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시민들 대부분이 직장에서의 긴 하루를 보내고 잠자리에 들 시간인 자정 무렵이면 이때부터 활기를 띄는 곳이 있다. 프랑스 수도에서 남쪽으로 5마일 떨어진 룅지스(Rungis)에 있는 거대한 식품 도매시장이다. 면적이 모나코보다 조금 더 크다.
길이가 축구장만한 냉장 홀 안에서 파스칼 뒤페이스는 은빛 물고기에서 얼음 조각들을 털어내며 생선의 눈을 가리킨다. 완벽하게 맑다. 싱싱하다는 증거이다.
“아름답지 않아요?” 하고 말하는 그의 입에서 입김이 뿜어져 나온다.
“오늘 아침 브리타니에서 어부가 작은 배로 잡은 겁니다.” 파리의 호사스런 식당에서 온 구매자가 생선을 살펴보고는 가격을 흥정하고 부유한 손님들이 몰려들 점심시간에 맞춰 배달해달라고 못을 박는다.
인근의 30개가 넘는 육류, 과일, 채소, 꽃 도매 파빌리언들에서 이른 새벽 내내 이루어지는 거래는 수천건.
그리고 파리의 스카이라인에 해가 떠오를 때쯤이면 시장 근로자들이 삼삼오오 동네 단골 바인 르 생 위베르 카페에서 마신 커피가 거의 3,000잔에 이른다.
“근로계층들이 모이는 곳이지요.”
정육도매기업 직원인 파스칼 롤랑(56)이 밤새 고기 덩어리를 자른 후 새벽 5시30분 피로 얼룩진 앞치마를 두른 채 화이트 와인을 홀짝 거리며 마신다.
“여기에서는 열심히 일하지 않는 사람이 없어요.”
유럽에서 가장 숨겨진 곳 중의 하나인 룅지스의 전형적인 아침 풍경이다. 세계 최대의 식품도매 시장이다.
573에이커에 걸쳐 펼쳐진 광활한 시장에서는 1만3,000명의 직원들이 일을 하고, 식당이 19개, 은행, 우체국 그리고 자체 경찰까지 갖춰져 있다. 룅지스는 도시 안의 도시이다. 유럽 대륙과 세계를 잇는 통로이자 수백만 톤의 싱싱한 식재료들이 들어오고 나가는 곳이다.
요리전문가들은 대단히 아끼는 시장이지만 파리를 찾는 대부분의 방문객에게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곳이다. 하지만 그 전신인 레잘르(Les Halles)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들어서 알고 있다. 800년의 역사 동안 파리시민들을 먹인 시끌벅적하고 쥐가 들끓던 시장으로 에밀 졸라의 소설 ‘파리의 배’에도 나온다.
시장이 비좁아 지자 샤를르 드 골 당시 대통령은 파리 중심부의 시장을 교외지역인 룅지스로 이전하도록 명령했다.
1969년의 대대적 이전은 경찰이 동원되며 3일에 걸쳐 양배추 하나까지 모두 옮겨갔다. 당시 프랑스는 이 작전을 노르망디 상륙작전에 비교했다.
신시장 룅지스는 초현대식 시장이다. 연 매출이 90억 유로(대략 104억 달러)에 달한다. 시장 내 파빌리언은 4개 주요 식품 그룹으로 나뉘고, 쓰레기 재처리 시스템, 글로벌 단위의 전자 상거래 시스템을 갖추고 대단히 효율적으로 운영되고 있어서 모스크바, 아부다비 등 세계의 수도들이 룅지스를 모델로 자국의 도매시장들을 새로 만들고 있다.
그러나 아마존, 구글 등 온라인 거대 기업들과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시장을 운영하는 공기업인 셈마리는 온라인 거래를 적극 권하고 있다.
“우리가 생선장사, 야채상, 정육점 주인들에게 디지털로 옮겨 가라고 압력을 넣지 않으면 우리는 모두 사라지고 맙니다”라고 셈마리의 스테판 라야니 회장은 말한다.
그러나 사이버장사로 방향을 바꾸자는 아이디어가 시장의 터줏대감들에게는 묘한 거부감이 없지 않다. 대부분 2세대, 3세대 상인들이다. 레잘르 구시장에서 그들의 아버지나 할아버지들은 구매자와 고개를 맞대고 흥정을 하고 귀 뒤에 꽂은 펜으로 주문서를 작성하곤 했다.
차곡차곡 진열된 생선들을 가리키며 뒤페이스는 말한다.
“이걸 컴퓨터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너무 순진하지요. 사람들은 생선을 보고, 만져보며 싱싱한지 확인을 해야 합니다. 컴퓨터 스크린으로 할 수는 없습니다.”
그의 생선 품질을 잘 아는 구매자들이 전화로 주문하는 것을 받는 것이 그에게는 유일한 원거리 거래이다.
그러나 온라인 장사가 이문을 많이 남기리라는 전망에 많은 상인들은 마음이 끌리는 것 또한 사실이다.
새벽 5시, 시장에서 제일 큰 청과 도매상인 피에르 데스메트르의 세일즈 담당 직원 10여명은 거대한 청과 홀 안에서 컴퓨터로 온라인 주문들을 지켜보고 있다.
이 기업의 제롬 데스케트르 사장은 4세대 청과상이다. 그의 할아버지는 시장에서 팔 사과를 모으느라 나무 손수레를 끌고 농장들을 돌아다녔다고 그는 말한다.
오늘날 그는 온라인으로 브라질에서 체리를 사들이고 남부 프랑스에서 기차로 배송된 복숭아를 받는다.
온라인 접근법에 회의적인 사람들 중에는 파리에서 꽃가게를 하는 오로르 부싹(30)도 있다. 온라인으로 주문했다가 시든 꽃들을 받고 난후 그는 다시 룅지스로 가서 튤립이나 장미 등 꽃들을 직접 점검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장인들이에요. 어떤 건지 알고 사야지요.”
아울러 그는 홀의 오랜 단골가게들을 손짓하며 “가장 중요한 것은 여기 이 사람들과의 관계”라고 덧붙인다.
고객과 상인들, 그리고 근로자들 간의 끈끈한 유대관계이다. 엄청난 규모에도 불구, 시장은 시골마을 같아서 음식과 일, 자부심이 사람들을 하나로 묶어준다.
직원 40명의 정육 도매상인 유로디스 비앙드의 프란시스 포쉐르(58) 사장은 가난한 집에서 자랐다. 그래서 직원들도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을 뽑는다. 대부분이 파리 교외의 빈민구역 출신들이다. 실업률이 40%에 달하는 곳이다. “정말 열심히 일하려고 든다면 일자리는 있습니다.”
그는 직업들에게 최저임금의 거의 두 배에 달하는 임금을 지급하고 장사 수완도 전수해 준다.
82세의 앙퇀 다고스티노는 12살 때부터 시장 일을 시작했다. 구 시장 레잘르에서 손수레로 청과를 나르는 일이었다. 시장의 유명인사인 그는 과거 냉장시설이 없어서 야채나 과일을 빨리 팔아야 했던 때를 회고한다.
어려서부터 일하느라 학교에 다니지 못한 그는 이제 룅지스에서 포도주 도매사업을 하는 아들의 일을 돕고 있다. 전자 상거래에 대해 그는 여전히 부정적이다.
“거기서는 인사도 감사하다는 말도 없지요. 사람들은 사람으로 대접받고 싶어합니다. 그런 곳이 바로 시장입니다.”
<뉴욕타임스 - 본보 특약>
<Andrea Mantovani - 뉴욕타임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