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배경
역사는 반복하는가.
역사적으로 중국은 시종일관 세계 최대의 경제대국이었다. 중국은 1700년대 후반까지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4분의 1을 차지하고, 1820년대에는 전세계 GDP의 3분의 1을 차지했다. 이는 산업혁명으로 유럽 최대 경제국이 된 영국의 6배, 신생 독립국이었던 미국의 20배에 달했다. 전세계 식민지를 개척하여 ‘해가 지지 않는 나라’영국 마저도 중국과의 교역에서 적자를 면치 못 하고 있었다. 중국은 도자기, 비단과 차 등을 영국에 수출한 반면 영국은 면직물 외에 중국에 팔 것이 없었다. 국제무역으로 인한 적자가 심해지자 영국은 인도에서 생산된 아편을 중국에 팔아 넘기는 방법을 찾아냈다. 밀매로 시작된 아편 밀수는 엄청난 수익을 창출했다.
반면, 중국에는 아편 중독자가 속출했고 그럴수록 영국의 아편 수출은 큰 폭으로 늘었다. 1839년 1000만 명의 중국인이 아편 중독자였다. 중국 곳곳에 아편굴이 창궐했다. 사회적 부작용이 심각했음은 물론, 경제적 악영향도 피할 수 없었다. 마침내 지속적인 무역적자로 대규모 중국의 은화가 대외로 유출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청나라 조정은 임칙서를 통하여 아편을 몰수하고 태워버리는 강경책을 썼다. 영국은 이를 빌미로 중국과의 전쟁을 개시했다. 이른 바 아편전쟁의 시작이었다. 청나라 군대는 최첨단의 무기 체계와 전술 체계를 갖춘 영국군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1, 2차에 걸친 아편전쟁으로 청나라가 종이호랑이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서구 열강은 앞을 다투어 중국을 마음껏 유린했다. 자칭 ‘세계의 중심’이라던 중국의 몰락이었다.
최근 제2기를 맞이 한 미국 트럼프 대통령이 캐나다와 멕시코에 25%의 관세를, 중국에 대하여는 10%의 관세를 매기면서 관세전쟁을 시작했다. 그는 대선 공약으로 세 나라가 불법이민과 마약 밀매에 대한 미국의 우려를 해결하지 않으면 수입세를 부과하겠다고 약속했었다. 그는 이면 협상을 통하여 캐나다와 멕시코로부터 국경에 군대를 배치하고 불법이민과 펜타닐 등 마약을 단속한다는 양보를 받아냈다. 트럼프는 이로써 미국을 펜타닐로부터 보호할 수 있은 길이 열렸다고 자찬했다. 펜타닐은 여러 화학물질을 조합한 오피오이드계 합성마약이다. 미국은 마약 중독으로 인한 사회적 부작용과 비용은 매우 심각한 상황이다. 매년 펜타닐 중독 혹은 오남용으로 사망하는 자가 수만명을 넘는 한편(2023년도 기준 펜타닐 사용으로 사망한 미국인이 7만4천 명이었다), 샌프란시스코 등의 일부 지역은 마약소굴처럼 변해 버려 한때 번화했던 상가가 사라졌다. 트럼프가 시작한 관세 전쟁은 미국의 천문학적 무역수지 적자가 주된 원인이지만 불법 마약의 밀수도 빼놓을 수 없는 것이다.
19세기 중국에서 벌어진 일이 21세기 초반 미국에서 유사하게 일어나고 있다는 기시감(旣視感)이 든다. 19세기 세계 최대 경제대국이던 청나라가 무역역조에 시달리고 마약으로 인한 사회부작용을 절감하고 있던 것처럼 현재 세계 최대 경제대국 미국이 무역적자로 시달리고 있고 마약으로 인한 사회적 비용을 무시할 수 없는 상태다. 현재의 중국은 당시의 영국 마냥 개방화 세계의 공장으로 불릴말큼 막강한 제조업을 바탕으로 미국을 턱밑까지 추격했다. 흥미롭게도 중국은 펜타닐의 주요원료의 전구체 화학물질의 주요공급원이다. 다소 겹치는 부분이 있긴 하지만 그렇다고 같은 역사가 반복될 것 같지는 않다. 미국은 최대의 군사강국인 동시에 여전히 과학과 기술 분야에서 최첨단의 혁신을 이루어내고 있는 국가다. 미국을 맹렬히 추적을 하고는 있지만 중국은 내부의 비민주적 의사결정과 사회 전반에 만연한 부정부패 그리고 경제의 활력 상실로 고전하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안심은 금물이다. 미국이 21세기 아편전쟁의 빌미를 제공하지 않기 위해서는 미국 사회 내의 도덕적·윤리적 기준을 강화하여 마약을 근절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제조업을 활성화하여 만성적인 무역적자를 해소하여야 한다. 그런 점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마약의 밀수를 차단하고 미국의 제조업 경쟁력 확보를 위해 관세라는 무기를 끄집어 든 것은 일정 부분 이해가 가는 일이다. MAGA를 외치는 보수주의자들이 트럼프 대통령을 통해 이루고자 하는 그림이 이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서 초조함과 조바심이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윤배경
대한변호사 협회 편집위원 및 칼럼리스트(2009-2019)
서울지방변호사회 편집위원 및 칼럼리스트(2007-2016),
법률신문 편집위원 및 및 칼럼리스트(2010-2019)
농민신문 칼럼리스트로(20180-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