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애틀랜타
엘리트 학원
경동나비
첫광고

[전문가 에세이] 우울증과 쿡방

지역뉴스 | 외부 칼럼 | 2023-06-01 12:09:59

전문가 에세이, 김케이 임상심리학 박사

구양숙 부동산표정원 융자누가 스킨 케어

김케이 (임상심리학 박사)

푸른 꿈을 안고 미국 올 때 들고 온 책은 전공서적이 아니라 무거워 죽겠는 요리책 전집이었다. 아직 미혼이던 나에게 직장 선배가 골라준 책. 요즘은 한국-미국이 앞뒷집 드나들 듯 별거 아닌 세상이지만 그때만 해도 바다 건너 머나먼 타국 땅으로 떠나는 나에게 선배는 두꺼운 요리책 한 박스를 전하며 신파조로 말했다. “한국을 잊지 마!” 20권짜리 양장본 전집에는 갈비찜부터 나박김치에 수정과, 약식에 이르기까지 온갖 한국요리들이 화려한 컬러사진으로 들어있고 재료 및 만드는 법이 차근차근 설명되어 있었다. 그 나이까지 평생 내가 한 일이라고는 공부, 학교, 취업, 회사, 출장, 그리고 틈틈이 운동, 연애…. 손수 음식 만들어볼 기회 없이 살다가 어느 날 홀로 미국 땅에 내렸다.

요리책에 나온 재료를 사러 코리아타운 한국마켓에 나가보면 이름도 처음 듣는 채소와 양념류와 부위별 고기와 생선들이 날 잡아 잡수 하면서 눈길을 끈다. 요리전집 1권부터 20권까지, 모든 메뉴를 빼먹지 않고 한번 씩 연습하는데 꼬박 1년이 걸렸다. 한번 해본 요리는 머리에 기억되는 게 아니라 눈과 코와 혀와 손바닥에 조물조물 저장되어 재현 가능 모드로 남았다. 초보자가 겨우 흉내내본 수준으로는 그 정도도 감지덕지인데 알고 보니 한식이란 쌀이나 밀가루를 이용하는 주식이 4백가지, 고기나 채소, 해산물로 만드는 부식은 1,500가지 이상이라고 한다. 정말 메뉴는 많고 인생은 짧다.  

인터넷의 1인 먹방은 세계적 주목거리다. 밥상에 둘러앉아 밥 같이 먹는 게 ‘식구’라면 그건 가상현실 속 이야기. 핵가족도 지나 2인 가족이라도 마주앉아 밥 먹을 시간이 없다. 스마트폰이 신체의 일부가 된 세상, 혼자 먹방을 켜놓고 진행자와 같이 밥을 먹는다. 입으로만 먹지 않고 눈으로도 먹고 냠냠 찹찹 귀로도 먹는다. 진행자들의 튀는 표현도 입맛 자극이다. ‘케찹은 지우개를 찍어 먹어도 맛있고, 튀김은 신발을 튀겨도 맛있지.’ 해외 언론에서는 한국의 먹방 인기를 ‘음식포르노’(Food Porn)라고 이름 붙인바 있다. 아울러 남성 진행자들의 쿡방도 인기 폭발이다. 

얼마 전 미국 인지심리학 저널에는 ‘먹기보다는 만들기가 개인의 자신감과 자존감, 그리고 집중력을 높인다.’는 연구결과가 소개됐다. 흙 묻은 감자, 물에 씻은 채소, 싱싱한 생선을 만지면서 스트레스가 풀리고 우울증상이 감소되었다는 게 여러 연구들의 공통된 결과다. 쿠킹이 치료다. 임상심리에서 특히 우울증치료에 자주 사용되는 행동활성화 기법(Behavioral Activation Program)이 그것인데, 주어진 삶에 적응할 수 있도록 환자가 좋아하는 활동의 횟수는 늘이고, 반대로 별 소득이 없는 활동은 감소시킨다. 이 기법은 대단위 연구결과 효과성이 검증되었고 메타분석연구에서도 대단히 긍정적인 결과가 나타나면서 미국심리학회에서는 이미 우울증에 대한 단독치료, 근거기반치료(Evidence-Based Treatment)로 채택이 되어있다. 조리법을 따르느라 정신을 집중하는 동안 스트레스가 풀리고 완성된 작품(요리)을 보며 자신감을 키울 뿐 아니라 부정적 사고를 억제하는데 도움이 된 사례가 연구마다 가득하다. 

