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애틀랜타
첫광고
엘리트 학원
이규 레스토랑

[행복한 아침] 서로 함께 더불어

지역뉴스 | 외부 칼럼 | 2021-12-23 08:40:23

행복한 아침, 김정자(시인·수필가)

구양숙 부동산표정원 융자누가 스킨 케어

김정자(시인·수필가)

 

오래 전에 가까이 지내셨던 분을 한인마트에서 우연히 기적처럼 만나게 되었다. 긴 세월 만나뵙지 못했던 동안 큰 수술을 하시어 이젠 완치되셨다고는 하셨지만 어찌 눈 빛은 나목이 즐비한 황량한 들판처럼 스산함이 맴돌았다. 

서른 다섯해 전에 처음 그 분을 만나게 되었는데 어찌 그리 한 번도 오가며 스치는 일 조차도 없었을까 어이없는 마음인데 ‘큰 수술을 한 후 바깥 출입이 불편해지고 자연스레 외출을 자제하다보니 그렇게 되었나 보다’고 하시면서 오히려 민망해 하시었다. 고통, 절망, 상처와 시련이 더 낮은 모습으로, 다감하고 친밀한 모습으로 이끌어 주었나보다. 피곤한 기색이 역력하셔서 다음을 약속하자고 했더니 ‘또 언제 쯤에나 만나게 될까요’ 헤어짐의 짧은 멘트가 큰 동굴 속에서 울려오는 음울한 메아리 같이 며칠을 지났는데도 귓전을 맴돈다. 새해가 들어서기 전에 전해주고 싶었던 마음을 전해야겠다. 서로, 함께, 더불으며.

새해에는 어색하고 조금은 남새스러워도 ‘사랑한다’고 알려주고 눈물이 고이면 감추지 말아야지, 마음을 다 보여주지 못한 안타까움도 줄여가면서 후회 없는 추억을 만들어 가야지. 눈만 감아도 보고싶은 사람, 생각만 해도 가슴이 따뜻해지는 분들은 신물이 날 정도로 열심히 만나야겠다. 관계를 저울질 하시려는 분들은 만나도 그만 안만나도 그만인 라인으로 모셔두기로 했던 것도 이 또한 허접한 부끄러움이 아닐까싶다. 밝은 새해가 다가오고 있는데.

신축년 마지막 저녁에 지는 해와 임인년 새해 아침에 떠오른 해가 묵은해와 새해로 구분지어 주기는 하지만 새해라해서 유난스럽지는 않으려 한다. 내일도 어제와 같은 오늘일 것이니까. 평범한 일상을 지향하려 한다. 시작은 비장했지만 마무리 무렵이면 치열했던 만큼 아쉬움도 밀려들었으니까. 하루들이 한뼘 차이도 아닌것을. 

새해엔 어떤 인연의 끈 하나가 보태지려나. 어떤 추억의 하루가 기억으로 남겨지려나. 어떤 목표가 마침표를 찍어 주려나. 견인해내지못했던 날들에게 후한 인내의 상을 안겨주는 일에도 서로, 함께, 더불으며 일구어 가고 싶다.

세상과의 싸움에서 빚진 자로 자처하며 스스로 실격당한 자로 홀로 세상과 맞서려는 이단아가  되어 자신과 화해하지 못하는 분들을 뵙게되면 딱하고 안쓰러움이 인다. 필자처럼 그리 착하지 않아도 된다고, 빈틈 없는 최고의 사람이 되지 않아도 된다고, 스스로 만든 기준치에 도달하지 못해 지쳐버리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자고, 세상 가운데서 하나의 개체라는 이유 한가지 만으로도 존재가치가 충분하다고. 나 또한 완벽을 추구하고 최상의 것을 모색하고 세상 기준치를 향해 허덕이느라 시간을 낭비해왔던 푼수 경험이 있었지만, 내가 나를 사랑하고 보듬어 주기로 마음을 다지고부터 타인의 상처가 더 커 보이고, 그들의 신음이 제대로 들리더라는 것이다. 

올 한 해도 내 모습 이대로를 간직하는 일만으로도 벅찼던 한 해였으니까. 세상을 아름답게 가꾸어 가려는 아름다운 사람들이 있기에 힘들고 어려워도 아직은 살맛나는 세상이라 믿고 싶다. 해서 세상을 혼자 사는 것이 아니라 했나보다. 더불어 살아야 살맛나는 세상을 연출하기 쉬워질테니까. 울타리 없는 조화로운 세상을 꿈꾸다가 차라리 두 눈을 꼭 감고 세상을 마주해야 할 때도 있다. 쓸쓸해서 혼자가 싫어 사랑을 나누고, 사람을 만나야하는 것이 인생이라서 사람을 바라보기만 해도 눈물이 날 때가 있다.

모든 인생이 지닌 공통점 중에 후회 없는 생은 없다고 했기에 새롭게 단장한 달력이 펼쳐낼 우연이며 기발한 행운이나 기적보다 지상에서 남은 날 동안 건강한 하루들이 열려지기를 바램하는 마음이 된다. 서로 추구하는 가치관과 가는 길이 다르기에 주관적 만족감이 행복 잣대로 적용되고 있기에. 

