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꽂혔다, 미쳤다 스니커즈 수집

지역뉴스 | 기획·특집 | 2018-12-29 10:10:24

스니커헤드,스니커즈,수집,운동화

구양숙 부동산표정원 융자누가 스킨 케어

1980년대 에어조던 농구화로 시작

드라마 등 인기‘1994년 키즈’탄생

2000년대 스니커헤드 본격 등장

추억을 모으는 매니아들의 세계

 “신발이 지배하는 삶을 살아

운동화 통해 나를 드러내고 성찰”

여기 운동화 2,000켤레가 있다. 당신은 ‘2,000’이라는 숫자에 무엇을 떠올리는가. 운동화가게에 진열된 신발 개수? 창고 안 상자째 차곡차곡 쌓여있는 운동화? 아니면 운동화공장의 하루치 생산량?

실은 박우진(37)씨가 ‘17년간 사 모아 가지고 있는 운동화’ 숫자다. 50만이 넘는 회원을 거느린 국내 대표 운동화커뮤니티 ‘나이키매니아’ 운영자인 박씨는 나이키 아디다스 등 유명 스포츠브랜드에서 생산한 갖가지 신발을 수집하면서 ‘스니커헤드(Sneaker Head)’라 불린다.

단순히 운동화를 많이 사 모은다고 스니커헤드 반열에 오르는 건 아니다. 당장 집 안 가득 운동화를 쌓아두고 찍은 사진과 함께 ‘저는 스니커헤드입니다’라고 인터넷에 올려보라. 돌아오는 건 아마도 각종 야유와 비아냥, 혹은 욕설일 것이다.

박씨 말을 들어보자. “‘아끼면 똥 된다’는 신념이 있어요. 운동화를 사면 일단 신어보는 거죠. 가끔은 닳고닳은 운동화들과 지방 농장 창고에 보관하다가 쥐가 똥을 싸고 파먹고 해서 훼손된 운동화 70켤레 정도를 한데 모아 불 태워 버린 적도 있어요.” 신주단지 모셔놓듯, 새로 산 신발을 장식품처럼 고이 모셔두진 않는다는 얘기다. 그는 그런 자신을 두고 “신발이, 운동화가 지배하는 인생”이라고 말했다. 운동화가 지배하는 삶을 살고 있는 사람, 운동화에 미친 사람. 박씨가 생각하는 자신, 바로 스니커헤드다.

■스니커헤드의 시작 

스니커헤드는 ‘열성 운동화 수집가’쯤 되겠다. 그런데 뭔가 1% 부족하다. 껄렁대는 몸짓으로 영어 섞인 랩만 한다고 힙합이 아닌 것처럼 말이다. 어떤 행동이 있다면, 거기에는 당연히 그 나름의 문화가 덧붙여져야 한다.

컨버스화나 러닝화가 운동화시장을 지배하던 1980년대 중반, 나이키에서 획기적인 운동화를 하나 내놓게 되면서 스니커헤드의 문화는 비로소 시작된다. 그 운동화는 지금도 그들이 애지중지하는 ‘에어 조던(Air Jordan) 시리즈’다. NBA 시카고 불스 등에서 뛰던 마이클 조던이 실제 경기에서 신은 농구화이기도 하다.

조던이 누구인가, 전세계 농구팬을 사로잡으면서 ‘신’의 반열까지 오른 유일무이한 선수. 그의 인기와 함께 에어 조던은 순식간에 전세계 운동화시장을 지배했다. 특히 당시 가난했던 흑인 청소년들이 조던을 보며 꿈을 키웠고, 농구와 흑인 패션이 결합된 독특한 문화가 형성됐다.

다른 스포츠브랜드에서 제작한 시리즈도 인기가 많지만, 에어 조던 시리즈가 그들만의 문화 형성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걸 부정하는 이는 거의 없다. 마이클 조던과 에어 조던, 그리고 스니커헤드들의 얘기를 거슬러 가 보는 건, 스니커헤드문화 이해에 필수다.

■나이키, ‘루키’에게 도박을 걸다 

1984년. 스포츠브랜드 나이키에게 고민이 하나 있었다. 흑인 힙합문화에 이미 상당한 지분을 차지하고 있던 아디다스(래퍼와 협업)와 푸마(비보이들에게 인기)에 비해 나이키는 ‘백인들이 신는 러닝화’를 만드는 회사라는 이미지가 강했다.