오늘 아침, 블루 무드인가? 그렇다면 키친으로 가자. 냉장고 구석에 숨어있던 재료를 꺼내 일렬횡대 늘어놓는다. 요리 못한다고? 맛없으면 어떤가. 먹자는 게 아니고 만들자는 건데. 그게 재미이고 그게 힐링이다. 

[전문가 에세이] 우울증과 쿡방
김케이 임상심리학 박사
댓글 0

의견쓰기::상업광고,인신공격,비방,욕설,음담패설등의 코멘트는 예고없이 삭제될수 있습니다. (0/100자를 넘길 수 없습니다.)

[행복한 아침] 글쓰기 노동

김정자(시인·수필가) 나에게 글 쓰기는 못 본 척 덮어둘 수도 없고 아예 버릴 수도 없는 끈적한 역량의 임무인 것처럼 때론 포대기로 업고 다니는 내 새끼 같아서 보듬고 쓰다듬으며

[전문가 칼럼] “트러스트 설립과 관련해서 제일 먼저 듣는 질문들”
[전문가 칼럼] “트러스트 설립과 관련해서 제일 먼저 듣는 질문들”

김인구 변호사 질문 1. 트러스트가 뭔가요? 종이위에 써진 문서 아닌가요? 회사처럼 여러 경제활동을 할수 있는 법적인 존재 아닌가요?기본 성격: 종이 위에 작성된 문서가 맞음. 그

[모세최의 마음의 풍경]  소멸의 미학
[모세최의 마음의 풍경] 소멸의 미학

최 모세(고전 음악·인문학 교실) 한국의 50년이 넘은 지인 장 0 0로부터 받은 해 저물녘의 아름다운 영상에 환호하고 있다. 석양에 붉게 타오르는 노을의 장관은 참으로 경이롭다.

[신앙칼럼] 라함의 축복(Blessing of Raham, 마Matt. 5:7)

방유창 목사 혜존(몽고메리 사랑 한인교회)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마 5:7). “긍휼(Mercy)”을 의미하는 히브리어는 ‘엘레

[삶과 생각]  지난 11월5일 선거 결과
[삶과 생각] 지난 11월5일 선거 결과

지천(支泉) 권명오(수필가 / 칼럼니스트)  선거는 끝났다. 1년 이상 치열하게 선거전을 펼치며 당선을 위해 올인했던 대통령 후보와 지방자치 선출직 후보들이 더이상 열전을 할 일이

[시와 수필]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박경자(전 숙명여대 미주총동문회장) 저렇게 많은 별들 중에 별 하나가  나를 내려다 본다 이렇게 많은 사람 중에 그별 하나를 쳐다 본다 밤이 깊을 수록별은 밝음 속에 사라지고나는

[한자와 명언] 修 練 (수련)

*닦을 수(人-10, 5급) *익힐 련(糸-15, 6급) 학교 교육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바로 ‘가정 교육’인데, 이를 문제시 삼지 아니하는 사회적 풍조 때문에, 우리 사회가 병들

[내 마음의 시] 통나무집 소년
[내 마음의 시] 통나무집 소년

월우 장붕익(애틀랜타문학회 회원) 계절이 지나가는 숲에는햇빛을 받아금빛 바다를 이루고외로운 섬  통나무집에는소년의 작별인사가 메아리쳐 온다 총잡이 세인이소년의 집에서 악당들을  통

[전문가 칼럼] 보험, 그것이 알고 싶다-   메디케어 혜택의 신청
[전문가 칼럼] 보험, 그것이 알고 싶다- 메디케어 혜택의 신청

최선호 보험전문인 다른 나라에서도 그렇겠지만, 특히 미국에서는 65세 전후가 상당히 중요한 나이가 된다. 은퇴할 나이가 되기 때문이다. 직장에서 은퇴하는 경우에도 그렇지만, 자영업

[애틀랜타 칼럼] 가정 생활의 스트레스

이용희 목사 저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한 가지 잘 한 것이 있었는데 책을 잘 읽었습니다. 그래서 학교 선생님이 대표로 책을 읽으라고 많이 권유를 했습니다. 제가 목사가 된 후에 가장

이상무가 간다 yotube 채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