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경(사랑의 어머니회 회장·아도니스 양로원 원장)
내 꿈은 바닷가에서 사는 것이었다. 서울 한 복판에서 태어나 물이라고는 한강 물밖에 보지 못한 내가 바다를 동경하게 된 것은, 중학생 때 부산 해운대로 아버지와 함께 피서를 다녀온 후였다. 모래톱에 서서 바라본 바다는 내가 사는 곳이 세상의 전부가 아니라는 걸 알려주었다. 시퍼런 물 고개를 타고 달려온 파도가 남기는 물꽃의 띠들, 바다의 거대한 위엄에 마음이 빨려들어가는 듯했다. 그 때 나는 바닷가에서 살겠노라 다짐했었다.
세상사가 바라는 대로 된다면 그보다 신나는 일이 어디 있으랴. 바닷가 언덕배기에 창 넓은 집을 짓고, 노을에 물든 바다를 바라보며 살 줄 알았다. 파도가 숨어든 모래밭을 산책하며 살려던 내 꿈은, 삶의 크고 작은 사건들로 거품처럼 사라졌다. 어쩌면 내 첫사랑이 바닷가 태생이었던 것도, 그의 고향바다에 더 큰 매력을 느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내가 한국을 떠나지 않았더라면, 바다가 훤히 보이는 섬마을의 의료원이나, 요양원을 일터로 정하여 바닷가 인생을 즐기며 살았을 것같다.
애틀랜타로 이사 온 지도 35년, 하필이면 바다라고는 코빼기도 볼 수 없는 도시를 택했을까. 온통 숲으로 둘러싸여 살아온 탓인 지 이상한 병이 생겼다. 계절이 바뀔라치면 주기적으로 증상이 생기니 계절병이라고 해야 할까, 환갑 지난 나이까지도 고치질 못했으니 고질병이라고 불러야 할까. 이 병은 ‘바다여행’이라는 처방을 재빨리 하지 않으면, 우울감에 빠질 정도다.
세상일에 눌린 무릎이 시큰거릴 때, 삶은 계란에 막힌 듯 가슴이 퍽퍽할 때, 서글픈 생각에 마음이 저릴 때, 나는 바다를 보러 간다. 덧칠된 내 삶의 껍질을 벗겨내고, 들숨과 날숨만으로도 체증을 풀어주는 곳, 물끄러미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뭉친 근육이 풀리는 곳, 마음을 평온하게 해주는 명상처럼 바다는 삶의 번 아웃을 풀어내는 나만의 인생 공식이다.
바다는 언제나 타임머신에 나를 태우고 광화문 네거리에서 해운대로, 동해 바닷가에서 남해의 작은 섬으로 나를 날려 보낸다. 어느 때는 까마득히 잊었던 얼굴들을 떠올리며 웃음 짓게 하고, 때로는 먹먹했던 가슴을 뚫어주는 마중물처럼, 탁해진 삶을 맑게 헹구어 내는 청량제처럼, 바다는 응고된 내 삶을 풀어 나긋한 생기를 불어넣어준다.
어김없이 찾아오는 고질병이 올해라고 다를까. 조금만 삐끗해도 빨간 글씨로 채워지는 가계부와 터진 그물 같은 일상을 겨우겨우 꿰맞춘 끝에 드디어 바다를 향해 내달리는 오늘, 하필이면 하늘 가득 매지구름이 비를 흩뿌리고 있다. 후드득 떨어지는 빗방울은 차창을 타고흐르고, 스피커에서는 허스키 음성의 가수가 ‘아이 엠 세일링 (I am sailing)’을 토하고 있다.
이제 삼십 분 정도만 더 달리면 대서양의 작은 섬에 도착한다. 그곳에서 나는 서걱거리던 마음을 풀어헤치고, 나만의 은밀한 고독을 즐기겠지. 손차양 아래로 끝 간 데 없이 뻗은 수평을 바라보면서, 달려오는 파도의 리듬에 맞추어 짜릿한 행복감에 빠지겠지. 자, 달리자. 파도치는 대서양의 섬을 향해서. 나의 고질병이여, 잘 가라.

오호, 인생 후반의 나이에 아직도 소녀의 감성을 간직하고 계시다니 부럽군요. 꿈은 꿈으로 간직하는게 가장 아름답습니다. 행여 섬으로 이주하지 마시고 좋은 글 많이 부탁 기대합니다.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