되는 계절 둔덕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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