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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세최의 마음의 풍경] 아버지의 웃음

지역뉴스 | 외부 칼럼 | 2022-10-18 17:09:18

모세최의 마음의 풍경, 최 모세(애틀랜타 문학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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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모세(애틀랜타 문학회 회원)

 

아버지 생전의 맑은 웃음을 떠올린다. 아버지의 용모는 동시대를 살았던 미국의 뮤지컬 배우 “빙 크로스비”를 빼닮았다. 깊고 부드러운 눈빛과 우뚝 선 콧날에 넓은 이마와 올백으로 자연스럽게 쓸어 넘긴 머리에 활짝 웃을 때 드러나는 치아는 가지런했다. “빙 크로스비”와 거의 판박이에 가까운 서구형이었다. 노래하는 음성도 바리톤 음색이었다. 노래 레퍼토리는 중저음의 국내 가수 “현인” 선생님의 곡을 즐겨 노래하셨지만. 완연히 다른 분위기의 깊고 그윽한 음성을 지니셨다. 성량의 풍부함과 가창력이 뛰어나셨다. 고음과 저음을 넘나드는 절묘한 음악적 기교는 유연하고 짙은 호소력이 있었다. 섬세한 감정 표현에서 온화함과 애절한 절정의 울림은 탁월함을 이루는 아주 자연스러운 느낌이었다. 음악을 전공하시지 않았지만, 클래식 바이올린 연주도 거의 수준급이셨다.

나는 한국 전쟁 이전 입학 무렵부터 아버지에게서 바이올린 연주를 배우고 있었다. 아버지께서 즐겨 연주하셨던 곡은 “베토벤”의 기악곡인 실내악 연주의 <미뉴엣> 이었다. 사랑의 따뜻한 감정이 넘쳐나는 밝고 행복한 분위기의 부드러운 궁정 무곡이다. 나의 클래식 음악의 입문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진 계기가 이때가 아닌가 싶다.

1950년 6.25 전쟁으로 대구로 피난 갔었다. 피난 생활 중 생계가 어려워 아버지는 분신처럼 여겼던 바이올린을 팔고 귀가하셨다. 허탈해하시는 아버지를 바라보면서 이제는 바이올린을 배울 수 없다는 허전한 마음에 강가에 나가 강물 위로 애끛은 돌팔매 짓만 해댔었다.

이 다음에 내가 성인이 되면 아버지에게 바이올린을 사드려야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성인이 되어 아버지에게 바이올린을 사드릴 형편이 되었을 때는 아버지는 세상에 계시지 않았다.

지금 나의 클래식 Record, CD 소장 품목에서 바이올린 연주가 단연 주종을 이루고 있다. 바이올린의 음색이 가장 사람의 음성에 가깝다고 한다. 나는 바이올린 연주 감상을 통해 아버지 옛 모습과 생전의 음성을 듣고 있다. 

많은 세월이 흘렀지만, 지금도 유년 시절의 감미로운 추억이 생생하게 살아나고 있다. 아버지의 성품은 언제나 과묵하셨고 선한 의지로 살아가시는 분이셨다. 부부 관계, 대인 관계에서나 형제간에서도 자신의 의중을 드러내시지 않는 분이시며 전혀 말씀 없이 빙그레 웃고만 계실 뿐이다. 자신을 내세우거나 본인의 생각이나 불필요한 말을 하는 적이 없어 평생을 형제간이나 누구와도 다툼이 없으셨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불편한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웃음으로 받아들이는 맑으신 분이시었다. 주위에서는 누구나 ‘법 없이도 사실 분’이라는 말을 많이 듣던 분이셨다. 아버지께서는 먹을 인정이 많아 군대에서 휴가 나오면 가난한 형편에도 중구 오장동 함흥냉면 전문점, 기사 실비식당, 광림동 입구 닭곰탕 전문식당에서 동생들과 함께 식사했던 추억도 잊을 수가 없다.

육군 입대 시 모 사단에서 수색역까지 걸어서 기차에 오르기까지 아버지께서도 부모님들과 함께 대열을 따라오셨다. 군 생활 중에 강원도에서 월남 파병 훈련을 마치고 출국을 앞둔 어느 날 아버지께서는 고종 형님과 함께 면회를 오셨다. 전쟁터로 떠나는 큰아들을 보고자 찾아오신 아버지의 사랑의 마음에 난 그만 울음을 터트렸다. 아버지는 그때도 아무 말씀 않고 애절한 눈빛으로 나를 안고 등을 토닥거리실 뿐이었다.

제대 후 늦은 나이에 어렵게 결혼하게 되어 아내를 선보이던 찻집에서 아버지는 아내를 보는 순간 마음에 드셨는지 그만 감격하여 혈압이 올라 쓰러지셨다. 아버지를 등에 업고 급히 병원으로 달려가 다행히 생명에는 지장이 없어 오랫동안 사시다가 결국은 뇌출혈로 쓰러져 삶을 달리하셨다. 아버지는 언제나 가족과 남의 형편을 살피셨고 선함과 성실한 삶으로 최선을 다한 생애였다. 아버지의 과묵한 성품을 닮고자 삶에서 올바로 적용하려고 해도 아버지의 발밑에도 가지 못하는 자신의 한계를 절감한다. ‘그릇이 다름’을 느낀다.

아버지가 재혼 후 나는 할머니와 오랫동안 따로 살았었다. 할머니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을 때 가장이셨던 아버지께서는 거의 식음을 전폐하셨던 속마음이 깊으셨던 분이셨다. 장남으로서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는 고통스러운 참회의 마음이라 생각된다. 그 시대에 실향민 삶에서 재혼했던 아버지는 모친에게 효를 실천하기가 어려웠던 상황이었다. 그때는 아버지를 진정으로 이해 못 했지만, 내가 부모가 되어보니 아버지 마음을 충분히 이해할 수가 있었다.

어떻게 보면 가슴 아픈 가족사이지만 나도 미국에서 태어난 손자들이 성장해가는 과정을 사랑의 마음으로 바라볼 수 있어 행복하고 감사하다. 지금 이민자의 삶에서, 아버지보다 훨씬 많은 날을 살아가고 있는 내가 아버지께서 항상 환하게 웃으시던 정다운 모습을 떠올리며 그리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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