심지어 당시 농구화시장은 컨버스라는 브랜드가 장악하고 있었다. 1917년 처음 세상에 나온 컨버스 ‘척 테일러’는 기능성 농구화의 조상(물론 아는 사람만 안다). 그전까지 농구화는 일반 신발에 타이어로 바닥을 대는 정도가 고작이라 무겁고 불편했다. 캔버스 천과 고무란 가벼운 소재를 사용하면서 혁신의 DNA를 심은 게 척 테일러 모델이었다. 실제로 1970, 80년대까지 전설적인 농구 선수 줄리어스 어빙은 물론, 대부분의 NBA 선수들은 척 테일러를 신고 경기장을 누볐다. 나이키로서는 흑인 힙합문화와 스포츠시장 점유율,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한 묘수가 필요했다.

이때 눈에 들어온 게 막 NBA에 진출한 마이클 조던이다. 신인 지명에서 전체 3순위를 차지했지만, 수퍼스타가 될지 아직은 물음표였던 루키(신인선수)에게 모험을 걸기로 한 것이다. ‘그를 위한 농구화를 만들어 보자.’ 대박 아니면 쪽박이었다.

하지만 시작부터 삐걱댔다. 공장에서 한창 신발을 찍어내는 도중 시즌이 시작되면서 정작 조던이 에어 조던의 첫 번째 작품을 신지 못한 채 경기를 뛰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조던은 임시방편으로 기존에 나온 하얀색 ‘에어쉽’ 모델에 시카고 불스의 팀 컬러 ‘검정, 빨강’을 매직으로 칠한 뒤 경기 나서야 했다.

NBA는 발끈했다. 당시 농구화에는 팀 컬러는 물론이고, 반드시 흰색이 보여야 했다. 신발 전체를 검정과 빨강으로 도배를 했으니, 명백한 규정 위반이라며 농구화 착용 금지와 함께 5,000달러의 벌금을 부과를 결정했다.

나이키는 반색했다. “NBA에서는 금지했지만 여러분은 괜찮다. 신어라”라며 오히려 이를 홍보에 이용했다. 조던이 매직으로 칠한 검정, 빨강, 흰색을 아예 에어 조단 1에 반영해 판매를 시작했다. 반응은 뜨거웠다. 별칭으로 ‘에어 조던 밴드(Banned·금지된)’로 불리며 신발이 불티나게 팔렸고, 조던도 ‘루키 오브 이어(Rookie of year·신인상)’를 수상했다.

■신이 된 조던과 함께 에어 조던을 사랑하다 

1987년 나온 에어 조던3은 시리즈 전체에 중요한 변곡점이 된다. ‘조던의 영혼의 동반자’라고 불린 수석디자이너 팅커 햇필드(Tinker Hatfield)가 새롭게 디자인을 맡기 시작했다.

유명한 일화도 있다. 팅커 햇필드가 조던에게 “마음껏 뛰어봐”라고 했더니, 조던이 스스로 ‘발레를 하듯’ 점프를 했고, 이 모습이 그 유명한 ‘점프맨’ 로고로 만들어진 것. 당시 나이키가 가지고 있던 쿠션 기술인 ‘에어(Air)’가 운동화 뒤축에 보이도록 들어가면서 진정한 에어 조던으로 탄생한 것도 이때부터다.

조던도 선수로서 절정기에 이른다. 1987-1988시즌 덩크 콘테스트에서 조던은 에어 조던3를 신고 자유투 라인에서 날아올라 림에 공을 꽂아 넣었다.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덩크슛이었다. 조던은 이 시즌 경기당 평균 37.7점 득점을 올리면서 마침내 ‘농구의 신’이라는 반열에 오르게 된다.

호재는 계속됐다. 당시 최고의 힙합그룹 ‘NWA’가 에어 조던3를 신고 나타난 것. 나이키가 그토록 바라던 흑인 문화에 발을 들이기 시작했다는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스니커헤드들은 지금도 에어 조던3를 “에어 조던의 역사를 바꾸고 에어 조던 문화를 만들어낸 운동화”라고 극찬하고 있다.

■“조던 제발 돌아와”…헌정용 신발 등장 

에어 조던 시리즈는 어느새 매년 나와야 하는 운동화가 됐다. 조던이 새로운 시리즈 신발을 신고 나오면 수많은 팬들이 매장으로 몰려갔다.

그런데 에어 조던9에서 위기가 닥쳤다. 나이키는 에어 조던9에 지구본도 그려 넣고 밑창에는 ‘세계’라는 글자를 한자(世界)로, ‘스포츠’라는 글자를 가타카나(スポㅡツ)로 새겨 넣었다. 전 세계 시장으로 진출하겠다는 선언이었다. 예상치 못한 변수가 터지기 전까지 성공을 의심하는 이는 없었다.

