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말을 듣고 글로 써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많은 대화를 나누게 되지만 말을 듣고 글로 써달라는 제의를 받으면 쓰는 일을 마치 뉴스 취재원쯤으로 생각하는 것 같아 그 발상에 어리둥절해지기도 한다. 내가 할 수 있는 글쓰기는 보고 들은 지식이나 이야기를 쏟아붓는 것이 아니기에 어떻게 설명 드려야할찌 궁색하기 이를데없는 사세난처를 맛보게 된다. 남의 생각에 주파수를 맞추다보면 중요한 본질을 놓칠 수 있을 뿐 아니라 정작 글쓰는 이와 부탁한 이의 생각이 서로 상충되기도하고 종국엔 글쓰기를 통해 담고자 했던 의도가 빛을 바래는 일로 번지고 만다. 글쓰기를 거듭해 갈수록 삶쓰기라는 새삼스런 깨달음을 얻어가고 있는 터라 독서를 하듯 삶을 정독하며 읽어가는 과정없이는 상유양심으로는 글쓰기가 수박 겉핥기나 위선에 그칠 수 밖에 없음을 누누히 밝혀드리면서 아직은 대필의 경지가 아님을 아뢰듯 알려드리게되고 양지를 바라면서 사양을 하게되었다. 하기야 이야기를 잘 듣고 소재삼아 글로 풀어나갈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도 마냥 뜬금없는 소리로 치부될 수는 없는 터이다. 말을 글로 표현하고 문자가 인간생활을 지탱하게 해주는 도구로 전환된 세상인데 삶 속에서 빚어진 사연을 이야기로 전달하면 글쓰기로 탈바꿈 된다고 생각하는 것도 전혀 생뚱맞은 생각은 아닐것이라서 자칭 애독자라는 분에게 결례를 끼친 것 같다는 생각이 드문드문 일상의 맥을 끊곤 한다.
글쓰기의 근원을 찾는다면 천지창조의 비롯으로 인간에게 구음이 주어지고 말을 주고 받으며 관계성이 시작되고 문자가 필수 불가결하게 발생하면서 아름다움을 표현해야할 필요성의 갈망이 글쓰기의 시작이었을게다. 세포가 끊임없이 분열하여 인체를 이루어가고, 인체의 근원이 세포이듯 세포의 필요성이 인체를 이루기위한 목적인 것처럼 삶과 글쓰기 관계도 공간지각에 반응하는 반사신경처럼 역할개념의 적용으로 분석된다. 몸이 감기로 고생할 때 감기약에 취해 무중력 상태로 떠있는 느낌에 잠겨있을 때 글쓰기도 몸과 함께 통증이 생길 것 같은 엉뚱하기 그지 없는 비논리적인 망상스런 자책 마저도 글쓰기와 삶의 완전한 일치의 갈망 때문이라는 소회에 빠지기도 한다. 그토록 글쓰기의 책무감은 무겁고 의미론적 상생간색의 조화를 필요로 한다. 말하기를 업으로 삼는 이들도 강연이나 대화의 나눔을 통해 공간성을 감각으로 헤아려가며 조절하고 때론 고뇌하기도하며, 스스로를 제어해가며 다듬어가는 과정을 부단히 감당했을 것이다. 말을 다루는 일이나 글을 다루는 일의 동질감을 공감해가고 있음도 글쓰기의 작은 성숙에 포함서켜 주고 싶다.
글 쓰기에 붙들려있다거나 글감을 찾느라 일상의 갈피가 흐트러지면 어언간에 기도와 말씀 묵상의 시간들을 범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되고 망연자실 자책의 무릎을 꿇게 된다. 걸맞은 수식어나 적합한 단어를 찾아 사전과 맞대기를 하는 동안 등에 땀이 밸 무렵에서야 낮은 신음을 토하며 이토록 아름다운 말과 글을 주신 주제께 경건과 감사를 올려드리는 감격에 사로잡히기도 한다. 말씀을 붙들고 묵상하며 글쓰기의 기저(基底)를 말씀의 테두리에서 벗어나지 않으리라 다짐하게 된다. 피조물인 내 쪽에서 편할대로 받아들이는 독선적인 감성이나 정감 조차도 창조주의 은혜로 채우고 싶은 열망의 가책으로 쉼 없이 소명드릴 작정이다. 세밑에도 새해에도 글쓰기와 현달하는 삶의 진액이 진주처럼 영글기를 바램하며 푸근한 마음으로 송구영신을 지냈으면 좋겠다.
곧은 소신으로 글쓰기를 삶쓰기로 이끌어 간다면 삶의 결이 새로이 거듭날 수 밖에 없을 것이란 생각이 갈수록 깊어진다. 유모차를 밀듯 글쓰기를 밀고가는 팔에 조금씩 힘이 풀려나는 것을 맥연히 직감하게 되면서 가까운 시간에나 아니면 언젠가는 쓰기를 접어야할 것 같은 예감 탓에 글에 대한 애증이 부쩍 마음을 헤집고 다닌다. 글쓰기에 붙들린 시간과 공간은 꽃보다 향기롭고 오로라 같은 광망한 천지 속에 던져진 꿈같은 무한공간에 존재하고 있는 누림이 있기에 도파민 회로가 차단되는 중증환자마냥 감성의 정상적인 작동의 경지에 오르고 싶은 열망을 부추겨주는 에너지로 전환되기도 한다. 일상의 일상적인 느낌과 보고 들음을 통해 삶을 정독하며 누수없는 정갈하고 자유로운 표현을 위해 더 많이 사색에 머물며 폭을 넓혀가며 글쓰기의 버팀목으로 삼아가려 한다. 펜을 붙들 수 있는 그 날 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