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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아침] 흔적 수취인

지역뉴스 | 외부 칼럼 | 2021-12-10 09:00:30

행복한 아침, 김정자(시인·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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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자(시인·수필가)

 

한해가 여울지는 흐름 사이로 발걸음들이 빨라지고 있다. 이미 떠나버린  날들은 어쩔 수 없지만 마지막 남은 날들이라도 보람차게 최선을 다하려는 추스름의 몸짓이리라. 새로운 시간을 받아들여야 하는 과정 중에 더러는 지워버리고 싶은 흔적들도 섞여있기 마련이라 덧없음과 새로운 다짐이 교차되면서 남겨지는 흔적들까지 미화시켜야할 것 같은 송구영신 절기가 다가왔다. 흔적으로 남겨질 자취를 염두에 두다보면 언짢거나 궂은 흔적이라 남기고 싶지 않은 욕심까지 어수선하게 부산을 떨게 된다. 팬데믹과의 길고 긴 동행이 이어져 오는 동안 용단을 내고 결심했던 것들이 손가락 사이로 모래알 빠져나가듯 헛수고로 물거품이 된 사연들부터, 헛고생만 쏟아붓고 수포로 돌아가버린 일들이며, 허사로 밀려나버린 일들이 마지막 기회다 싶은지 수면 위로 떠오르기 시작한다. 만상은 다 흔적을 남긴다. 바람은 느낌으로 만져지고 흐름은 보이지 않지만 얄궂은 황폐의 흔적을 남기기도 한다. 필기도구는 종이에 흔적을 남기고, 짐승은 가죽으로 흔적을 남기고, 사람은 살아온 향기로 흔적을 남김이라서 부끄럽지않은 흔적 남기기에 주목하고 집중하게 된다. 쏜살같이 흘러가는 세월에 실려가며 어쩔 수 없이 지문처럼 남겨진 흔적조차도 시간이란 프리즘을 통해 삶을 숙고해온 자국이요 보람의 종적으로 수렴해야 할 일이다. 세월을 거스르지 못해 아슴한 참회의 기도 같은 흔적을 남겨가며 지금에 당도한 것이다.

물은 지층에 물길의 흐름을 남기고 인류 생존을 위해 생성을 쉬지 않으며 여전히 변함없이 태고로부터 흘러온 흔적을 이어갈 것이다. 지도상의 지형에서 흔적없이 사라져버린 마을과 섬이며 강줄기와 숲도 부지기수려니와 사막 위에 지어진 도시는 사막의 흔적을 지워내고 사람 사는 흔적을 남기게 될 것이다. 파도는 하얀 거품을 일구며 잊고 싶은 흔적들을 모래톱에 묻어두고 돌아설 때면 파도의 흔적을 기억하라며 소리지르며 달려가지만 흔적이 종내 남겨지지 않아 태고부터 영원에 이르기까지 쉼 없이 출렁이는 몸부림을 멈출 수 없나보다. 시간이라는 물결로하여 삶의 신비와 삶의 향기가 흔적으로 남겨지며 문화로 예술로 승화되는 것이라 했다. 흔적을 남길 수 없는 감성 움직임이 어쩌면 그 부피가 더할 수도 있을 것이라서 절절한 그리움이나 기다림의 흔적들은 가슴에 묻어둔 바람 같아서 세월에 맡기다 보면 세상을 걸어갈 힘이 보태지기도 한다. 세월을 다시금 정비할 수만 있다면 맑고 순전한 흔적만을 남겨두고 초췌한 흔적들일랑은 거두고 싶은게 인지상정. 흔적이란 보람까지도 종적으로 자국을 남긴 뒤라서 마치 화석의 족적을 추적하듯 돌이켜 보게 된다. 살아온 발자국은 어디를 향해 가고 있었는지, 세월이 가자는대로 그 향방을 믿을만 하다고 유순하게 막연히 따르기만 했던건 아니었는지. 열렬한 자신감 가득한 발걸음이었는지, 세월의 앙금을 의식하며 삶의 이정표를 놓치지 않으며 눈여겨 살펴보았던가, 삶을 향해 쏟아온 정성의 결정체가 흔적으로 남겨짐을 정중히 받아들이며 살아왔던가. 빈 가지를 흔드는 바람소리 같이 밀려드는 뉘우침의 여운이 옷자락을 멈칫멈칫 잡아당기며 연륜의 주름을 만들어가고 있다. 살아온 흔적을 빛 고운 무늬로만 남기기 위해 삶의 결마다에 빗질하듯 결을 만들어 낼 수는 없는 것. 생애에 파문이 일 때면 둥글게 둥글게 흔적을 그리다 잠잠한 호면으로  돌아가기도 했었는데.

한 해의 행적들이 무지개를 추적하느라 소란을 피우고 헛된 바람에 휘둘리느라 시리고 아픈 흔적으로 어려있고, 뚜렷한 자욱없이 남긴 흔적들은 부질없는 우유뷰단으로 남겨지고. 세상과 어울리지 않는 삶을 꾸려온 흔적들은 생이 다 지나기 전에 흔적을 지우든지 아예 흔적없이 지나가라고 미답의 흔적을 부추기기도 한다. 더는 삶의 술래가 되지는 말았어야 했던 후회스런 흔적까지도 술렁댄다. 모두 한데 모아 한 해가 다하기 전에 꼬옥 안아주기로 했다. 우리는 각자 흔적의 수취인으로 살아왔고 또 살아갈 것이기에. 질펀히 깔려있는 오만, 부실함, 게으름 흔적들에서 삶의 기울기가 눈에 띄이기 시작하면서 팬데믹 시대에 걸맞는 노년으로 흔적을 남기자며 목소리부터 나지막해지기로 했다. 소란스런 입담으로 세월을 갉아먹은 흔적일랑은 남기고 싶지 않음이라서 침묵을 익힐 수 밖에. 신축년에 남긴 흔적들이 더러는 허망하기도 하고 때론 우직함과 변함없음의 무게를 값어치로는 따질 수 없는 눈부심도 있었다. 한 해를 직조해온 흔적들이 윤택한 삼각주를 이룬 퇴적물처럼 고고한 의미를 지닐 수 있으매 소망을 두고 새로운 임인년을 힘차게 떳떳하게 맞을 수 있을 것 같다. 팬데믹에 부대끼면서도 꿈을 간직해온 이민자의 흔적들이 이방의 아름다운 오로라가 되어 이민사회와 이 땅에 번져가기를 간곡함으로 염원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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