행복해져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이미 내 안에 있는 행복이 오히려 숨막혀 하지는 않았을까. 만일 행복이 깃대에 높이 달려 펄럭이고 있다면 누구랄  것 없이 깃대로 기어올라갈 것이다. 행복이란 평범한 삶 속에서 예나 지금이나 잠재적으로 존재하고 있었다. 오늘도 행복을 찾아 힘든 삽질을 계속하는 분들이시여 행복은 짧고 하루는 늘상 길었기에 행복을 느끼는 법을 배워야 할 일만 남아있네요.

새해는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가장 아름다운 삶의 자태로 받아들이려 한다. 세상은 서로,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곳. 너와 내가 만나서 가족 울타리를 만들고 함께 모여 살아간다. 

할배가 되고 할멈이되어 함께 사는 여기가 가장 아름답고 숭고한 띠를 두른 성역이다. 아름다운 세상, 살맛나는 세상은 서로,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이다. 밤 기차가 먼 기적소리를 흘리는 깊은 밤이다. 새해가 기적소리처럼 은은하게 다가오고 있다.

 

댓글 0

의견쓰기::상업광고,인신공격,비방,욕설,음담패설등의 코멘트는 예고없이 삭제될수 있습니다. (0/100자를 넘길 수 없습니다.)

[행복한 아침] 세월 속에서 만난 새해

김정자(시인·수필가)     지난 해 연말과 새해 연시를 기해 다사다난한 일들로 얼룩졌다. 미국 39대 대통령을 역임하신 지미 카터 전 대통령께서 12월 29일 향연 100세로 별

[모세최의 마음의 풍경] 새로움의 초대

최 모세(고전 음악·인문학 교실) 새해의 밝은 햇살이 가득한 아침이다. 연휴에 분주하게 지내느라 새로움을 마주하는 희망찬 의지를 다질 새도 없었다. 새해부터 경건해야 할 삶의 질서

[신앙칼럼] 명품인생, 명품신앙(Luxury Life, Luxury Faith, 로마서Romans 12:2)

방유창 목사 혜존(몽고메리 사랑 한인교회) 지금 조금 힘쓰면 영혼이 큰 평화와 영원한 기쁨을 얻을 것이라고 확신하는 인생을 <명품인생(Luxury Life)>이라 과감하

[리 혹스테이더 칼럼] 벼랑 끝에 선 유럽
[리 혹스테이더 칼럼] 벼랑 끝에 선 유럽

유럽은 산적한 위협의 한 복판에서 새해를 맞이했다. 정치적 측면에서 보면 기존의 전통적인 정당들이 유권자들의 들끓는 분노 속에 침몰했다. 경제는 둔화세를 보이거나 기껏해야 답보상태

[오늘과 내일] 새해를 맞이하는 마음가짐

작년 12월 마지막 남은 한 장의 달력을 떼면서 지난 1년 동안의 일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가는 순간에 우리는 질문해 본다. 지난 한해 동안 행복하셨습니까? 후회되고 아쉬웠던 일은 없

[정숙희의 시선] 타마라 드 렘피카 @ 드영 뮤지엄
[정숙희의 시선] 타마라 드 렘피카 @ 드영 뮤지엄

굉장히 낯선 이름의 이 화가는 100년 전 유럽과 미국의 화단을 매혹했던 경이로운 여성이다. 시대를 앞서간 아티스트이자 파격의 아이콘이며 사교계의 총아이기도 했던 그녀는 남자와 여

[에세이] 묵사발의 맛

꽃동네에서 먹은 묵사발은 생각만으로도 입안에 군침이 돈다. 처음 꽃동네라는 이름을 들었을 때 수녀님들이 꽃을 많이 가꾸며 가는 동네일 것이라는 상상을 했었다. 사막의 오아시스라는

[시와 수필] 하늘 아래 사람임이 부끄러운 시대여

박경자(전 숙명여대 미주총동문회장)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한 점 부끄럼 없기를잎새에 이는 바람에도나는 괴로워했다.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그리고 나한

[삶과 생각] 천태만상 만물상
[삶과 생각] 천태만상 만물상

지천(支泉) 권명오(수필가 / 칼럼니스트)  인류사회와 인생사는 천태만상 총 천연색이다. 크고 작은 모양과 색깔 등 각기 다른 특성이 수없이 많고 또 장단점을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전문가 칼럼] 보험, 그것이 알고 싶다- 메디케어 혜택의 A B C D
[전문가 칼럼] 보험, 그것이 알고 싶다- 메디케어 혜택의 A B C D

최선호 보험전문인 예전엔 어른이 어린아이를 보고 한글을 깨쳤는가를 물을 때 “가나다를 아냐”고 묻곤 했었다. ‘가나다’가 한글 알파벳의 대표 격이 되는 것이다. 영어에서도 마찬가지

이상무가 간다 yotube 채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