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탠퍼드대 연구진 "평일 오후 골프 3년새 278% 증가"
"새벽이나 저녁에 업무 마치고 낮에는 개인시간 즐긴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파리만 날리던 시간대인 목요일 오후 3시부터 골프장이 직장인들로 북적이고, 미용실에선 비닐 헤어캡을 쓴 고객이 화상회의를 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세계적 유행을 계기로 원격근무가 대중화하면서 미국인들이 맞이한 새로운 일상의 모습이다.
16일 일간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미국 서비스 업계는 피트니스와 미용 등 분야를 중심으로 평일 오후 시간대 수요가 급증하는 이른바 '오후의 즐거움' 경제의 태동을 목도하고 있다.
원격근무 도입으로 근무 시간을 탄력적으로 조정할 수 있게 된 직장인들이 새벽이나 저녁에 업무를 처리하고 낮 시간대에는 개인 시간을 갖는 경우가 늘어나서다.
최근 스탠퍼드대학 연구진이 위치기반 정보분석 기업 인릭스와 공동으로 진행한 연구에선 평일 오후 골프장 이용이 코로나19 유행 이전보다 4배 가까이 증가한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미국 골프장 3천400여곳을 대상으로 이용현황을 조사해보니 2022년 8월 기준으로 수요일 오후 4시에 골프를 치는 사람의 수가 3년 전보다 278% 많았다는 것이다.
뉴저지에서 골프장을 운영하는 조엘 무어는 제약사 임원과 변호사 등 고객 상당수가 아침 일찍 일어나 오전 중 업무를 마치고 점심때부터 골프를 친다면서 "몰래 빠져나오는 게 아니다. 일을 모두 끝내지만 통상적인 시간대가 아닐 뿐"이라고 말했다.
이에 뉴욕의 일부 골프장은 비(非)프라임타임 이용요금을 20%가량 인상하기도 했다고 NYT는 전했다.
피트니스·미용 분야 플랫폼 기업인 클래스패스는 예약이 가장 많이 몰리는 시간대가 2019년 오후 6시에서 2022년 낮 12시로 바뀌었다고 밝혔다. 요가 프랜차이즈인 Y7에서도 평일 오전 10시 30분부터 오후 4시 사이 수업 신청이 급증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미국 7개 도시에서 10개 실내암벽등반장을 운영하는 업체 볼더링프로젝트는 화상회의 사이사이 암벽을 타거나 운동을 하는 원격근무 직장인들로 일부 시설이 주중 내내 꽉 차 있다고 전했다.
볼더링프로젝트의 워싱턴DC 지역 부총지배인인 타일러 키보키언은 인공암벽 바로 앞에서 변호사와 공무원들이 메모를 작성하는 모습도 볼 수 있다면서 "사람들이 여기를 자기 사무실로 삼았다"고 말했다.
뉴욕 브루클린의 한 미용실에서 일하는 헤어 스타일리스트 첼리언 피게로아(25)는 코로나19 유행 이전보다 평일이 훨씬 바빠졌다면서 특히 오후 4시 시간대는 항상 예약이 꽉 찬다고 전했다.
그는 노트북 컴퓨터로 업무를 보면서 머리 손질을 받거나 비닐 헤어캡을 쓴 채 화상회의를 하는 고객도 있다면서 "사람들이 앉아서 전문적이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재미있다"고 말했다.
미국에서는 코로나19 유행의 영향으로 3년 전부터 수백만명의 직장인이 원격근무를 하게 됐다. 스탠퍼드대학 집계에 따르면 올해 초 기준으로 미국 상근직 노동자의 4분의 1이상이 집에서 정보통신기기를 활용해 근무하고 있다. 원격근무와 회사 출근을 혼합한 '하이브리드 근무'를 하는 경우도 상당수다.
그러면서 오전 5시부터 회사일을 하거나, 저녁 늦게까지 업무를 보는 대신 낮에는 장보기나 반려견 산책, 운동 등 개인 시간을 갖는 이들이 늘었고, 전통적인 '오전 9시 출근, 오후 5시 퇴근' 공식이 더는 유효하지 않게 됐다는 것이 NYT의 설명이다.
이와 관련해 마이크로소프트는 오후 5시 이후 일하는 사람의 수가 과거보다 28% 늘었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내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이런 현상이 전통적으로 제조업에 비해 성장 속도가 느렸던 쇼핑, 엔터테인먼트, 미용 등 서비스업의 생산성을 높일 수 있을지 주목하고 있다.
이런 산업은 주 고객층이 낮 시간대 직장에 묶여 있다는 점 때문에 생산성에 한계가 있었는데, 원격근무 대중화로 근무시간이 탄력적으로 바뀌면서 그런 제약이 완화될 수 있다고 봐서다.
다만, 경영진 상당수는 이러한 변화에 우려감을 드러내고 있다.
전면 원격근무를 도입한 소프트웨어 기업 세일즈포스의 마르크 베니오프 최고경영자(CEO)는 올해 초 "팬데믹(전염병의 세계적 유행) 이전인 2020년 우리가 보였던 것과 같은 실적과 생산성을 내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아마존의 앤디 재시 CEO도 지난달 재택근무 축소를 지시하면서 "사람은 대면 상황에서 더 열심히 일한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