조던이 1993년 10월 6일, 돌연 은퇴를 선언했다. 아버지가 강도에게 피살된 게 가장 큰 이유였다. 에어 조던9은 발매는 됐지만, 코트에선 볼 수 없었다.

나이키는 고민에 빠졌다. 전략 수정이 불가피했다. 시리즈를 멈출 수도 없었다. 그렇게 고민 끝에 등장한 게 에어 조던 10이다. ‘은퇴한 마이클 조던에 헌정하기 위한 농구화.‘ 조던이 신을 필요가 없던 탓에 농구화로서 기능은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대신 밑창에 조던 선수 시절 주요 이력을 글씨로 새겨 넣었다.

나이키도 생각하지 못한 일이 또 벌어졌다. 조던을 놓아줄 생각이 없었던 동료 선수들이 신발을 하나 둘씩 신고 코트에 등장한 것. 조던의 ‘플레이 조력자’이자 ‘영혼의 단짝’이던 스카티 피펜(Scottie Pippen)도 그 중 하나다. 그는 농구화로서는 낙제점인 에어 조던 10을 신고 경기가 끝난 뒤에는 신발을 카메라에 보였다. 카메라를 향해서는 손가락으로 신발을 가리키면서 ‘조던은 곧 복귀할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 세계에 알렸다. 농구팬의 마음이 피펜의 행동에 마구 요동쳤다.

실제로 조던은 1995년 시카고 불스로 돌아왔다. 그리고 또 하나의 사건을 일으킨다. 올랜도 매직과의 플레이오프 2차전, 경기장에 나온 조던은 등번호 23번이 찍힌 유니폼을 입고 있었다. 23번은 이미 영구결번으로 정해져 더 이상 사용할 수 없는 번호였다.

그리고 그가 신고 있던 신발, 나이키에서 새롭게 만든 ‘에어 조던 11’도 문제였다. 여전히 팀 컬러가 포함돼야 한다는 규정을 보란 듯이 어긴 흰색과 검은색만 있는 신발. 그렇게 흰색, 검은색 조합(콩코드)의 에어 조던 11은 전 세계 농구팬에 ‘조던의 복귀’를 알리는 상징이 됐다.

■You made them Iconic! 

스니커헤드에게 관심을 받는 시리즈가 에어 조던만은 아니다. 나이키의 ‘에어 맥스(Air Max)’와 아디다스의 ‘이지부스트(Yeezy Boost)’가 대표적. 에어는 특수 투명고무를 적정한 공기압으로 채운 ‘투명 특수고무’로 밑창을 채워 넣은 나이키의 고유 기술. 스니커헤드들은 에어 맥스를 “에어 기술이 고스란히 반영된 나이키의 역사와 심장”이라고 칭한다.

이지부스트는 아디다스가 나이키 에어에 맞서 만든 시리즈다. 새로운 밑창 소재인 ‘부스트’를 기반으로 만들어졌는데, 현존하는 최고의 힙합 아티스트 ‘칸예 웨스트(Kanye West)’가 만들어낸 작품으로 주목을 받고 있다. 그는 아디다스로 넘어가기 전 나이키와 주로 협업을 했었다.

스니커헤드들이 빠져있는 운동화에는 각각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스니커헤드들은 이야기에 열광해 운동화를 사 모으고, 더 발전된 또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내곤 한다.

에어 조던 11이 담긴 박스에는 이런 문구가 써져 있다. ‘Tinker made them Shine, Mike made them Fly, You made them Iconic.’ Tinker(에어 조던 디자이너)가 에어 조던을 빛나게 하고, Mike(마이클 조던)가 에어 조던을 날게 하고, 당신(구매자)이 에어 조던을 우상으로 만든다는 뜻. 이 문장만큼 스니커헤드의 마음을 뒤흔드는 것은 아마 없을 것이다. 

<이상무 기자>

꽂혔다, 미쳤다 스니커즈 수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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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조던의 점프 모습을 형상화한 에어 조던 시리즈의 상징‘점프맨’ 로고. 

꽂혔다, 미쳤다 스니커즈 수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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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어 조던 10 밑창 모습. 나이키가 마이클 조던이 은퇴 후 복귀 하지 않을 거라 예상하고 조던의 이력을 밑창에 새겨 넣었다.           <나이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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