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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아침] 눈을 만나다

지역뉴스 | 외부 칼럼 | 2021-03-19 15:15:22

칼럼,김정자,행복한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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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백신1, 2차 접종을 완료하고 더없이 가벼워진 마음으로 막내가 있는 콜로라도 덴버를 찾았다. 록키산맥 자락에서 계절마다의 절경을 만나기도 하고 겨울이면 덤으로 눈구경까지 포시럽게 해왔던 터였는데 아니나 다를까 살포시 살포시 천지에 채색을 입히듯 송이 송이 눈송이가 쏟아져 내리기 시작한다. 앙상했던 뜨락의 나무들이 포슬한 옷으로 입힘을 받고있다. 긴 칩거 끝에 애틀랜타에서 찾아온 방문객에게 반가움으로 환영하듯 소리없이 고요롭게 하염없이 내리고 또 내린다. 아무도 멈추게할 수 없다는듯 잠깐 사이에 수북수북 쌓여간다. 모든 풍광을 순백으로 감싸주는 눈꽃에서 경이로움과 범할 수 없는 숭엄을 본다. 구태의연했던 칩거로 일상 리듬이 압박감과 흐트러짐의 반복으로 제자리를 찾아들고 있는 와중이라 압박감은 긴장을 재촉하고 흐트러짐은 게으름을 불러들이곤 하지만 생체리듬 주기가 회복된 듯 산뜻하게 시야가 맑아진다. 오랜 운둔에서 생기를 찾은 듯하다. 재택 격리 흔적이듯 고도로 훈련된 외로움을 견디느라 지치고 아픈 민초들 눈물을 닦아주느라 빈 겨울 들판에 눈이 내리지 않을 수 없었나보다. 팬데믹이 끼친 침체로하여 만신창이가 된 풍경을 처연하게 감싸준다. 허공에서 온몸의 진액을 맨몸으로 삭이듯 너울 너울 춤추며 맴돌며 숲으로 나목 위로 마을이며 길에도 빠짐없이 거침없이 내려앉는다.

팬데믹을 묵묵히 견디어온 인류의 절망을 희망으로 이끌어내기 위해, 고목의 묵은 옹이도 소롯이 가려주며 갈피 못잡는 세상에 구원투수처럼 순결한 빛으로 찾아왔다. 초라했던 들녘도 홀연히 찾아준 흰 눈으로 하여 역설의 신화가 새로이 쓰여질 것 같다. 눈 덮임에서 벗어날 나목이 없듯 만상도 꾸밈없는 순백 프레임을 연출해내고 있다. 하루들이 기적처럼 살아졌고 덧대듯 살아온 축복을 누려왔던 것이라서 버티며 살아내야 한다는 눈의 고해를 듣는다. 찬란한 햇살 앞에서는 울음을 삼킬 수 밖에 없지 않느냐며. 눈물 없이는 세상 반짝임을 볼 수없으매 울고 싶을 땐 쉼없이 내리는 눈처럼 마음껏 울음을 쏟으라 한다. 소리내어 울지도 못하는 상처와 혹독한 아픔 없는 생이 어디있으랴. 이리 저리 채이면서도 삶의 마디들을 용케도 견뎌왔구나, 다둑여주는 포근함이 햇솜 같다. 못다 가릴 부끄러움도, 채워지지 않은 염원의 공간까지도 온통 분분하게 내리는 눈꽃이 덮어줄 것이라서 만사가 편안해진다. 홀연히 불어온 바람이 포시시 눈송이를 걷어낸다.

여늬 때, 늦은 밤이면 어둑해서 보이지 않던 마을 실루엣이 빛부신 조명을 받은 것 같다. 밤이 깊도록 하얀 밝음이 충만한 창 앞에서 남은 날들을 위한 충언을 듣는다. 오늘 하루 기쁨과 감사에만 몰두하며 정답없는 내일에 미리 주눅들지도 않으며, 쉬운 용서로 먼저 물러나며,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며 나목의 비움을 익혀가라 한다. 하얀 눈의 전언을 듣다 보면 이 또한 지나가리란 선명한 답신을 받게된다. 자해처럼 묶여있었던 마음 사슬을 풀어내는 유일한 자유를 인류에게 골고루 나누어 주고 있다. 잊음의 땅으로 돌려보내려 했던 소중한 흔적 또한 하얀 눈 위에 마음껏 풀어 놓으며 생의 분진을 털어내고 불확실한 두려움을 죄다 쏟아 놓으라 한다. 함박눈이 된 백설이 여일하게 덮어주겠단다. 새하얀 천지가 정신줄을 초롱초롱 일깨워준다. 언제, 어디서, 누구를 위해, 어떻게, 왜, 무엇을 위해 모질고 삭막한 겨울같은 세상을 견뎌내야 할 것인가를 다시 한번 새겨보라 한다. 하늘에서 살다 이 세상에 발을 딛느라 조심조심 내려앉는 흰눈의 조언이 이어지고 있다.

겨울눈을 만나기가 쉽지 않은 애틀랜타에서 줄곧 살아온 터이라서 눈발만 돋아도 눈 내린 언덕이며 눈이 쌓인 숲을 찾아 나서곤 했던 기억이 새롭다. 눈이 내리는 날이면 시야에 들어오는 풍경을 놓치지 않으려 손끝이 살아나듯 펜을 붙들게 된다. 나목을 두르고있는 눈의 엉김에서 생물체 환원반응이 일렁인다. 적멸이 익숙치 않지만 살아있음의 생명력은 추위 속에서 더 강해지는 수미상관 의지의 응축을 전시하고 있는 것 같다. 언뜻 모순을 흔들어 보려는 시도일 수도 있겠지만 세상이 온통 모순 투성이라 헷갈릴 것도 없겠다 싶다. 눈 덮인 산야가 낯설고 참신한 눈내림의 세계에 부딪히면서 시방 나는 지상의 푹신한 불랙홀에 둘러싸여 날아오를듯 가벼운 자유 의지를 확인케 된다. 눈이란 포슬포슬 내려와 정제된채 고체화로 쌓인것이 아닌 끝없이 살아 움직이는 가변적인 것이요 겨울을 상징하는 영혼의 빛깔이라 단정짓고 싶지만, 이토록 화려했던 설경도 햇살 한줌에 순식간에 허물어지고 만다. 정결한 차가움과 폭신한 친밀감이라 고집하고 싶지만 눈내리는 날이면 곧잘 봄을 기다리던 기억이 떠올라 순백의 따스함이 그리움으로 설렘으로 쌓여갈것 같다. 하염없이 눈이 내리는 코로라도의 겨울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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